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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아침

지성인이란 누구인가?

스산한 날씨에 동물원의 '변해가네'를 들으니 멜랑콜리한 감정이 올라온다. 모든 것은 변해가고 나도 그 속에서 변해감을 머리로는 끄덕이지만 입안에는 쓴 이질감이 느껴진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당신은 너무 정치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즉 당신은 논쟁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당신은 보스나 권위있는 인물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당신은 균형잡히고, 객관적이고, 온건하다는 평판을 얻기를 바란다. 당신의 희망은...주류 대열 안에 남는 것이다.


어떤 문장이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고 마음에까지 와 닿는데에는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은 바로 나의 심장에 날카롭게 꽂혔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내가 피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놀랍고 당황스럽다.




지난 달 부산에 있는 동생집에 가는 길에 김해 봉하마을에 들렸다. 왠일인지 머리에서는 전라도 어디쯤으로 생각했었던 그곳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한편으론 나의 무심함이 부끄럽기도 했다.


노무현,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이름은 나에게도 나름의 의미로 새겨져 있다.


일반대학에 다닐 때 어떤 젊은 정치인이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확신과 열정은 지금도 뚜렷하다.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마르 3,21)처럼 그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잔뜩 고양돼 '미친 것'처럼 보였다. 다분히 논쟁적이고 과격해서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를 사로잡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서야 그에게 '우리 시대 지성인'이라는 이름을 붙히고 싶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의한 것처럼, 스스로 경계 밖으로 추방하여 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고, 아마추어로서 변하지 않는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낯설지만 가까이하고픈, 두렵지만 매력적인 그에게서 내가 꿈꾸는 어떤 것을 본다.


익숙한 공간에서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편안한 감정에 젖는 토요일 오전, 지성인이란 누구이며 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뭔가 낯설다.


하지만 내 깊은 속에서 친숙함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계속 묻고 옳으면 실천하고 아니면 다시 반기를 드는 사람이 계속 소리치고 있다. 낯설지만 가까이하고픈 모습으로.


끊임없이 올라오는 하고픈 '무엇'보다 '어떻게' 할 것이며 모든 것에 앞서 '왜'인지 물으니 낯선 나를 만난다. 내가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나, 하지만 내가 안아주어야 하는 나.


넓은 봉하마을을 뒤로 하고 부엉이 바위에 올랐다. 어떤 지성인이 시대에 맞서다가 쓰러진 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 눈앞에 펼쳐진 고향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느낌이었을까.


(모두에게 다가올)그때가 되면 나는(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떻게 나와 세상을 바라보게 될까...궁금하다.


낯설지만 안아주고픈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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