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무게

by 문영

“저 걸어가면 돼요.”

“위험해요, 예쁘시잖아요.”

“어머, 감사합니다. 저 가 볼게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예쁘셔서.”

"예쁘긴요."

"도착하면 메시지 하나 줘요."


유영은 그냥 걸어가겠다는 성연이 신경 쓰인다. 그저 해맑기만 하고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조차 모르는 듯하다. 성연은 유영의 칭찬이 기분 좋다. 유영 눈에 성연이 마치 신이처럼 불안하다. 다섯 살 어린데, 희유랑 동갑인데 저 사람이 왜 갑자기 신경이 쓰일까.


성연이 유영 사무실에 입사한 지 육 개월쯤 되었다. 처음부터 성연이 유영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밝은 에너지를 준다는 걸 인지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남자 둘이 칙칙하게 운영하는 사무실에, 회계직원 성연은 활력소 같은 존재였다.


그런 성연과 처음으로, 셋이 술자리를 가졌다. 말도 많고 잘 웃는 게 꼭 희유같다고 생각했다.


희유는 신이랑 하루를 보내고 소파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는 중이다. 요즘 희유의 유일한 낙이다. 유영이 늦는 날은 오히려 마음이 여유롭다. 전업주부 5년 차인 희유는 음식으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 좋다. 어떤 날은 식고문을 당하는 느낌이다. 신이를 먹이기 위해 먹고, 가족의 밥을 챙기기 위해 요리한다.

깜빡 잠이 들 무렵, 유영이 들어왔다.


“왔어?”

“응, 신이는 잘 자?”

“응”


유영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더니 나오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식탁 위에 올려 놓은 핸드폰에서 띵똥 문자 소리가 난다.


[사장님, 저 잘 들어왔습니다! 문자 보내는 거 깜빡했네요. 내일 봬요♥]


하트가 왜 붙지? 왜 퇴근 보고를 하지? 희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문자를 봤다는 걸 티를 낼 수도 없다.

유영이 나오더니 역시나 핸드폰을 보고 뭐라 두드린다.


[오늘 고생했어요. 잘자요.]


유영은 문득 희유가 빤히 보고 있음을 느낀다.


“안 피곤해?”

“응, 이제 자야지. 당신은?”

“나 티브이 좀 보다 잘게.”

“응, 나 먼저 들어갈게.”


희유는 들어와서 신이 옆에 눕는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다. 저 사람, 뭐지? 이 시간에 메시지를 주고받아?


유영은 희유가 들어가고 소파에 기대어 하루를 돌아본다. 성연은 확실히 밝고 예쁘다. 연애할 때 희유 모습과 닮았다. 술에 취해 조잘거리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유영의 마음에 빨간불이 켜졌다.


[오늘 고생했어요. 잘자요.]

성연은 유영의 메시지를 자꾸 들여다본다. 예쁘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누군가 자기를 걱정해 준 게 참 오랜만이다. 쿨쿨 자고 있던 남편과 달랐다.



[점심 사 줘.]

[갑자기?]

[응, 신이 등원시키고 카페에서 책 보다가 지루해서.]

[그래, 12시 30분까지 사무실 앞으로 와.]


희유가 유영의 사무실 앞으로 가다가 문득, 첫사랑 성재와 헤어지던 때가 생각났다. 집 앞으로 갔다가 차였었지. 어떤 데자뷰 같은 느낌에 희유의 마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뭐 먹을까?”

“저기, 파스타집 있던데.”

“파스타? 그건 네가 잘 하잖아. 신이 없을 때 매운 거 먹지 그래? 감자탕 어때?”

“....”

“그러고 보니 감자탕 복장이 아니네? 아니 애 등원시키는 사람이 뭘 이렇게 꾸미고 갔대?”

“뭘 꾸며. 원피스 하나 입은 거 가지고. 감자탕 괜찮아.”

“가자.”


유영은 희유를 물끄러미 본다. 원피스 차림에 화장한 희유가 새롭다. 희유를 보는데 문자가 온다.

