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울지 않던 날
"엄마 오늘 까마귀 안 우네~ 이제 오빠 나으려나 봐."
"..."
희유의 말에 엄마는 대답이 없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엄마의 모습이 너무 비장하다.
"오빠한테 안부 전해줘요. 저녁에 간다고. 우선 집에 가서 집 정리 좀 하고 신이 챙겨서 이따 저녁에 병원으로 갈게요."
"그래."
어제 희유가 부모님을 모시고 희성의 병문안을 갔다가 친정에서 잤다. 오늘 남편이 출근하면서 신이 어린이집을 데려다줄 것이다. 희유는 친정에서 아침을 먹고 정리한 후 집에 갈 채비를 마쳤다.
희성이 복통으로 병원에 방문했더니 신장암이라고 했다. 이미 신장은 터졌고 희성은 응급 수술을 마쳤으나 혈액이 돌아서인지 암은 여기저기 전이를 일으켰다. 지금 희성의 몸에 성한 장기는 없다. 그래도 희유는 희성이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픈 건 희유 몫이지 희성의 몫이 아니었다. 응급수술과 조직검사, 항암치료. 이게 모두 삼 주 안에 일어난 일이다. 희유는 희성이 아프다는 게 실감조차 나지 않았으나, 어제 병원에서 바싹 마른 몸의 초점 없는 눈을 보니 두려워졌다. 더군다나 엄마가 희성이 입원한 후부터 매일 아침마다 기분 나쁘게 까마귀가 울어댄다고 했다. 희유는 그 말이 섬뜩했다.
희유에게 희성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인생의 선배였고 자랑이었다. 희유는 겨우 한 살 많은 오빠를 열 살 많은 오빠처럼 따랐고 뭐든 희성에게 묻거나 맡겼다. 부모는 둘의 우애가 뿌듯했다. 희성은 희유를 살뜰히 챙겼고 희유는 희성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각자 결혼 후에도 둘은 변함이 없었다. 희유는 새벽같이 출근하는 희성과 수다 떠는 게 하나의 일과였다. 희유가 전업주부로 아이만 보면서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고 희성은 통근 버스를 타느라 새벽 출근을 했다. 출근 버스 안에서 언제나 동생의 톡을 받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갑자기 희성이 아프단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들 힘조차 없단다. 그것이 어떤 고통이고 무기력함인지 희유는 상상할 수 없다. 어제 만난 희성은 희미한 미소라는 예의도 차리지 않았다. 눈은 초점이 없다가 문득 희유의 남편에게 묻는다.
"제부, 지금 저한테 약이 몇 개가 들어가는 줄 아세요?"
"형님 힘드시죠?"
"항생제, 소화제, 진정제, 진통제, 항암제, 포도당, 안정제"
"밥 안 먹어도 되겠네. 오빠 얼른 낫자."
"희유야, 여기 호스피스 병원이야. 낫는 건 없어. 중환자실에 가고 싶은데 안 보내줘."
"........."
희성의 목소리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너무나 또박또박하다. 모든 상황과 고통을 고스란히 인지하고 감내한다. 자기 몸에 들어가는 약의 이름까지 다 꿰고 있고 그 약의 효능과 부작용, 성공 확률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 역시 천잰데, 천재라서 더 힘들구나. 희유는 희성이 안타깝기만 하다.
"희유야."
"응"
"겨우 스마트폰을 봤어. 오늘만 몇 명이 자살했는 줄 알아?"
"응?"
"자살을 검색해 봤는데 오늘만 일곱 명이 죽었대."
"흠"
"나는 너무 살고 싶은데 왜 죽을까?"
희유는 희성의 말에 적합한 답을 찾지 못했다. 불과 삼 주전까지 친구랑 맥주를 마시고 들어갈 정도로 건강한 일상을 살던 사람이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여전히 현실적이지 않다. 희유에게 희성은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걸 아는 사람이었고 모든 걸 이루는 사람이었다. 그랬듯이, 희성은 죽음도 보란 듯이 이겨낼 것이다. 희유는 그렇게 믿었다. 호스피스 병동이고 뭐고 희성은 나올 사람이었다.
"희유야, 너희 오빠 죽었어. 얼른 와."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울부짖음에 희유가 멍해졌다. 오빠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오빠가 숨이 넘어가려 한다 해서 부랴부랴 신이까지 챙겨서 온 가족이 차에 올랐다. 신이는 곤히 잠들었다. 희유는 엄마 전화를 끊고 꺽꺽 울기 시작했다. 희유에게 오빠는 공기였다. 공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믿기지 않는데 눈물도 꺽꺽대며 나왔다. 여기저기서 문자와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희성이 원래 아팠어?]
[너 어디야?]
[이 부고 뭐야? 무슨 일이야?]
많은 메시지 끝에 전화가 울린다. 희유 남매와 어렸을 적부터 친했던, 희성의 가장 친한 친구 준수였다.
"희유야, 잘 들어."
"응 엉엉"
"너 병원 도착해선 울면 안 돼. 부모님 네가 지켜야 해."
"응 엉엉"
"네가 정신 차려야 한다. 내 말 알겠지? 나도 곧 도착해. 같이 있을 테니까 너 꼭 정신 차려야 해."
"응 엉엉"
운전하는 유영도 코끝이 찡해진다. 뒷 좌석 희유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병실에는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희성이 거짓말처럼 누워 있었다. 희유는 희성의 표정에 어린 냉소를 보았다. 세상을 무시하고 가 버렸구나. 차라리 정신을 잃고 중환자실에 가고 싶다던 오빠였다. 그만큼 엄청난 고통에서 몸부림치던 사람이었다. 희유는 희성이 왜 그렇게 떠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사람의 이해 영역이 아님을 또 몸소 배우는 중이다.
유영이 신이를 할머니댁에 데려다주러 간 사이, 희성은 준수 말대로 정신 똑바로 처리고 꼿꼿이 빈소를 지켰다. 엄마는 혼절 직전이었고 아빠는 눈이 시뻘겋게 짓무른 채 말을 잃었다. 희유의 새언니는 천국 잔치를 시작하자고 했다. 희유는 그 대사가 못마땅했다. 믿음이 부족한가. 이것은 잔치일 수 없었다.
아빠를 잃은 희유의 첫째 조카는 겁먹은 눈으로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고 둘째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첫째는 신이와 같은 네 살이고 둘째는 아직 돌이 되지 않았다. 희유는 아득한 표정으로 조카를 바라봤다.
사람이 정말로 힘들면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희유는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채 오빠의 장례를 치렀다. 돌아와서는 죽어라 먹기만 했다. 인생의 허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하나님께 따지고 싶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지금껏 엘리트 코스를 밟던 희성이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며 살았던 자랑스러운 오빠였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과장으로 스카우트 됐고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중에 갑자기 모든 걸 두고 세상을 떠났다.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희성의 죽음 앞에서 희유는 허무함에 무너졌다.
희유를 견디게 한 건 신이와 유영이었다. 신이는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며 엄마 껌딱지로 귀찮게 하였고 유영은 희유가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퇴근 후에는 무조건 셋이 산책을 나갔다. 희유의 외출은 신이와 놀이터, 산책이 전부였다. 신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에 희유는 눕거나 먹었다. 희유의 삶이 단순해졌다. 그 단순한 삶에 새로운 공기가 채워지고 있음을 희유는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