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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라는 신비

나무와 흙, 그리고 수녀님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봉사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주변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데.'


나의 경험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떠나온 길이 멀면 멀수록 만남은 더 진해지고, 가는 길이 힘들면 힘들수록 기억은 더 오래 남는다.


경산 하양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프놈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에 내렸다. 다시 푸삿이라는 도시에 있는 안나스쿨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4시간을 갔다. 


그런데 안나스쿨로 찾아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더 먼 곳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오늘 아침 다시 길을 나섰다. 차로 30분을 달려 찾아간 돈어이 마을에는 120여명의 어린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한 뒤에 바로 준비해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협동 종이컵 쌓기와 꾸미기, 그리고 페이스 페인팅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모두에게 즐거웠다.


돈어이 마을 초등학교 한가운데에는 큰 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 아래에서 모든 어린이들이 햇볕을 피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15년전에 볼리비아 어느 시골 마을에서 큰 나무 아래 치과 치료를 도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무 하나가 어린이들을 돌보고, 나무 하나가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오후에 찾아간 몰리트놀밧 마을은 워낙 집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학생들이 한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모인다고 했다. 과연 붉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아이들 120여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해간 풍선 릴레이 프로그램은 바람이 불어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단체 줄넘기, 물방울 놀이, 페이스 페인팅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그냥 학생들이 어린이들과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았다. 몰려드는 활기찬 어린이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애쓰는 우리 학생들의 노력이 대견스러웠다.


일주일에 한번, 이렇게 안나스쿨 선생님이 찾아와 같이 놀고 배우고 간식을 먹는 시간을 아이들은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한 시간씩 걸어서 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 하루 여러 만남 속에서 옛 기억이 소환되어 시간을 넘어서는 체험을 했었다. 붉은 흙을 보면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를 떠올렸고, 큰 나무 아래 어린이들을 보면서 볼리비아에 가기도 했다.


안나스쿨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자리에 이곳에서 소임 중이신 수녀님을 초대했다. 기타로 성가 두 곡을 불러 주셨고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수녀님이 노래하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 나오는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하느님에게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이며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는 깨달음은 오늘 하루 종일 체험했던 일이기에 노래 자체가 묵상이 되었다.


노래 후에 수녀님께서는 캄보디아에서 우리 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고 어린이들을 만남으로써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갈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친구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아름다운 격려를 해 주셨다. 


만남은 언제 어디에서나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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