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리란 무엇인가 시리즈
사회윤리만이 아니라 서양 현대 인문학에서 인간의 존엄은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은 존엄하다. 누구나 이는 인정한다. 그러나 왜 존엄한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인간이니 존엄하지, 존엄하니 인간이지 라는 순환논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 문화의 전통에서는 종교와 무관하게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명제에서 인간 존엄의 궁극적 근거를 찾는다.
물론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외모가 신을 닮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 이런 차원의 논의가 진행되면 신의 피부색, 언어, 나이 등과 같은 비본질적인 요소에 관한 지루한 논쟁을 촉발하게 될 뿐이다.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신의 인간 창조 이야기는 두 가지이다. 창세기 1장에서는 천지와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창조한 다음 갑자기 당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다. 그러나 2장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어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하였다는 묘사가 나온다. 그리고 인간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위임한다. 그리고 외로워 보이기에 흙으로 온갖 짐승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다.
창세기에 관한 신학적인 논쟁은 여기서 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신이 자기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피조물에는 그런 설명이 없다. 신의 모습을 라틴어로 이마고 데이(imago dei)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imago는 히브리어 챌램 엘로힘(צֶלֶם אֱלֹהִים)을 번역한 것이다. 이 imago에 관한 논쟁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 물론 교파와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이 인간에게 매우 독특한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신이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자기 모습을 부여한 유일한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צֶלֶם אֱלֹהִים은 명백히 신의 외모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신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질만했다고 볼 수 있다.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신을 보려면 유대인을 보면 된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쓴 신약 성경으로 넘어오면서 신과 같은 모습이라기보다는 신과 닮은 모습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에이콘(εἰκώ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의 모습이든 신을 닮은 모습이든 경건주의적 신자들만 아니면 근본적 차이를 놓고 따질 일은 아니다.
사실 고대에는 통치자들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왕을 신격화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중세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계몽주의 이후의 근대에 들어오면서 모든 인간이 신과 다름없이 존엄한 존재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는 아예 신이란 인간의 상상물일 뿐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유물론적 사고방식으로 초월적 존재를 규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사실 그의 생각이 후대의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와 같은 근대 지성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기독교 자체가 인간 중심적 종교이기에 신과 인간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것이 유럽 문화사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사회윤리에서는 신이 인간을 닮은 것이든 인간이 신을 닮은 것이든 근본적인 고민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신에 버금가는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케르버(Walter Kerber, 1926-2006)는 인격 개념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가 있다. 인격적 존재로서의 개인은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복제 인간이 나온다 해도 그는 나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립적인 존재로 전체의 일부가 아니라 단일체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행위의 주체이며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의지로 행동한 것에 대하여 스스로 양심 앞에서 책임을 단독으로 져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은 이 세상에 자의로 온 것이 아니라 신이든 자연의 이법이든 타의에 의해 온 의존적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인간의 특성은 기독교 전통에서 파악된 것이기에 기독교 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낯선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유럽은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 문화가 되어버린 곳이기에 인간의 고유성과 자유, 그리고 양심과 책임, 타의에 의해 태어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피투기성(Geworfenheit)은 충분히 이해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인간의 존엄은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가치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비록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신과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 존엄은 이제 국제연합의 세계인권헌장의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민주국가의 헌법에 반영되어 있는 가치이다. 특히 독일 헌법에는 제1조 1항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Sie zu achten und zu schützen ist Verpflichtung aller staatlichen Gewalt.
직역을 하면 다음과 같다.
"한 인간의 존엄은 누구도 해칠 수 없다. 인간 존엄을 존중하고 수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 권력의 의무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 많은 인간 사회는 차별적이어서 여전히 국제연합의 세계 인권선언 수준에서 더 크게 발전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의 헌법에서 곧 인종, 성별, 언어, 종교로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되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인간은 여러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인권의 침해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개인윤리적 교육을 통한 인간의 내적 변화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법제도만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인간의 내적 변화와 외적 법제도 가운데 선행되어야 할 것은 후자이다. 그래서 사회윤리에서는 인간의 의식 개혁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일단 정의로운 제도의 수립과 운용을 우선 과제로 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