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단어가 그러하듯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라면 그 어감도 기분 좋기 마련이다. ‘멋’또한 그러한 것 같다. 맛과도 비슷한 멋. ‘멋’은 고유 한글인 거 같은데, 세련됨과 품격, 고상함과 우아함은 물론 그 이상의 형언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매력이 모든 획에 묻어있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듣기도 좋고 쓰인 글자의 자태도 아름다운 ‘멋’. 멋이라는 것을 구태의연한 영어사전식으로 해석하면 sophisticated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단어는 멋이 가진 성격 가운데 세련됨이 지배적인 단어이다. 고전적인 우아함인 클래시(Classy)는 빠진 느낌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번역자라면 ‘taste’라고 할 것 같다. 물론 이 것은 혀의 감각을 깨어나게 하는 외부적 요인인 맛으로 통용되는 영어단어지만, ‘멋을 아는 여성이다.’라는 단어를 영어로 표현할 때, she has good taste.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드는 황홀한 느낌이 그러하듯 각자에게 어울리는 고유의 느낌을 옷차림, 자세, 말투, 선호하는 것들로 표현하는 ‘멋’또한 충분히 황홀하고 매혹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멋쟁이
나는 멋 부리는 것과 굉장히 거리가 먼 무형 무색의 인간에 가깝다. 단순히 빨래 값이 아깝고 빨래하는 그 행위 자체가 귀찮아서 편리함이라는 이유로 색채를 거부하며 검은색 옷을 고집한 지 벌써 1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쇼핑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슈퍼마켓에서의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고 길쭉하고 흐리멍덩한 내 눈동자는 나름의 생기를 발휘하며 반짝거리는데, 옷과 장신구를 살 때는 이상하게 흥미가 없다. 옷이든 신발이든 우선 뜯어지거나 구멍이 나면 필요에 의해 구매라는 의사결정이 내려질 때에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부류의 인간이기에 내 얼굴과 몸뚱이에 어울리는 흔히 말하는 ‘스타일’을 아직도 못 찾고 있는 본의 아닌 패션 미숙아다. 물론 나 역시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은 내숭에 가까운 거짓이겠지만,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내 얼굴에 덪칠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임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냥 내 주제를 파악하며 매일 빨래할 필요 없는 시커먼 옷을 입고 노 메이크업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멋진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매체에서 보거나 실제로 만나면 심장박동수는 안드로메다의 속도를, 나름 평균 이상의 조리 있는 말본새를 자랑하는 정돈된 나의 말투와 어휘는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채 상대방을 갸우뚱하게 만들곤 한다. 빛의 속도로 반해버린 그들을 대상으로, 그렇다고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 오묘한 경계 속에서 멋지다고 느끼는 상대를 보면 그 찰나의 순간 짧게나마 이성과 감각이 마비된다는 '사로잡힘'을 경험한다. 이 경험이란 강렬함 그 자체다.
사람마다 멋의 기준과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특히 중력의 심술을 현명하게 극복해나가면서 나이들 수록 멋있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조지 클루니 같은 사람들 말이다. 젊음에 집착하는 비굴한 인간이 아닌 나이 듦을 수용하고 이를 온전히 즐기면서 새로운 여정으로 감싸는 사람들의 얼굴 골격은 마치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앤티크 가구 빛처럼 멋스럽고 섹시하다. 나이 들면서 섹시한 사람들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느낌의 날림이 아닌 중후하고 무겁지만 압도하는 분위기가 실로 대단하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 유명인사로 소박하지만 당당하고 멋지게 활동하시는 밀라논나의 분위기 역시 거의 나체에 가까운 이미지로 섹시함을 강요하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를 활보하는 언니들(시크릿 엔젤들)과는 비교가 불가한 정도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영역이라는 것은 상하의 개념이 아닌 완전히 다른 것이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천박한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하게 이 ‘멋’이라는 단어는 거의 남성의 전유물인 형용사로 쓰이곤 했지만 뭔가 일률적인 느낌이 단어를 지배하던 과거와 달리 이 멋이라는 복잡하지만 매혹적인 어휘는 그 저변과 범위를 넓히면서 유연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더니 비로소 다양성을 품는 단어가 되었다.
