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행복이 가득했던 어느 날의 기록
출근 시간의 버스는 언제나 한바탕 전쟁 같은 풍경을 그린다.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신호등 앞에서 아슬아슬 멈춰서는 모습까지.
이제 나는 그런 혼잡함에선 해방된 상태이니,
전사들이 지나간 한결 차분해진 다음 시간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튤립이다.
미리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으면 좋겠지만,
나는 오늘도 창가 자리에서 핀터레스트(Pinterest) 앱을 열었다.
꽃의 색상은 오늘의 수업에서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중요한 요소였다.
평범한 것은 싫고,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컬러를 찾기 위해 앱을 스크롤하며 집중력을 발휘했다.
"찾았다! 오늘의 컬러!"
망고튤립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꽃이다.
앙금으로 이 꽃의 색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고 공방에 도착했다.
오늘은 튤립 한 송이의 파이핑만 배우는 집중 수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결정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튤립의 매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하며 두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나는 꽃다발 디자인, 다른 하나는 튤립을 가로로 배열하여 꽃밭 같은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었다.
둘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꽃다발 디자인을 선택했다.
스케치를 시작하며 꽃다발의 대략적인 구도를 잡았다.
그때였다.
“저는 선생님 수업할 때가 정말 행복해요.”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말을 곱씹었다.
말의 무게가 순간적으로 내 안을 깊게 파고들었다.
목이 메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 시기는 왠지 모르게 허전함과 공허함을 느끼던 시간이었고,
앙금플라워 작업을 통해 내 마음을 채우고 힘을 얻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곳은 나를 위한 작은 쉼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그런 나의 감정을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말을 건넸다.
“아침 드셨어요? 김밥 먹고 시작할까요?”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아니요, 김밥 좋아요 :)”
공방 옆에 새로 생긴 ‘뚱땡이 김밥집’을 지나친 적은 있었지만
먹어보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왜인지 가게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사 오신 김밥은 예상 밖의 놀라움을 선사했다.
울외 김밥이었다.
한입 베어 물자마자 감동의 맛이 펼쳐졌다.
참기름 향이 공방을 은은히 감싸고,
톡톡 터지는 참깨의 통통함이 입안을 즐겁게 했다.
계란은 보드라운 색감으로 눈길을 끌었고,
당근과 어묵, 밥과 김은 모두 조화롭고 완벽했다.
그리고 울외의 매콤함은 특별함 그 자체였다.
‘이렇게 맛있는 아침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서 본격적으로 조색 작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튤립 사진을 보고 오묘한 옐로우와 딥핑크의 조합을 조색해 주셨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색상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파이핑 연습을 통해 진한 핑크부터 점점 연해지는 그라데이션 튤립을 만들었다.
옐로우를 섞어 코랄 톤 튤립도 완성했다.
나는 진한 핑크톤 튤립을 꽃다발의 중심에 배치하며 작업을 시작했고,
선생님은 코랄 톤 튤립으로 또 다른 느낌을 연출하셨다.
줄기와 잎의 표현은 튤립 꽃다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여백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생화 꽃다발을 참고해 설유화와 푸릇한 잎을 추가하며 더욱 생동감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
드디어 선생님과 나의 두 작품이 탄생했다.
작품을 완성하고 바라보며 내 마음은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그 순간만큼은 작은 행복에 깊이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