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밀이 부여하는 낭만을 좋아하다 못해 비밀 자체가 내 정체성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밀, 촘촘하게 숨기는 행위에 대한 나의 정의는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삼아 그것을 숨기기 위한 급급함이 아닌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타인과 공유하기보다 나 혼자만의 감정을 보관하며,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감정 표출과 의사 표현에 정직, 아닌 매우 솔직한 편으로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분을 언짢게 할 때가 많은 부류의 인간에 속한다. 그래서 말보다는 곱씹으면서 여러 번 삭제와 탈고를 반복할 수 있는 글이 훨씬 편하다. 나를 글로 먼저 본 사람들은 말하는 나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오히려 말로 나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내가 쓴 글을 볼 때 기쁘게 놀라거나 감명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나한테 습관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는 네 속을 모르겠다.”
나도 내 속을 잘 모를 때가 다반사인데, 생물학적으로 나를 낳아준 엄마라는 사람 조차 지금은 완전히 독립된 살덩이의 마음속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섭리인 듯하다.
곱씹기라는 단조롭지만 매우 소중한 행위를 통해 내린 결론은 혼자 있는 시간을 그 무엇과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인연이 없는 그리고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 무리 속에 조용히 파묻혀 같은 종족인 인간의 숨결은 느끼되 명목상 혼자 있는 것을 비밀이라 여기며 시간의 여신이 질투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는 이 특별한 시간을 동경하는 사람이 내 정체성의 일부라는 결론을 내렸다. ‘혼자’라는 자발적이지만 물리적 고독은 내가 태어난 이유와 목적을 다듬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또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술 랩소디
어렸을 때부터 혼자 공상하거나 돌아다니길 좋아했고, 여행 역시 홀로 여행을 즐긴다. 굉장히 편협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조차도 가끔 버거워 나를 좋아하는 친구, 가족, 그리고 연인들의 관심을 간섭으로 치부하며 갑자기 사라지는 행위도 서슴지 않으니, 이 얼마나 무례한 행위를 일삼는 이기적인 인간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사실 이기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욕을 고막이 썩어 문들어질 정도로 들으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포기할 수 없으니. 솔직히 말해 ‘네가 걱정돼서 그러지.’라고 사람들은 내게 이야기하지만, 이 것은 핀잔이며 잔소리이고, 그들 또한 나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인한 걱정이 결국 그들의 정서를 지배하는 불안함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불쾌한 불안이란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대화를 위한 대화도 필요 없는 혼술을 좋아한다.
자카르타에 있는 Koda Bar 그리고 베스퍼 마티니
퇴근길에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바에 들어가서 진토닉이나 톰 콜린스 같은 마시기 가벼운 칵테일을 시켜 놓고 30분 또는 1시간 정도 초점 없이 멍 때리며 내 머릿속에서부유하는 수많은 단어와 생각들의 집과 방향을 찾아주는 그런 공상의 시간들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돈 주는 학교에 억지로 다니는 유일한 목적 역시 공상 행위의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이며, ‘목표 수립’으로 생각 자체를 유형(tangible)에 가두었던 어렸을 때의 날들을 지금 이 행위들로 보상 아닌 보상을 하고 있다. 인생은 발랑스(Balance)임을 강조하는 헤르큘 푸아로(Poirot) 형사처럼, 내 인생 역시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경쟁하고 노력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내 성격에 맞는 옷을 찾아 일부 사회와의 타협을 하며 휴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현재를 아마도 가장 행복한 시절로 추억될 것 같다. 특별하고 거창한 꿈을 꾸지 않아도 일상의 낭만을 쫓기는 감정 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유. 아마도 내 중년시절 그리고 말년 시절은 내가 살아온 것들이 나름 절묘하게 어우러져 지금과는 새로운 즐거움과 소중함을 맛보겠지. 이런 생각이다. 마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칵테일처럼.
스픽이지 바
간판도 없어 아는 사람들만 간다는 일명 스픽이지 바 (Speakeasy Bar). 지금은 복고의 낭만을 추억하는 레트로바를 스픽이지라고 하는 것 같다. 요즘 화두인 클럽하우스(취미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취미를 공유하는 폐쇄적인 사회관계망)랑 비슷한 장소라고 보일 수 있는데, 사실 스픽이지는 익명으로 24시간이라는 시간에서 막판의 일부를 지내고 쓸데없는 관심 또는 불필요한 말 섞기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와 유일하게 교감하는 대상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칵테일 한 잔 때로는 기분에 따라 여러 잔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스픽이지(Speakeasy)는 말 그대로 암암리에 비밀스럽게,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스픽이지라는 말 그 자체는 1844년 한 영국 해군의 회고록에 등장하는데, 스픽이지 숍(speak easy shop)은 무면허로 술이 판매되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마도 신대륙에 발길이 닿았던 영국 해군이 암암리에 술이 판매되는 신대륙의 어느 익명의 장소를 보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사실 이 스픽이지바는 대공황 이전 미국황금기의 시작을 알리는 20-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영화에 사교모임의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도 개츠비가 비밀스럽게 ‘노는 곳’으로 스픽이지 바가 소개된다. 이 책은 이해보다는 시험공부를 위해 글자만 꾸역꾸역 읽을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 시기에 읽어서 지금은 줄거리만 드문드문 기억난다. 아마 책을 읽었을 때 스픽이지가 뭔지도 모르면서 데이지와 개츠비의 사랑도 '이게 뭔 소리지?' 라며 불평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내 지능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영화되는데, 시험의 굴레에 벗어나 자유의지로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2013년 같은 제목으로 나왔다. 위대한 개츠비로. 러닝타임이 매우 긴 이 영화에서는 스픽이지 바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발소에서 친구라고 만난 중년의 신사와 함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벽 뒤로 가는 개츠비와 캐러웨이, 어두운 좁은 통로를 지나면 거의 헐벗은 복장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무용수들,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보타이를 풀어헤친 남자들의 무릎 위에 앉아 깔깔대는 여성들 (일명 플래퍼(flappers)라고 일컬여진 여성들), 테이블에 삥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무리들 등 스픽이지는 남녀, 인종, 계층 구분 없이 누구나 정신 줄 놓고 즐기는 조금은 퇴폐적인 사교 장소였다.
