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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천하유람기 2편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마지막 코스 '북한강 자전거길'을 시작하기 위해 새벽 4시에 3시간을 달려 경의중앙선 운길산 역에 차를 세웠다. 전철을 타고 망우역으로 가서 경춘선으로 갈아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전철 안은 자전거와 사람으로 인산인해였다.


춘천역에서 시작한 북한강 자전거길은 총거리 77킬로미터로 그리 길지 않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그래도 시원한 북한강을 따라 나름 멋진 풍경이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출발점인 운길산역 밝은 광장 인증센터에 도착해 도장을 찍으니 지난 2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2021년 6월 말 어느 새벽에 바프와 함께 금호강으로 나가 부산까지 가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입항해 한달을 살았다. 그동안 바프와 한라산 돌기, 제주환상자전거길을 종주하며 30일간 매일 제주도의 삶을 담았는데 그 무지개 같은 이야기를 브런치 북 '바프와 함께 제주도에서'로 남겼다. 제주도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육지로 돌아와 운명처럼 낙동강 자전거길을 시작으로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국토종주를 이어갔다. 그 가운데 차로 목포에 가서 1박 2일 영산강과 섬진강 자전거길을 종주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남도 800리 자전거 여행'에 담았다.


2023년 6월 17일, 마침내 북한강 자전거길을 완주함으로써 나의 산티아고는 일단락 되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주는 4가지로 나누어진다. 한강, 동해안, 제주환상 등과 같은 구간별종주,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모두 종주하는 4대강종주, 아라 서해갑문에서 낙동강 하굿둑까지 633km를 종주하는 국토종주, 마지막으로 이 모든 구간을 인증하는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이다.


인천 서해갑문에서 낙동강 하구둑에 이르는 633km 국토종주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인증!


자전거 국토종주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출발지점에서 도착지점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예상하고 대중교통으로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계획을 짜는 일일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일도 사람의 일이라 자주 예상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초조해하며 달렸고, 실제로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탄 적도 있었다.


국토종주 인증구간 길이는 1,853킬로미터인데 돌아보니 2,000킬로미터 이상을 탄 것은 갔던 길을 자전거로 돌아온 온 적도 여러번 있었고, 자주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여행의 묘미는 길을 잃는 것이라고!


사는 것도 이와같아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을 때, 실제로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를 때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누가 뭐래도 내 발은 계속 페달을 밟고 있었고,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나는 국토종주 여행을 혼자 떠나지 않았다. 나의 한걸음 한걸음을 함께 한 것이 있었으니 바이크 프라이데이(바프)라는 투어링 미니벨로다. 장거리 자전거여행을 위해 무엇을 마련할까 고민하다가 바프를 타고 유럽여행을 다녀온 신부의 권유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바프는 '날으는 자전거(Bicycles that fly)'이며, 로빈슨 크루소의 충실한 친구인 '프라이데이(Friday)'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바프와 보낸 2년 동안 단 한번도 갑작스런 고장으로 나를 당황하게 하거나 힘들게 한 적이 없다.


바프를 타고 천하를 유람하면서 크기와 속도보다 편안함과 효율이 더 중요함을 배웠다. 로드 바이크처럼 빨리 갈수는 없어도 느리지 않게 꾸준히 가다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때론 '그 작은 자전거를 타고요?'하고 놀라거나 놀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작기에 부담없고 편안한 친구다.


놀러가는 기분으로 바프의 페달을 밟으면 내가 주는만큼 그대로 돌려준다. 처음부터 너무 거창할 필요없이 작게 가볍게 시작하고 꾸준히 한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갈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


바프는 접힌다. 그래서 아반떼 짐칸에 넣으면 쏙 들어간다. 물론 브롬톤처럼 살뜰하게 접히거나 가볍지는 않지만 그래도 감당할만하다. 제주도 환상자전거길 234킬로미터를 종주하고 난 뒤에 제주공항에서 박스에 넣어 부쳤는데 무리없이 팩킹할 수 있었다.


바프는 작지만 튼튼하고 페니어(안장에 걸치는 가방)를 달면 짐도 꽤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짐은 결국 짐이다. 하나도 에누리없이 내가 끌고 가야하는 나의 십자가다. 적게 가져가서 아껴쓰고 빌려쓰고 정말 필요하면 사서 쓴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여행은 가볍게 떠나야 하고, 제 한 몸이면 충분하다.


제주 환상자전거길의 짐


[여행의 이유]


7월 한더위에 백두대간 문경새재 이화령 고개를 오르던 때가 떠오른다. 여름 휴가로 국토종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인천 서해갑문에서 2박 3일 여정을 출발했다. 이어진 한강 자전거길은 크고 번화한데다가 멋진 라이더들이 많았다. 반포대교를 자전거로 건너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양평은 고요했고 철길 코스는 옛스러웠다.


여주보에서 숙소를 찾지 못해 한참을 더 달려 비내섬 어느 허름한 숙소에 도착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동네 청국장집에서 그날의 첫끼를 먹는데 자전거를 타는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말이다.


여행이 주는 일상의 새로운 발견은 그래서 참 좋다. 먹는 재미가 없다면 여행의 재미도 없을 것 같다.


다음날 힘을 내어 충주댐을 거쳐 수안보온천, 그리고 대망의 문경새재 이화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태양은 등 뒤에서 지글거리고 몸은 천근만근이 되었지만 힘겹게 오른 이화령에서 바라본 세상은 눈부셨다. 그날 밤 새재 계곡에 발을 담그면서 큰 산을 하나 더 넘었음을 알았다.




나에게 여행이란 도전, 변화, 확장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기꺼이 변화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미지의 세계로 나를 확장하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 뿐만 아니라 낯선 나도 발견했다. 풍경에 감동하고, 맛에 감탄하고, 살아있는 몸에 감사할 수 있음은 오직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인천 서해갑문, 반포대교, 문경새재 길에서, 그리고 새재 계곡에 발 담그고


[천하]


천하(天下)를 생각한다. 땅만 보고 살아가기에도 바빴던 나는 고개를 들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우리 산하를 만났다. 생명의 강이 나와 함께 흐르고 우람한 산은 친구가 되었기에 천하를 벗 삼았다.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 물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안치환의 '물따라 나도 가면서'를 따라 부르며 천하를 유람했다.


강, 산, 바다, 바람, 그리고 나!


이 모든 것이 천하에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있다. 여기와 다른 저기, 속(俗)과 성(聖)으로서 구분되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내가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지상에서 만나는 하느님 나라!


천하를 유람하며 나는 이 넓은 세상에서 작은 존재, 아주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옹졸함을 느껴본다. 그것조차 세상의 일부이기에 아름답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은 이 길에서 바프의 두 바퀴로 누빈 천하와 그 시간에 감사하며, 나의 산티아고에서 띄우는 엽서를 맺는다.


아디오스(A 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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