멋있는 사람들
나는 도대체 누가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오랫동안 생각을 해보았다. 당연히 이 고상한 단어를 나 따위의 미천한 미물이 생각하는 허접한 단어로 개념화하는 것이 우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다양한 것에 대한 나만의 개똥철학은 꼭 정립하고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쓸데없는 고집이 있는 인간이기에, 멋진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았다.
“분위기 자체가 매력적이며 대부분의 타인을 유혹할 있는 아우라를 풍기며, 퇴폐적인데 슬픔의 눈동자와 짙은 눈썹이 지배하는 얼굴과 선명한 턱선과 목덜미 뒷선이 이어지는 골격을 가진채, 말수가 적지만 정확히 아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절제되고 많은 뜻을 품은 단어를 활용하여 생각과 개념들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이상형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나의 이상형은 저 개념보다 훨씬 더 터무니없기에 생략하도록 하겠다. 나의 구태연한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effortless beauty’ 정도로 구현할 수 있는데, 한 때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스타일의 스트리트 패션이 유행하면서, 밋밋함에 가까운 옷차림과 화장을 구사하면서도 나름의 내추럴한 멋을 혼합시킨 스타일이라고나 해야 할까. 노력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아마도 내가 말하는 멋과 가장 유사한 개념일 것 같다.
인간의 욕구는 당연히 시각화가 지배하기에, 굳이 사례를 들어보자면 나는 마리옹 꼬띠아르(Marion Cotillard) 또는 프랑수아 사강(Froncoise Sagan)과 같은 사람들을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나 따위 꼬맹이가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사랑으로 아우라 자체를 품고 태어난 선택받은 여인들이라고 해야 할까. 여성성을 거부하지 않고 그 성을 나름의 스타일로 온전히 가꾸면서 각자의 분위기에 맞는 지식과 예술을 겸비한 그들의 자태를 나는 동경한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오장육부와 껍데기는 매우 초라하지만 그래도 내가 동경한다면 가꿀 수 있는 느낌만큼은 프랑스의 그녀들처럼 되어보겠다고 나름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각고의 노력을 한다. 역부족인 나의 뇌가 고달플 정도로.
프렌치 마티니
나는 공공연하게 말한다. 프랑스 사람들 별로라고. 내가 프랑스에 실제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동경하는 파리를 극혐 하며, 내가 겪어본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이렇게 말하면 조금 실례되지만 속된 말로 ‘밥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여배우들의 아우라와 멋은 온전히 내 기준에서 볼 때 단연 돋보이고, 그들의 퍼포먼스 그리고 유명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는 몇몇의 화보를 보고 있으면 호빵 같은 나의 두 볼이 불그스름 변하며 ‘반하는’ 행위를 몸소 체험하곤 한다. 프랑스 여성들과 친구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의 멋짐은 부인하기 힘들며, 가끔 그들이 입는 스타일과 비슷한 옷을 사려고 하는 나의 몸짓을 발견할 때, ‘그래 프랑스가 멋있긴 하지.’란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만다.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이지만, 그래도 프랑스, 당신의 멋은 내가 부인할 수 없기에.
내가 몇몇의 프랑스 여배우를 좋아하는 것처럼, 프랑스 문학, 영화 그리고 프랑스 페이스트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프랑스에서 만든 거니깐 괜찮아.’라는 일반적 오류를 범할만한 안이한 생각은 결코 아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추려보니 대다수가 프랑스인이 쓴 책이거나 프랑스에서 제작된 혹은 프랑스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이거나, 우연히 먹었는데 그것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페이스트리였기에, 이런 구태연한 부연설명 없이 내가 정말 좋아한다고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거 5개 이상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란 소리다.
