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회화는 늘 발목을 잡는다.

Experiencing Failure.

by INGDI 잉디

기나 듣기 능력이 점수로 측정될 수 있는 토익이나 HSK와 같은 어학 시험에서, 높은 성적이 곧 그 언어의 능력으로 귀결될 수 있는지는 항상 의문이다. 우리나라에 널려 있는 학원들이 가르쳐주는 ‘스킬’과 어느 정도의 연습이 있다면 얼마든지 고득점은 가능하다고 본다. 외국어를 공부함에 있어서, 읽기/듣기/말하기/쓰기의 영역이 있지만 나는 이 중에서 무엇보다도 말하기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잘 읽고 잘 듣고 잘 써도, 정작 그 나라 사람 앞에서 말 몇 마디 못한다면 그 언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시험 패스를 위해 실력에 맞지도 않는 HSK를 공부해야 했던 적이 있다. 억지로라도 열심히 하다 보니 읽을 줄 아는 한자도 늘었고, 해석 및 작문 실력도 그전에 비해 늘었다. 확실히 이 영역은 조금만 열심히 반복해서 하다 보면 눈에 익기 때문에, 실력 향상의 속도가 비교적 빠른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혼자 간판을 읽고 다양한 표지판들을 읽을 줄 알게 된 나, 수업에 가면 본문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 나를 보며 뿌듯해하고 있을 때, 정작 말을 해야 될 상황에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또 다른 나를 보며 뿌듯함과 절망감이 수도 없이 저울질하였다.


내가 중국에서 생활하며 말을 제대로 못 해서 힘이 빠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눈물겨운 경험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겠다.


과자로 때운 점심

내 룸메이트는 중국에서 오래 산 경험이 있는 친구라 중국어에 상당히 능숙했다. 룸메이트와 나는 같이 자주 밥을 먹으러 다니곤 했는데, 그때마다 룸메이트가 모든 주문을 맡아서 해주었다. 괜히 말 못 하는 나 때문에 주문도 제대로 못하면 안 되니까. 룸메이트도 내가 중국어를 힘들어하는 걸 알아서, 밥을 먹으러 갈 때면 룸메이트가 주문하는 것이 우리들의 암묵적인 공식이 되었다. 그렇게 나도 우리들만의 공식에 익숙해졌었다.


그런데 중국에 온 지 한 달 정도 된 어느 날, 나 혼자 점심을 밖에서 먹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그냥 아무거나 대충 먹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먹자골목을 돌아다녔는데, 많은 음식점들이 나를 반겼지만 선뜻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냥 용기가 안 났다. '내가 들어가서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혹은 '혹시 직원 분이 다른 걸 물어보시면 어떡하지?' 등등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별의별 생각들로 먹자골목을 두세 바퀴 돌고 나서 내가 향한 곳은 슈퍼였다. 물건만 골라서 아무 말 없이 계산만 하면 되는 곳.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 사들고 무기력하게 나왔다. 그 날 점심은 결국 과자 한 봉지였다.


저도 제가 어디 있는지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미국에 우버가 있다면, 중국엔 띠디가 있다. 우버처럼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를 입력하고 호출하면 근처의 기사님들이 오신다. 띠디를 호출하고 차를 기다릴 때, 내가 있는 위치가 아주 정확하지 않은 이상 내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기사님한테서 거의 열에 아홉은 전화가 온다. 이 전화야말로 나에게 공포의 전화였다.


나는 교환 생활 중에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하이난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하이난을 중국어를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과 가게 되어서, 말을 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이라도 아는 내가 책임지고 해봐야 했다. 부담이 상당히 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야 했다.


하이난은 버스보다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시간적으로 절약되는 부분이 많아서 띠디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띠디를 부를 때마다 아니나 다를까 100%의 확률로 전화가 왔다. 대부분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연락이었는데, 문제는 나도 내 위치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기사님께서는 계속 물어보시지만 나는 어버버 거리기만 하고, 내가 아는 단어들을 총동원해서 설명을 시도해도 알아듣지 못하셨다.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의 “팅부동”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 영어는 더더욱 안 된다.

대부분의 기사님들께서 어플에 뜨는 나의 위치로 추정해서 찾아오기는 하셨지만, 기사님을 찾느라 30분 이상 헤맨 경우도 있었고(기사님이 그냥 가실 법도 한데 다행히 우리를 기다려주셔서 무사히 탈 수 있었다), 기사님과 내가 소통이 되지 않아 결국 기사님께서 취소하신 경우도 있었다. 전화를 받고 끊을 때마다 한숨만 저절로 나왔다.


불만이 있으면 뭐해!

내가 살았던 기숙사는 신설이었지만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 갑자기 정전이 되기도 하고, 물이 안 나오기도 하고, 곰팡이가 피기도 하는 등 일상생활에 있어서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가 계속 반복되다 보니 너무 화가 나서 기숙사 직원들에게 불평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어를 잘하는 친구와 함께 기숙사 직원을 찾아가서, 친구에게 한국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면 친구가 대신 중국어로 말을 해주는 방법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불합리한 것에 대해 대처 방안을 묻고 싶어도,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내가 모든 상황에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중국에서 버블티를 정말 많이 먹었는데, 버블티 주문만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물론 버벅거렸지만 내가 버블티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사 마시다 보니, 주문 방법이 입에 익었다. 나중에는 점원이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요구 사항들을 모두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버블티 주문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다른 회화 상황에서도 내가 자주 말해보고 연습을 계속해봤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보니 자꾸만 입을 다물게 되고, 잘하는 친구들에게 말할 기회를 계속 미루게 되었다.


학원에서 배우는 회화와 현지에서 직접 듣고 해 보는 회화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학원 회화는 당연하겠지만 너무 정석에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에 갈 기회가 있을 때, 부족함을 알더라도 조금이라도 말을 더 해보면서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자신감과 용기를 많이 내지 못해서 좋은 기회를 제대로 쓰고 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한국에서는 읽기, 듣기, 쓰기 실력은 어느 정도 향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말하기 실력은 현지에서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으니까. 중요한 건, 내가 중국어 학원을 다니고, 가끔 중국 드라마를 보는 방법만으로는 앞으로도 중국인 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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