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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앤 Nov 16. 2024

내일은 네 생일이라서

불필요하게 뛰어난 기억력, 그리고 수취인 없는 생일편지

매년 11월 17일. 한 번쯤은 까먹을 법도 한데, 나의 전두엽에 내장된 기억장치는 절대 이 날을 잊지 않는다. 바로 이 날이 네 생일이라는 점을. 


잊을만하면 가끔씩 연락 오는 너. 이제 더 이상 너의 연락으로 마음이 주책맞을 만큼 동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덤덤하진 않지만, 한 번쯤 연락을 하면 괜히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너의 연락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게 된다. 


너의 존재는 '금기'에 가까운 그런 존재이고, 우리는 그냥 먼발치에서 아주 가끔씩 서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사망선고를 내리지 말자는 맹세를 할 뿐. 다시는 내가 널 만날 일은 정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가끔은 너와 나 서로 이용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2011년작)'을 두 번 보고 우리도 분명 권태를 이기지 못한 채 아무 의미 없는 사이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란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린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기도 하고. 그냥 서로의 기억에 머무는 그런 비밀스러운 존재로 남는 게 차라리 나은 거겠지. 


만성 불면증을 앓고 있는 나는 11월이 되면 밤마다 상상을 하곤 한다. 너를 우연히 만나는 그런 상상. 

너를 정말 우연히 만나면, 나는 어떤 말을 먼저 할까. 널 보고 웃을까? 아니면 그냥 못 본 체 지나갈까? 아니면... 눈물을 머금은 채 발은 바닥을 떼지 못하고 무엇에 홀린 듯 너를 바라볼까.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여 너를 대하는 방법들을 매일밤 다르게 실현되지도 않을 일을 연습한다. 


표면적인 나의 일상과 인생은 아무렇지도 않다. 너의 존재는 고이 숨겨둔 나의 비밀이기에 비밀로서 아름다운 우리의 시간이 너에게도 조금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길. 실은 인생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집착인 듯하다. 화염처럼, 그 뜨거운 불 구덩이에서 서로 타서 죽지 않기 위해 부둥켜안으며 서로를 탐닉하고 위로했던 그 오묘하고 희한한 시간들이 가끔씩 그립다. 


그렇지만 우리의 시간은 그때만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다시는 반복을 할 수 없는 그런 사이였기에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각자 걸어가며 평행선도 아닌 그 길에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도 이런 굳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년 11월 17일 주가 다가오면 매일같이 무슨 통과의례처럼 너를 떠올린다. 너의 얼굴과 너의 숨결, 그리고 너의 눈동자. 그 모든 것들이 이때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너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정말 너를 잊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써보려고 한다. 마치 거친 숨결에도 떨어지지 않고 매달렸던 민둥이 민들레 홀씨를 매정하게 손으로라도 떼어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이제 내 마음속에서 너를 지우개가 아닌 칼로 도려내려 한다. 


그럼 이제 자국도 남지 않겠지. 대신 상처를 얻겠지만. 그 상처를 그냥 안고 살아가기로 그렇게 결심한다.


너에게 직접 말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너의 인생을 응원하며,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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