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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물통

여행의 선물

혼자 여행을 떠날 때마다 동반자를 선택하는데 이번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다.


'빈 물통'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노래한다.


빈 물통에 물이 가득 찰 때는 텅 비어 있을 때다
나는 빈 물통이 비어 있기 때문에 가득 찬 줄 모르고
빈 물통은 물이 가득 차도 빈 물통인 줄 모르고
평생 빈 물통을 채우느라 강가에 나가
물지게를 지고 우는 날이 많았다


빈 물통을 채우는 것은 비우는 것이라는 시인의 통찰이 와 닿는다.


나는 지금까지 자꾸 채우려고만 했기에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임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當無有用(당무유용), 그릇은 비움으로써 그 쓸모가 더 커지는 법이다. 그릇을 넓고 깊게 만드는 일이야 비우는 일인진데 나는 나의 쓸모있음을 보여주고 채우는 것으로 해 왔으니 그 어리석음을 본다.


간다.

친구가 부르니 가고 오라하니 온다.


나는 무게 없이 흔들리는 바람이 되고 싶다.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처럼, 자유이고 싶다.

붙들지 않고 매이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당위를 주장하지 않는 바람이고 싶다.


바람은 성령,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시간이다.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존재가 함께 간다.


고독은 여행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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