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리란 무엇인가 시리즈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부터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통계자료로 증명이 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무한한 물질적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시작한 제도이기에 쉽게 자유방임적인 경향을 보이기 쉽다. 그래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자본주의의 자유 시장이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확신한 것이다. 국가의 통제를 받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의미에서 이를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us)라고 부른다. 1948년 사회적 시장경제가 서독의 경제 원리로 자리 잡은 데에는 에어하르트(Ludwig Wilhelm Erhard, 1897-1977)가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아데나워의 뒤를 이어 독일의 제2대 수상이 된 1960년대에 들어서는 그 내용이 많이 변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독일의 경제 제도는 여전히 사회적 시장경제이다. 현 독일 수상인 메르켈(Angela Merkel)도 이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개인주의(individualism) 차원의 능력과 욕망 추구를 거의 자유방임적으로 조장하는 것에 중점을 주는 것에 비하여 사회적 시장경제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차원에서 공동체의 안정을 추구한다. 이는 물론 공산주의(communism)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다. 곧 공산주의는 소수의 자본가들을 문자 그대로 ‘제거’하고 생산도구를 공유하여 사적 소유를 근절하는 데 비하여 공동체주의는 공동선과 인간의 자유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빈부 격차와 이에 따른 계층 간의 갈등은 개인의 선의나 자선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환경파괴와 경제적, 사회적 분열은 개인의 자유, 특히 욕망 추구의 자유라는 것이 무제한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무한한 욕망의 추구는 결국 그 개인 자체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이다.
사실 근세 이후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신성불가침하게 여겨지게 된 이유는 이전의 역사에서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로 개인이 철저히 희생되었던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 특히 극소수의 자본가의 이윤 주구의 자유가 절대적 지위를 요청하게 된 상황에서 나머지 개인들은 또다시 희생의 대열에 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과거에 왕이나 독재자가 누리던 권력을 이제 자본가들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일부 학자와 언론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생존 방식으로 택하며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데에 앞장서는 것이다.
특히 금융과 산업을 통제하는 소수의 자본가들의 전횡을 막을 방법은 오직 국가 차원의 법과 제도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법과 제도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임기제 정치가들과 국회의원이 책임지고 바르게 제정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곧 국가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자유와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확립과 운용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서 경쟁을 통하여 거래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을 갖추고 있지만 현실에서 이 경쟁은 쉽사리 불공정한 양태로 변하게 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바로 이러한 국가의 합리적인 통제 아래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운영하는 제도이다. 국가의 시장에 대한 통제의 근본정신은 독일 헌법에 명기된 것처럼 사유재산의 공적 책임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경제 체재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상품과 용역을 시장에 내다 판다. 이 시장에서의 매매 과정에는 경쟁이 발생한다. 그런데 아담 스미스의 바람과는 달리 시장에서는 비이성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이성으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함에도 현실은 부정과 편법과 불의가 시장을 지배하기도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정의란 각자가 받아 마땅한 것을 보장하는 것임에도 상품 거래에서 사기가 발생하고 노동에 대헌 정당한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불의와 부정을 막기 위한 국가의 간섭은 필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경우 계획 경제 중심의 사회주의적 경제제도가 되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간섭’의 범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신기한 것은 유럽에서 전통적인 보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독교 정신을 주축으로 설립된 기독교 민주당이 이러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도하고 사회민주당이 이를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일견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주동하고 보수정당들이 이를 받아들였을 것만 같지만 말이다. 그만큼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제도는 가톨릭 사회론이라는 기독교 원리를 근간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톨릭의 기독교 사회론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시장경제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기독교 사회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를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