[사장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저희 카펜데 커피 사갈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먹고 들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누구랑 그렇게 메시지를 주고받아?”

“아, 성연씨. 회계직원. 커피 사다줄까 묻네.”

“그분 결혼 했댔나?”

“뭘 그런 걸 물어. 나왔다, 먹자.”

유영이 희유에게 감자탕을 덜어 주는데 이번엔 전화가 온다.


“잠시만”


유영이 나가서 한참 통화하고 들어오는 동안 희유는 감자탕의 둥둥 떠 있는 기름만 본다.

“왜? 먹고 있지, 그냥 있어.”

“커피 뭐 사다줄까 물어?”

“응? 아니야, 성연씨.”

“그럼 누군데?”

“거래처. 왜 이래? 밥 먹자.”

다시, 식탁 위에 있던 유영 핸드폰에 메시지가 뜬다.

[사장님, 저희 사무실 왔어요^_^ 조심히 오세요.]

“친한가 봐? 곧 볼 텐데. 굳이 복귀했다고 메시지까지 보내고?”

“아,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이걸 왜 봐?”

“팝업이 뜨잖아.”

“그래도 안 볼 수 있지.”

“못 볼걸 봤어? 왜 이래?”

“됐어, 먹어.”


희유는 감자탕을 거의 먹지 못했다. 유영은 그런 희유가 신경이 쓰이지만 별로 할 말이 없다. 아까 전화도 성연이었다. 공동 사장인 김 사장이랑 밥을 먹는데 김 사장이 유영 혼자 밥 먹을 거라고 했다고 확인 차 전화했단다. 시덥잖은 전화였지만 성연의 수다와 웃음을 끊을 수 없어서 통화가 길어졌다.

“커피 마시고 가지?”

“됐어, 성연씨랑 마셔.”

“희유야?”

“갈게.”


자기도 모르게 나온 대사에 놀라서 돌아섰다. 괜히 눈물이 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희유를 보며 유영은 알 수 없는 불편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갔다.


“사장님, 오셨어요?”

“네.”

“사장님 이거 어때요? 되게 예쁘죠? 요 앞에서 파는 거 샀어요.”


성연이 다육이 화분을 들이대며 묻는다.

“네, 그렇네요.”




“사장님, 있잖아요, 오늘 저 늦게 들어가도 되는데, 뭐 시키실 일 없어요? 저녁 같이 드실래요?”

“없어요. 그리고 저녁은 집에서 먹을게요.”

“네.”

“그리고 성연씨, 업무 이야기 아니면 하지 맙시다.”

“네? 아...”

“메시지에도 하트 달지 말고. 미안해요.”

“아, 네. 죄송해요.”

“아니, 내가 미안해요.”


무안해하는 성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너무 오버스럽지 않나, 유영 스스로도 자신 없다.


후다닥 나가는 성연의 얼굴이 발갛다. 어제는 예쁘다더니 오늘은 사적인 말을 하지 말란다. 예쁘다고 한 사람도 유영이고 도착하면 메시지 보내라고 한 사람도 유영이다. 늘 도움을 주는 사장이었다. 은근히 불편하지 않게 챙겨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던 사람이어서 성연은 김 사장보다 유영이 더 좋았다. 좋은 동료가 되고 싶었던 것뿐인데 갑자기 선을 긋는 유영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아빠~”

“왔어?”

“자, 엄마, 선물.”


유영이 희유에게 큰 곰인형을 내민다.


“우와, 되게 크다. 아빠 나는?”

“우리 신이는 자동차!”

“와 아빠 최고~ 신난다.”

“뭐야? 갑자기?”

“응, 마트 갈 일 있어서 갔다가 이거 세일하길래. 너 인형 좋아하잖아.”


곰인형을 품에 안은 희유가 피씩 웃었다. 유영은 사귀자고 고백할 때도 귀여운 인형을 선물했었다. 희유는 그 인형을 아직 갖고 있다.

“고마워. 씻고 와. 밥 차릴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유영의 손에 핸드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