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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사람

by 문영

"선생님, 죄송한데 잠깐 깨셨다가 제가 먼저 잠들면 안 될까요?"

"네?"

"선생님 코 고셔서 제가 잠이 안 들어서요. 저부터 자고 주무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아... 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열심히 코를 골고 잠을 잤나 보다. 함께 방을 쓰는 동료교사가 오죽했으면 깨웠으랴.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물을 한 잔 마시고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핸드폰을 보며 J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J는 잠도 참 소리 없이 잔다.


연예인급 미모인 J의 등장은 센세이션 했다. 영어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J를 좋아했다. 예쁘고 다정하고 야무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반 학생들도 J를 선망했다. '그래, 엄마뻘인 나보다 예쁘고 젊은 사람이 좋지.'라며 그녀는 아이들을 이해했다. 여고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고였으면 이미 J에게 모든 관심을 내줬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J가 그녀의 반 수학여행 보조교사로 지정되면서 그녀와 함께하게 됐다. J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꼭 양치질을 하고 화장을 고치는 습관이 있었다. 그녀는 J의 생활습관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활동이나 생활 면에서 J는 의외로 털털했고 수더분했다. 반전은 J가 그녀보다 네 살 아래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10년은 어려 보이는데. 동안의 비결은 미혼이라며 웃는 J에게 그녀는 친근함을 느끼고 둘은 금세 친해졌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J의 짐가방을 보고 그녀는 또 한 번 놀랐다. 큰 캐리어에는 미용 도구와 드라이어, 각각 옷 커버로 덮혀진 여러 벌의 옷이 차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기 가방을 열기가 부끄러웠다. 큰 파우치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몇 개의 여벌 옷과 여행용 세면도구 및 샤워용품 세트가 전부였다. 역시 미모는 관리구나.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는 그녀가 먼저 씻고 로션만 바른 채 잠이 들었고 신나게 코를 골았던 것이다.






이번에 그녀의 동행교사는 K였다. 그녀 눈에는 K도 너무 예뻤다. 넘사벽이었다. 영어 선생은 다 세련되었나. K는 그녀보다 열 살이 많았으나 동안이었다. 절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였다. 코를 골다 깨워졌던 J와의 일이 있은 후 그녀는 누군가와 방을 같이 써야 할 때 만반의 준비를 한다. 코골이 방지 용품들. 입밴드와 코에 끼는 도구까지. 그녀에게 그때의 일은 너무나 수치스럽고 민망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K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 그녀는 역시 코골이 방지 용품들을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웬만하면 먼저 잠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녀는 J와 동행했을 때보다 마음은 훨씬 편했다. K와는 더 친분이 있었고 K는 J보다도 더 털털했다. 단체 생활에서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드디어 인솔 교사 방에서 둘이 있을 때 둘은 여러 수다를 떨며 웃고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그녀가 입밴드를 붙이고 코골이 방지 도구를 코에 끼고 누워서 눈을 감았다. K의 숨소리가 달라지면 잠을 자야지. 하는데


드르렁, 커억, 그그그 그 컥, 드르렁....


K가 코를 골기 시작했고 소리가 어마무시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자기가 코를 골면 어떡하지 걱정만 했을 뿐 상대가 코를 골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입밴드를 붙인 입에서 흐흐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의미 모를 웃음이 나왔다.


코 고는 소리는 계속 됐다. 그녀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 J처럼 K를 깨울 수도 없었다. 저렇게 쿨쿨 자는데 차마 깨우기가 뭐 했다. 그리고 상대가 깨웠을 때 느꼈던 그 민망함, 당혹스러움을 K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녀는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절박하게 그녀를 깨웠던 J의 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때는 조금의 원망도 있었던 터였다. 뭐가 그렇게 시끄럽다고 깨우기까지 하나. 그러나 정말 시끄러움을, 잠을 잘 수 없었음을 이제 그녀도 알았다.


"선생님~ 굿모닝. 잘 잤어요?"


씻고 나온 그녀에게 K가 부스스 일어나며 말을 건다.


"아~ 네. 먼저 씻었어요. 쌤 이제 화장실 쓰세요~"

"부지런하네~ 좋아요. 저 쓸게요."


K가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을 가고 그녀는 스트레칭으로 피로를 풀었다.


생리적 현상. 말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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