내가 최근에 자주 마시는 칵테일 또한 그러하다. 내가 좋아하는 마티니, 드라이 마티니가 지겨워져서 다른 스타일의 마티니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프렌치 마티니인데, 색깔도 아름답고 맛도 좋은 이 칵테일의 이름이 '프렌치'니 말이다. 2020년 12월 25일 예수의 탄생일을 전 세계가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Christmas는 말 그래도 그리스도의 미사란 뜻으로 예수 탄생을 의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 유무를 떠나 평소에 즐기지 않는 것들을 먹고 마실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고, 반짝거리며 따뜻한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곤 한다. 나는 Bonneville Cocktails라는 칵테일 전문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데, 동부 런던 엑센트가 퍽이나 섹시한 민머리의 유부남 바텐더가 운영하는 이 채널에서 2020년 크리스마스 기념 칵테일 5선 가운데 프렌치 마티니(French Martini)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칵테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Bonneville Cocktail Collection Youtube
이 마티니가 프렌치 마티니인 이유는 1685년부터 프랑스에서 생산된 산딸기 술인 샴보드(Chambord)를 첨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부드러운 거품을 만드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파인애플 주스를 넣어 드라이 마티니랑은 완전히 다른 맛과 분위기를 선사한다. 샴보드는 정말 병도 향수병처럼 예쁘고, 라즈베리의 새콤달콤한 맛이 정말 매력적인 과일 증류주이다. 강한 술맛보다는 절묘한 배합을 추구하는 듯한 프렌치 마티니는 답답한 상사와 하루 종일 체 한듯한 시간을 보낸 후 해방감을 만끽하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칵테일이라고나 해야 할까.
Chambord (프랑스 중부 도시 샴보드 특산품)
프렌치 마티니는 1980년대 뉴욕에서 당시 뉴욕 레스토랑 업계의 유명인사이자 큰 손이었던 키스 맥날리(Keith McNally)가 운영하던 뉴욕의 한 바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1996년 뉴욕 소호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인 발타자르(Balthazar)에서 바 메뉴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레스토랑의 존재 자체를 몰랐지만 찾아보니 굉장히 유명한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영화와 소설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20-30년대 금주령 시기에 분수처럼 탄생했던 칵테일과는 달리 술보다는 ‘맛’ 자체에 집중하던 시기여서 칵테일이라기보다는 식전주와 같이 가벼운 느낌의 음료의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백종원이 가장 유사할 것 같은데, 레스토랑 전문 기업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restauranteur라는 직업으로 뉴욕시내의 나름 유명인사였던 키스 맥날리는 뉴욕타임스에서 ‘downtown’의 개념을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칭할 정도로 뉴욕 요식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노동자 계급에서 태어난 사내로 아마추어 복서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훗날 뉴욕으로 건너와 수많은 레스토랑을 운영한 사람이다. 아마도 빌더스 티(Builder's Tea, 강한 홍차잎 티백을 우린 차에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는 영국 블루칼라를 대표하는 차)와 소시지 롤을 주식으로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르주아들을 농락이라도 하듯, 맥날리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지만 맛있는 음식과 멋진 식문화를 동경하며, 마음속에는 맛과 멋을 품은 꿈 많은 사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프렌치 마티니(French Martini) 레시피
프렌치 마티니는 보드카 30ml, 샴보드 20ml, 파인애플 주스 40ml를 얼음과 함께 셰이커에 넣고 섞은 후 칵테일 잔에 두 번 체에 거르면 완성된다. 문제는 자카르타에서 샴보드 구하는 것은 거의 내일모레 달나라 여행이 가능한 것만큼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샴보드를 대체할 수 있는 크렘 드 카시스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달콤함이 확실히 덜하다.
French Martini (코다 스타일)
내가 자카르타 시내를 돌아다니며 샴보드를 구걸하러 다니고 있을 때, Koda Jakarta에 명망 높은 바텐더 유타카(Yutaka)에게 프렌치 마티니를 만들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샴보드가 없어서 프렌치 마티니는 아니지만 Something like French Martini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자카르타에서는 잘 만질 수 없는 아름다운 칵테일의 멋스러운 자태에 내 눈동자가 이미 지배되었기 때문에 감탄사의 연발을 예고했겠지만, 프렌치 마티니와 비슷한 코다 스타일의 칵테일 맛 또한 정말 아껴먹고 싶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샴보드가 없으니 프렌치 마티니를 못 만든다고 고집 피우지 않고, 나름의 유연성을 발휘하여 프렌치도 아닌 주제에 프렌치 마티니를 달라고 성가시게 요구하는 나 같은 손님에게 정성 들여 만든 이 한 잔은 내가 어설프게 집에서 마구잡이로 제조한 프렌치 마티니와는 정말 다르다.
프렌치 마티니는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칵테일이다. 원색이지만 촌스럽지 않은 붉은빛이 감도는 노란색이 퍽이나 아름다운 칵테일, 나는 이 멋스러운 칵테일처럼 다양한 멋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인생을 장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