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대구를 달리다

대구마라톤 후기

대구마라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참가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마라톤 대회였다.


먼저 '대구국제마라톤(Daegu International Marathon)'에서 심플하게 '대구마라톤(Daegu Maratho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파워풀 육상도시 대구에 어울리는 세계 7대 마라톤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엘리트 선수 1등 상금을 2억원까지 올렸다고 한다.


그동안 '골드 라벨(Gold Label)' 대회 수준에 맞는 풀코스가 없었는데 올해는 대구스타디움에서 시작해 달구벌대로를 따라 뛰다가 서문시장을 기점으로 돌아 대구역, 동대구역, 아양교를 건너 지하철 1호선을 따라 가다가 율하역에서 우회전하여 범안대교를 건너 돌아오는 풀코스가 생겼다.

대구마라톤 풀코스


무엇보다 그냥 하프 코스만이 아니라 '풀코스 릴레이'라는 방식이 도입되어 2명이 한조가 되어 전반부 하프코스를 뛰는 1번 주자, 남은 하프코스를 2번 주자가 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 공식대회에 출전하는 동료 신부님이 1번 주자가 되고 나는 2번 주자로 참가 신청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2번 주자가 출발하는 하프코스 결승점이 계산오거리이기에 대구스타디움에서 함께 달리는 신부님과 동료들을 두고 나만 대공원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반월당까지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침 8시에 마라톤 복장으로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배번호가 있으면 지하철은 공짜였다.)


1번 주자가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다보니 날씨는 점점 더워졌다. 하지만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 다행이었다. 내심 1번 주자가 어떤 멋진 표식-바통이나 어깨띠 같은-을 건네주기를 기대했지만 대회에서는 하이파이브가 전부였다. 그렇게 10시 20분에 나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대구 도심을 2만 8천여명의 러너들과 달리는 일은 멋졌다. 대구를 찾은 수많은 러너들이 대구마라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를 바랬다.


하지만 처음으로 주관하는 풀코스를 비롯하여 마음만 앞선 대회운영에서 미숙한 점이 많았다.


2번 주자로 계산오거리에서 기다리는동안 풀코스 선수들은 하프코스, 풀코스 릴레이 선수들과 헷갈려 경로를 놓치곤 했다. 심지어 외국인 엘리트 선수까지 하프 코스 골인 지점을 통과하기 위해 되돌아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 시도하는 풀코스 릴레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밀려드는 1번 주자들과 응원객이 엉겨 붙은 사이에 2번 주자 역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하프 골인 지점에서 경찰은 3분마다 '뒤로 물러나세요'하고 소리쳤지만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대구스타디움의 극심한 교통 혼잡, 급수대 및 의료 봉사자 부족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응원하는 사람이 너무 없었다는 점이다. 연도변에 나와 응원하는 시민들, 꽹과리를 치거나 노래하며 응원하는 사람들, 하이파이브하는 어린이들이 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 풀코스 마지막 3킬로, 곧 39킬로지점부터 시작되는 오르막이 말도 안 되게 길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어려운 코스를 만들어 두었으니 분명 러너들은 그 지점을 지나며 다들 쌍욕(?)을 했을 것 같다.


나 역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범안대교를 뛰어 오르며 한참을 앞서 달려가는 러너들이 땅의 열기에 아른거리며 흔들거리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코스 고저도(무지막지한 마지막 3킬로의 고저를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에 너무 좋은 날씨와 곳곳에서 흩날리는 벚꽃잎, 그리고 수많은 러너들의 열기만은 최고였다. 대구를 이렇게 온전히 달리며 맛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앞으로 코스와 운영 시스템은 개선하면 된다.


대구를 달리며 대구를 만나고 대구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좋은 벗들과 함께 달렸고, 멈추고 싶었던 마지막 3킬로미터 오르막을 거쳐 대구스타디움으로 들어서자 울려 퍼지는 응원의 소리, 나의 이름을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에 없던 힘도 솟아나 신나게 마지막 백미터 트랙을 달릴 수 있었다.


나와 풀코스 릴레이를 뛴 황 신부님은 첫 하프코스를 2시간이내(1:59:47)에 뛰어 나를 흥분시켰다(진심 축하!).

나의 1번 주자와 함께!


처음으로 10킬로미터 마라톤을 뛴 학생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뛰는 모습을 보며 순수한 열정을 느꼈고 제 안에도 열정이 생겼다'고 말할 때 내 마음이 바로 그랬다.


봄이 익어가는 사월의 첫 주일, 좋은 이들과 함께 달려낸 순수한 열정의 시간이었다.

DRC(DCU Running Crew)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가 다 혼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