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이 없는 교사가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

by 문아영

갑작스러운 멀미에
사탕을 한 알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학부모로부터 겪었던 모욕의 순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던 순간,
여러 질타의 목소리들이
영상처럼 흘러가고 눈 속이 뜨끈해졌다.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
나는 몰래 눈물을 삼켰다.

존중이 보이지 않습니다.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여 진행한 일이었다.
수당도 성과도 없이 말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학생이 몰래 한 녹음 속 우리의 언행에서 존중이 보이지 않는다며 학부모들은 우리를 질타했다.

교사가 아이를 가르친 게,
방법이 엄했다고 범죄가 되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내 가정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 일이 일파만파 퍼졌을 터인데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신뢰하고 따른다.
맑은 눈동자들을, 내 아이 같은 그들을
나는 외면하지 못했다.





대단한 소풍이었다.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바다로 가서
아직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해변 모래사장에서 스페이스볼을 하고
재래시장에서 맛있는 걸 사 먹고
새벽까지 여러 게임을 했다.
누구보다 승부욕이 불타올라
몸을 불사르고 목청껏 외치는 내게,
아이들은 와하하 환호하며 응원을 보내 주었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긴장이 탁 풀리며 멀미가 났다.

한 분기가 끝이 났다.

소중한 추억을 또 쌓았건만
부정적인 기억이 다시 엄습했다. 긍정적인 감정조차 두렵다.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나 여력이 없다.






학생들과 함께 누린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내가 한 이야기들이 오버스럽지는 않았는지 반추했다. 내가 이래도 되는지, 이렇게 누릴 자격이 있는지 자신이 없다.

어느 것도 파도를 잠재우지 못하여
파도가 더욱 거세졌다.

나는 여전히 있지도 없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검찰에게선 소식이 없다.
결단의 시간이 늦춰지는 기분이다.

내게는 여기에 있어야만 하는 당위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상처받은 나를 설득시킬 수 있는, 남아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소송만이 아닐 때, 나는 즐거움도 슬픔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누릴 수 있을 듯하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