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깔

나도 작정하고 꾸미면 어디서 꿀리진않어!

by 닭강정

오늘의 시


《때깔》


그날 놀이터엔
조용한 소란이 있었다

모두가 아는 얼굴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인스타 속에선 매일 마주치는
그 엄마가
진짜로 나타났다

윤이 나는 피부
바람에 찰랑이는 머리
놀이터 아닌 런웨이처럼 걷는 걸음걸이

그 모습을
모두가 슬쩍슬쩍
숨죽여 바라봤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운동화 대신 로퍼를 신은 엄마
쓰고 있던 선캡을 벗은 엄마
립스틱 하나 더 바른 엄마
평소보다 허리를 펴고 걷는 엄마

조금씩
놀이터의 공기가 달라졌다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뭔가 좀
찔리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썬크림만 말고
비비크림을 살짝 덧발라봤다

애는 모래 퍼고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도 좀
때깔 한 번 내볼까 싶어서




Essay : 나도, 나한테 윤을 내보기로 했다


놀이터에 나타난 그 엄마는

사실 다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은 없지만

인스타 속에서는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로 등장했다.


화장도 머리도

움직임 하나하나도

도무지 ‘놀이터용’이 아닌데

그게 또 하나도 과해 보이지 않았다.


“우와…”라는 말은 아무도 안 했지만

다들 안 하는 티를 내느라 바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놀이터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운동화 대신 로퍼,

햇빛 가리개 대신 립글로스,

고개 숙이던 사람들이

허리를 조금씩 펴고 있었다.


웃기지?

사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평가하지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그 엄마를 보고 나니까

나도 괜히 한 번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화려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도 나를 가꾸는 기분이

좀 그리웠던 거다.


애 키우느라 머리는 질끈 묶고

얼굴은 썬크림 하나로 버티던 내가,

오늘은 비비크림을 한 번 더 두드렸다.


그 엄마만 대단한 게 아니라,

그걸 보고

“나도 좀 해볼까?” 하고 생각한

다른 이들도 대견했다.


어쩌면

이 동네 놀이터에서 가장 빛났던 건

피부 윤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자신을 다시 돌아본

그 마음의 반짝임이었을지도 모른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