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리란 무엇인가 시리즈
우리가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서 유통과 소비를 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당연시한 것은 사실 인류 역사를 볼 때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또한 복지국가가 표준 국가 모델로 자리 잡은 것은 더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체제와 무관하게 인간의 삶은 재화를 필요로 하고 재화는 늘 모자란다. 게다가 그 모자라는 재화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로 재화의 부족은 더욱 심화된다. 그래서 공정한 재화의 분배는 늘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되어 왔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정의란 각자가 받아 마땅한 것을 받는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받아 마땅한 권리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학설을 낳게 되었다. 과연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질 ‘권리’가 있는가? 결국은 법으로 정해진 원칙에 따라 재화의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고 또한 입법자들도 완전한 가치중립적인, 곧 불편부당한 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기에 늘 사회적 불만이 야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입법 이전에 재화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재화는 무엇보다도 앞에서 언급한 정의의 세 가지 종류에 따라 분배된다. 곧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화,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한 재화, 그리고 사회정의의 원칙에 따라 개인의 기본적인 기회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재화가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수립 이후로 유산보다는 노력의 대가로 획득한 재화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에서 재화의 불평등한 분배가 능력 차이를 핑계로 정당화되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능력과 노력의 차이를 근거로 더욱 공고화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기득권을 획득하고자 노력하고 일단 그것을 획득하면 유지하고 싶어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생존의 확률을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득권이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는 빈부 격차가 격화되고 결국 사회적 불안이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하여 정치가는 적절한 법제도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 법과 제도의 수립에 차별을 받는 이들보다는 기득권을 지닌 이들의 이익이 더 반영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기준 미국의 상위 1%의 고소득자는 하위 90%의 소득자보다 39배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상위 0.1%의 고소득자는 하위 90%에 비하여 무려 196배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능력 차이를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소득 불평등이 늘 이 정도였던 것은 아니다. 194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상위 0.1%의 고소득자는 하위 90%에 비하여 50배 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그런 추세는 레이건(Roland Ragan, 1911-2004 )이 1981년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신자유주의의 고삐를 완전히 풀어버리면서 급격히 변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특히 아들 부시 대통령(George W. Bush, 1946-)이 재임하던 2001-2009년 사이에 미국의 빈부 격차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2007년의 경우 상위 0.1%와 하위 90%의 수입 격차는 무려 202배에 달했다. 2008년 월가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로 한 때 이 차이가 줄어들었으나 다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를 막을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빈부격차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OECD 회원국을 비교해보면 다른 나라들도 빈부격차가 모두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와 어느 정도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입한 독일조차도 통일 이후인 1991년부터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 비해서는 아직은 매우 온건한 상황이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확고한 구축은 불평등의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재화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가 세계 최초로 사회복지 제도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기득권자의 배타적 재화 소유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었던 것도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루터교 신자였던 비스마르크의 경우 가톨릭 교회와 그 세력과의 대립 과정에서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이기는 하지만 재화의 보편성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라는 개념은 가톨릭 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파를 초월한 신의 창조 섭리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다. 인간 존엄 항목에서 설명한 대로 인간은 신의 자녀인 형제자매이기에 재화에 대해서도 평등한 접근권이 있다. 신의 은총이 인간의 공적과 무관하듯이 인간이기에 받아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 곧 인권은 각 개인의 인간 조건과 무관한 것이다. 이러한 인권이 보편적일 수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이 신의 모상이라는 신학적 해석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권력자나 자본가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신의 모상이 되기에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고 그 인권에는 정의로운 분배의 대상이 될 권리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유 재산의 소유자가 특정 개인이라 하더라도 그 재산의 활용은 반드시 공동선을 지향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 개인의 쾌락이나 잉여 이익만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이는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정당하다. 여기에서 연대성의 원칙이라는 사회윤리의 원칙이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런데 연대성의 원칙은 공동선의 개념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반드시 전제된다. 이는 다음 장에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