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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아닌 기억으로

캄보디아 해외봉사 해단식에 부쳐

"우리는 추억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러 갑니다." 


작년 12월 8일 캄보디아 역사와 봉사자의 자세에 대해서 교육할 때 제가 학생들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추억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힘이 되어 나를 일으키는 기억을 만들러 캄보디아로 갔습니다. 


먼저 우리는 누구를 도우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이들과 같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했고, 그러자 우주를 간직한 눈을 들여다보고 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남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나눌 것은 없었습니다. 준비해 간 옷과 교육 프로그램이 그곳 아이들에게 꼭 필요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누러 간 것이 아니라 배우러 갔습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말입니다.


우리가 가야했던 길이 멀고도 험했던 것은 우리가 넘어서야 할 선입견과 편견이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멀면 멀수록 만남은 더 진해지고 가는 길이 힘들면 힘들수록 기억은 더 오래 남는 법이기에 안나스쿨은 우리 영혼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푸삿의 밤을 가득 채웠던 하늘의 별들과

돈어이 학교 마당에 그늘을 만들던 나무와

가로 10미터 세로 40미터 수상마을 성당 운동장과

우리가 심은 오렌지 나무와

코끼리 가게의 앙코르 맥주를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안나스쿨과 인근 마을에서 만난 어린이들,

늘 환하게 웃던 마른 얼굴과 그들의 더러운 옷과 헤진 운동화,

그들이 우리를 위해 곱게 준비한 꽃과 노래,

우리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던 그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교사로 온몸을 바쳐 살아가는 수녀님들과 봉사자들,

식구처럼 지냈던 고양이들과 개들,

몰래 마당에 들어왔던 동네 소들,

특별한 장소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도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는 기억과 함께, 기억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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