위대한 개츠비(2013년) 영화의 스픽이지 바 장면
스픽이지 바는 1920-33년 미국 금주령 시대 (일명 prohibition era)에 성행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픽이지 바 주인들이 경찰들의 눈을 피하게 위해 마치 동물원처럼 동물들을 바 곳곳에 배치하여 구경꾼들을 모집하기 위해 호객행위를 벌였고, 동물을 보러 온 - 실은 술을 마시러 온 -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음료’이란 명목으로 음료 같은 술을 제공하면서 법망을 피했다. 그래서 스픽이지 바는 “눈먼 돼지(blind pig)” 또는 “눈먼 호랑이(Blind tiger)”이라는 속어로 불리기도 했다. 내 생각엔 스픽이지를 알면서도 주인-경찰 간의 뒷돈 거래를 하던 경찰들을 눈먼 돼지와 이빨 빠진 호랑이로 부른 것 같기도 하다.
스픽이지 바는 그야말로 ‘다양성’ 그 자체로서, 체면치레 없이 노골적으로 쾌락을 향유하던 곳이었다. 금욕을 강요하던 시대에 법망을 피해 일명 ‘물장사’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바 주인들은 물론 스픽이지를 영감을 위해 방문하던 보헤미안과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 그리고 스픽이지바에서 진(Gin)을 이용한 다양한 칵테일들이 탄생했는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불법을 통해 역사 그리고 문화가 만들어졌다.
Spill and Still
브런치 독자들에게만 공유하는 나의 비밀 장소
21세기 스픽이지 바는 복고를 지향하면서 무늬만 비밀인 곳들이 많다. 우선 간판이 없다. 입구도 숨어있는 곳들도 있고, 미리 전화해서 암호를 알아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스픽이지 바들은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주로 파는 곳들이 많아서 가성비가 유일한 기준이었던 대학시절엔 가고 싶은 바들은 있었지만 자주 갈 엄두가 안 났었다. 지금은 거의 먹고 마시기 위해 노동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엥겔 개수는 매우 높기에, 일주일에 한 번은 책이나 공책을 하나 들고 자카르타에 새로 생긴 스픽이지 바에 놀러 가곤 한다.
자카르타에는 정말 아이러니하게 팬데믹 기간 동안 새로운 스픽이지 바들이 시내 주변에 많이 열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멘뗑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Spill and Still이라는 곳인데, 30대 초반의 인도네시아 청년 바텐더 2명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 곳은 커피를 이용한 술도 많고, 특히 인도네시아 허브와 향신료를 이용해서 만든 다양한 칵테일들이 있는데, 신선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동남아 퓨전 음식 레스토랑, GIOI 3층에 비밀스러운 여닫이 문을 열면 붉은 카펫의 회오리 계단이 있고, 이 곳을 올라가면 위치한 아담한 스픽이지 바, Spill and still. 헤드 바텐더 야콥(Jacob)이 직접 만든 스위트 베르무스로 만든 디플로맷(Diplomat)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 바에는 야콥이 지인들한테 선물 받은 다양한 술들이 진열장에 멋지게 전시되어있는데, 특히 그의 진 컬렉션도 탁월하다. 한 번은 나에게 건파우더진(Gun powder Gin)을 이용한 진마티니 제조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를 만나지 못할 때 집에서 제조해 마신다. 레몬 껍질을 다듬는 방법, 레몬으로 칵테일 잔 전체를 미스트 하는 방법, 진과 드라이 베르무스를 희석하는 방법 등 어떻게 보면 영업 비밀을 알려준 야콥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여기 말고도 자카르타엔 스픽이지바의 동네 시초라고 할 수 있는 D.Classic 그리고 도쿄 긴자 스타일의 젠틀피플 스픽이지 바 Koda, 인도네시아 최대 식음료 회사인 이스마야(Ismaya)에서 운영하는 스픽이지 바 A/A Bar 등 다양한 곳들이 있다. 그리고 젊은 바텐더들이 많아지고, 인도네시아에 직접 증류하는 증류주 (주로 진, 보트카)가 세계 주류업계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멋들어진 술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희소식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알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지만.
스픽이지 바는 내 미각과 후각에 각성제 같은 칵테일을 벗 삼아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공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멋진 바텐더들과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 할 수 있는 재주가 없어서 그들과 담소를 나누지는 않지만 호기심 많은 수습생처럼 때로는 새로운 술 그리고 적절한 칵테일 제조법을 배우기도 한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매력 중 하나인 비밀스러운 은밀함이 더욱더 성숙해지라고, 일부러 말도 안되는 허황된 핑계를 만들어 스픽이지 바를 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