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이 이끈 방황
두통이 나를 쥐고 끌어댔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순간순간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약도 듣지 않았다.
수업을 펑크 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나왔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수업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변명해 본다.
이 또한, 노력하는 사람의 방황이라고.
수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 세계에는 영적인 것이 존재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며,
삶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범답안이었고,
내가 이해한 ‘파우스트’의 전제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 세계에 영적인 것은 없고,
인간은 완전하며,
삶은 굳이 착하게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진지했다.
사회는 결국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합이기에,
필연적으로 악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과 논쟁했지만,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파우스트는 그저 허구의 문학에 불과하다.
물론, 애초에 허구이긴 하지만.
두통은 하루 종일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수업은 논쟁으로만 끝났다.
원래 준비했던 과제는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에 관한 글쓰기였다.
하지만 내주지 못했다.
다음 시간에, 조금 더 이야기한 뒤에야 낼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했다.
조금만 더 준비했더라면,
조금만 덜 아팠더라면,
더 나은 수업을 했을 텐데.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옆자리 선생님이 이사를 하고 있었다.
오 년이라는 시간이 쌓아 올린 짐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 반 아이들이 끌개를 가져와
선생님의 이사를 도왔다.
끝이 주는 허무는 이미 충분히 겪은 터라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다만, 쫓겨나는 모양새를 만든 그가
못내 원망스러웠다.
좋았던 감정은 사라지고,
나는 요즘 끊임없이 그를 원망한다.
그 요란한 이사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그만두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사실이 또 한숨을 불러왔다.
실을 정리해야 했지만
수업은 이어졌고, 도서관은 분주했고,
무엇보다 머리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내 자리만 대충 정리한 채
퇴근했다.
아무 음악도 듣지 않은 채,
두통을 고스란히 견디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지향하며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가.
나는 이곳에 언제까지 머물 것인가.
내가 퇴근하는 동안에도
학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갔고,
단톡방은 끊임없이 울렸다.
머리는 이제 깨질 듯 아팠다.
병원을 가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내적 방황이,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