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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고 묻는 당신에게

사순 제4주일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요한 9,2)


제자들의 질문은 우리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합니다. '왜 제가 불행합니까?' '왜 세상에 고통이 가득합니까?' '왜 악한 사람이 성공하고 돈을 법니까?' '왜 하느님이 계신데 전쟁이 있고 아이가 아프고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습니까?' '왜 사람은 죽어야 합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내려 합니다. 사람의 욕심 때문에,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긴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킵니다. 더 나아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고 단죄하고, 심지어 죄 지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자책으로 자기 처벌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하십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동안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요한 9,3-4).


달리 말하면, '너의 불행, 네 이웃의 시련, 세상의 고통, 심지어 악인의 성공조차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다 알지 못한다. 너는 다만 너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동안 해야 한다.'


예수님의 관심은 '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일과 어둠과 빛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면 어둠은 어둠으로 빛은 빛으로 그대로 둘 것입니다. 어둠이 설명 가능하다면 어둠이겠습니까, 빛이 무엇인지 설명한다고 빛을 알게 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빛의 자녀로 사는 것, 곧 우리를 보내신 분의 일을 빛이 있는동안 행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본다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우리는 보이는대로 보고 안다고 생각합니다.


1독서에서 다윗을 선택하신 하느님은 사람이 보는대로 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왕자를 떠나야 할 때가 되자 비밀을 한가지 말해 줍니다. 


"무엇이든지 마음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얼마전에 개봉한 <아바타2>에 보면 나비족의 인사가 이와 닮았습니다.


"I See You!" "나는 당신을 봅니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봅니까? 있는 그대로 볼 줄 압니까?


본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 스스로 찾은 답 안에 갇혀 '나는 아니다', '네가 잘못했어'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보지는 않는가요? '나도 틀릴 때가 있지', 혹은 '아무리해도 안되는 일이 있구나'하고 인정하며 자신이 가진 한계와 나약함을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39-41).


물고기가 물을 벗어날 수 없듯이 우리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고,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며 스스로 답을 만들어 안다고 떠들고 직접 단죄합니다. 이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은 보지 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일에 관심을 꺼야 합니다. 굳이 알아야 하는 일이 아니면 눈과 귀를 닫고 조용히 고독 속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때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며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대신, 나도 죄인이고 나도 모르고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할 때 기도가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소경입니다. 잘 못 보고 잘못 보고 어둠 속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덕분에 빛의 자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경의 질문입니다.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대답하실 것입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이제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우리에게 성체로 오시는 주님, 바로 당신을 보고 만지고 먹습니다. 믿음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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