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리란 무엇인가 시리즈
문자 그대로 사회윤리는 개인윤리와 다르다. 사회윤리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일단 개념 정리부터 해보자. 이를 위하여 Walter Kerber의 Sozialethik의 번역서 서문에 나온 내용을 정리해 본다.
흔히 윤리학은 한 사회 안에서 개별 인간이 지켜야할 덕목을 분석하고 그 타당성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회윤리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개인이 모여 살아가는 자리인 사회 자체의 윤리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종래의 윤리학은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서 ‘올바른’ 도덕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실천할 의지와 태도를 갖추면 그 사회가 도덕적인 길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사회윤리에서는 비록 그러한 ‘윤리적인’ 개인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사회 자체가 비윤리적인 경우에는 소용이 없는 것으로 여긴다. 곧 교육을 통하여 윤리적 덕목을 내면화하고 실천할 의지와 태도를 지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사회 자체가 소수의 기득권자들의 이득만을 보장하는 제도를 수립하고 그것을 법으로 정당화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윤리이다. 곧 사회윤리는 윤리적인 사회제도의 조건과 수립 방안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역사적으로 이 사회윤리는 서양의 그리스도교 사회론(Christliche Sozaillehre)을 그 뿌리로 삼고 있다. 그리스도교 사회윤리의 기초는 루터교의 외팅엔(Alexander von Oettingen, 1827-1905)이 수립하였다. 가톨릭에서는 넬-브로이닝(Oswald von Nell-Breuning, 1890-1991)이 사회윤리를 대표하고 있다. 특히 넬-브로이닝은 비오 11세 교황의 회칙 「사십주년(Quadragesimo anno)」의 작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가톨릭 사회론의 3원칙인 인간존엄, 연대성, 보조성의 개념을 체계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윤리에서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각 개인의 개인적인 윤리도덕 수준은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반면에 사회 자체가 품고 있는 ‘집단의식’의 근본적인 윤리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사회는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윤리적 접근은 아직 낯선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윤리의 핵심 내용은 바람직한, 다시 말해서 공정하면서도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성립 조건의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조건들 중에서도 무엇보다 정의로운 분배가 근본이 된다. 탈근대(post-modern)와 탈세속(post-secular)의 특성을 동시에 보이는 21세기에 들어선 현대 세계에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권력과 부의 분배를 둘러싸고 부자와 빈자의 갈등과 대립이 점차 첨예화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은 역사적으로 늘 되풀이 되어 왔다. 그러나 탈근대와 탈세속과 더불어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시대정신을 지닌 21세기에 이러한 갈등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그 속도도 매우 빠르게 확산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수습책을 마련하기에는 이제 시간이 촉박해졌다. 그래서 그러한 갈등의 원인을 개인적 차원에서의 윤리적 덕목의 내면화와 ‘바람직한’ 가치태도의 확립 차원이 아니라, 사회윤리적 담론의 차원에서 미리 접근하여 21세기에 알맞은 제도의 수립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사실 근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복지국가는 이제 대부분의 국가들이 추구하는 모범이 되었다. 다만 국가별로 다양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그 복지의 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많은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근대적 복지국가 개념의 성립과 그 실천 자체가 유럽에서 시작된 이상 그 기본 개념은 유럽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가 지속적으로 야기하는 경제적 위기는 단순히 경제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하위문화에 구조적인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더구나 이 위기는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온 인류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침 현재 한국에서도 복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빈부갈등과 분배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과 개별법은 그 근원적인 내용과 형식에서 거의 대부분이 일본을 통하여 도입된 유럽의 것을 모법(母法)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제도는 유럽의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구체적 실천에서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빌미로 유럽의 근본적인 법정신을 완전히 배제한 채 형식만을 차용한다면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곧 헌법에서는 인간 존엄과 천부인권을 명시하면서도 그러한 존엄과 인권 개념의 근원이 된 유럽의 전통적 정신을 망각하고, 나아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당히 타협된 선에서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면 사회적 갈등과 모순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러한 모순과 갈등 때문에 현재 한국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조화와 협력보다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모순과 갈등은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욕심을 스스로 자제하는 이른바 ‘극기(克己)’의 덕을 함양하는 개인윤리적 차원의 교육과 수련만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윤리적 차원에서 개별 구성원의 이른바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러한 구성원들이 모인 사회가 반드시 윤리적인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는 다수의 개인들이 모인 실체이지만 그 개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 자체를 움직이는 별도의 원리와 제도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제도 자체의 인간화야 말로 21세기 시대정신이고 사회윤리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복지와 성장을 대립시켜 보는 구태의연한 신자유주의적 관점으로는 21세기의 새로운 인본주의적 시대정신에 따라 이미 세계화된 의식을 지닌 각 개인의 욕구의 고유한 본질과 그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이제 한국에서는 약간 낯선 개념인 사회윤리의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