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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해서

故 이선균 배우를 그리며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나의 아저씨'에서 구조기술사 박동훈(故 이선균) 부장의 대사)


외력이 너무 쎘던 것일까? 그가 버티지 못한 이유는. 아니면 내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혹은 스스로 더 이상 버틸 내력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지난 연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선균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배우였다. 나도 그중에 한명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당연해하던 것이 사라져버리고 나면 설명하기 어려운 무게가 엄습한다. 수많은 연애인, 정치인, 유명인의 극단적 소식을 들어왔지만 이렇게 오래 어둡고 추운 골목길을 서성거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따듯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답을 찾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송년회(送年會)대신 망년회(忘年會)를 하자며 오늘만은 망()하고 싶다했던 이유는 해결되지 못한 것, 슬픈 것, 잊고 싶은 것에 대한 나름의 변명이었다.


그렇게 새해가 되었고 잊지 못하고 잊으려했던 것, 보기 싫어 묻어두었던 것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아마 내가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쏟아지는 고통, 피할 수 없는 시련에서 도망치고 외면하고 묻어두는 것은 고통이나 시련에 더 큰 힘을 준다는 사실을. 두려워 물러서거나 무서워 피하면 그건 이때다 싶어 더 달려들 뿐이라는 사실을.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고통에는 도망칠 곳이 없다. 눈을 부릅뜨고 두손을 꽉 쥐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보자'하는 마음으로 한시도 피하지 말고 쳐다보아야 한다.


그러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고통은, 실제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때도 많다. 생각했던 것보다 견딜만한 것도 있고, 의외로 쉽게 다른 길을 찾을 때도 있다. 물론 고통을 껴앉는다는 조건에서만.




이태원 참사가 있은지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여당 국회의원은 재난을 정쟁화한다며 모두 퇴장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모양이다.


살아있는 고통을 외면하면 안된다. 고통을 말하는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말해서도 안된다.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함께 앉고, 귀를 기울여 듣고 같이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그것만이 치유를 위한 유일한 걸음이다. 


사는 것도 이와같아 나의 고통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없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라.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극 속에서도 고개를 들고 눈을 떠야 한다. 나의 내력을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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