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잘못했는가
대한민국 법은 약자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아니, 법을 집행하는 과정이 그렇다. 그놈의 돈. 그게 많으면 내 맘도 좀 편할까.
상대가 움직이는 힘은 돈이다. 무슨 돈을 어떻게 줬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변호사를 골랐는지, 정말 딱 상대의 수준을 보여주는, 말도 안 되는 글을 의견서랍시고 65페이지를 빼곡히 써 왔다.
그런데 이게 정말 판사에게도 말이 안 될까? 우리를 모르는 사람한테는 먹히니까 이따위로 써 온 게 아닐까?
당장 한 달의 살림도 쉽지 않은 내게 변호사 문턱은 하늘만큼 높다. 저 사람은 학교에도 변호사를 대동한다. 그게 다 돈이고 한두 푼이 아니라던데. 법을 휘둘러 보겠다는 무소불위의 패기가 역겹다.
돈이 아닌 정의가 이기길 바랐다. 우리는 아직 변호사 없이 대응 중이다. 어차피 진술은 우리가 하는 거고 답변서도 우리가 써야 한단다.
말도 안 되는 의견서에 답변서를 직접 썼다. 함께 썼더니 꽤 괜찮은 답변서가 작성되었다.
함께.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단어이다. 나는 함께 울고 웃는 동료들로부터 힘을 받는다.
이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상처를 받은 반 학생들에게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사건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아는 아이들에게 이해 당사자는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한다. 무슨 말이 어떻게 쓰일지 감조차 오지 않아서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수업을 한다. 진이 다 빠진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도서관 문을 잠그고 불을 끈 채 내 자리에 앉아서 숨죽여 울었다. 이제는 정말 지쳤는데 나갈 수도 없다.
띠띠띠띠. 철컥.
갑자기 들어온 동료가 나의 우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운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속상하다.
교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고자 애써 왔다. 그런데 우리는 교사가 아니었단 말인가. 우린 나라로부터 공식적인 교사 지위를 받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는 교사였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에겐 우리가 피고용인일 뿐 교사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도대체 왜 우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함께 우는 그는 자신이 우는 이유를 알까
돈이 없어서 흐르는 눈물인가.
현실의 막막함에 흐르는 눈물인가.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흐르는 눈물인가.
배신감과 실망에서 흐르는 눈물인가.
그 모든 게 합쳐진 서러움의 표출일 것이다. 우리는 함께 울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