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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스(Yips)

마음을 일으키는 방법

호주 오픈이 한창 진행중이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중요한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꼭 챙겨본다.


그 가운데 노박 조코비치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선수다. 은퇴한 페더러나 부상으로 탈락한 나달을 생각하면 조코비치가 보여주는 꾸준한 경기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고보면 은퇴한 세레나 윌리엄스를 제외하고는 여자 테니스에는 딱히 기억나는 선수가 없다.


미국의 오사카 나오미나 영국의 라두카누가 떠오르긴 하지만 잠깐 반짝이고 보이지 않는 걸 보면 테니스라는 운동이 꾸준히 잘하기 참 어려운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나 이바노비치도 그랬다. 2008년 20살 나이에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세계최고랭킹의 선수가 되었을 때 해설자들은 이바노비치가 차세대 유망주로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자 세레나 윌리엄스의 라이벌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바노비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입스(Yips)'를 겪기 시작했다. 입스란 압박감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불안이 증가하여 근육이 경직되면서 평소에 잘 하던 동작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골퍼가 퍼트를 할 때,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칠 때 손에 경련이 나는 것 등이 해당된다.


이바노비치는 서브하기 위해 공을 공중으로 띄워 올리는 동작에서 입스를 체험했다. 손이 떨려 공이 오른쪽으로 쏠리거나 아니면 너무 앞에 던지게 됨으로써 제대로 서브를 넣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냥 하면 될 것 같은 이런 단순한 동작에서 계속 실패한다면 보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결국 이바노비치는 공을 띄워 올리는 능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새로운 서브를 고안했지만 옛날만 하지 못했고 몇몇 작은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을 뒤로하고 스물아홉 나이에 은퇴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몸은 아무 생각없이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몸은 마음 먹은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는 운동선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되는 경우, 어떤 상황에 처하면 머리가 하얗게 되어 도무지 돌파구를 찾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몸을 짓누르는 마음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실패한 인간관계에 대한 기억 때문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잘 나가던 연인사이라도 어느 지점에 이르면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발목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못하게 만든다. 인간관계의 입스다.


선뜻 나서지 않는 마음, 혼자 내버려두라고 소리치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힘들때 달리기 하러 나간다. 많이 힘들다면 더 많이 달린다. 탈진할 정도로 몸을 밀어부치고 나면 마음마저 말랑말랑해져서 한결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지쳐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에 몸의 움직임으로 마음이 위로받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평소에 잘 하던 것이 안되는 입스가 올 때 그것을 벗어날려면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는 것이 좋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해도 되고 친구와 운동장을 걸어도 된다.


별 볼 일 없는 움직임으로 상처입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다면 몸이 마음을 리드하는 것이다. 물론 입스를 겪는다면 몸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힘들겠지만 보통의 우리 삶에서 일단 몸을 움직인다면 마음도 화답할 것이다.


"용기란 시작하기도 전에 질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쨌든 시작해보는 것이다."(<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존 그린 에세이 <인간 중심의 행성에서 살기 위하여>의 '입스'를 읽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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