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회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독교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종교’이다. 그래서 정교분리 원칙으로 목사나 신부가 정치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을 마뜩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근대에 들어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헌법에 명시한 것은 그만큼 기독교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일의 경우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립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도 가톨릭은 독일제국시대에 세운 정당인 중앙당(Zentrum)을 계속 존속시키면서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 정당의 창당 목표는 가톨릭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이 정당은 1933년 히틀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스스로 해체하기 직전까지 독일 정치에서 문자 그대로 중심에 서서 5명의 수상을 배출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1945년 종전 후에는 현재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 세력에 들어갔다.
전후 독일 초대 총리이자 독일의 국부로 여겨지는 아데나워조차 가톨릭 신앙을 강력히 내세우던 정치가였다. 기민당과 기사당의 당명 자체에도 여전히 ‘기독교’가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의 정당만이 아니라 유럽 의회 차원에서도 기독교는 매우 정치적인 세력이다. 그 근본 이유는 무엇보다도 유럽의 역사에서 거의 1700년 가까이 기독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 성직자, 주로 가톨릭 주교 이상의 고위 성직자는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가 있었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기독교는 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에 성경에 손을 얹는다. 헌법으로는 정교분리가 분명히 규정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 어느 정치가도 기독교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할 경우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이 거의 관행이 되었다. 비록 기독교 교회가 종교 단체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지만 기독교 문화가 1700여 년 동안 서양 사회에 끼친 영향을 씻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독교는 ‘종교’이다. 기독교 정당도 있지만 지지율은 형편없다. 현재 한국의 기독교 신자는 개신교 1,000만 명, 가톨릭 500만 명으로 합치면 1,500만 명 정도로 전 국민의 4분의 1이 훌쩍 넘는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서양의 식민지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기독교가 퍼진 나라는 없다. 특히 아시아의 평균 기독교 신자율은 3%에 불과한데 비해도 놀라운 규모이다. 가까운 일본은 기독교 신자가 2% 정도에 머물고 중국도 3%가 안 된다. 그런데 한국은 가톨릭이 국교나 다름없는 필리핀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2위에 속한다.
그러나 사실상 필리핀은 1521년부터 1898년까지 377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기에 가톨릭 문화에 완전히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다시 미국의 통치와 일본의 침략으로 194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립국가가 되었다. 근세 이후 기독교의 영향에서 벗어날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여 한국은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스스로 기독교 서적을 반입, 연구하며 기독교 신앙을 키운 독특한 역사를 지닌 나라이다. 그리고는 선교사를 초대하여 교회의 운영을 맡긴 것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세력은 해방될 때까지 전 국민의 1-2% 정도에 불과한 소수 종교였다. 아시아 전체의 평균과 일치하였다. 특히 개신교 신자의 60% 이상은 북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남한으로 내려왔고 이때부터 개신교의 교세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1953년에 50만 명을 돌파하더니 1980년이 되면서 600만 명을 넘어섰다. 그 후에도 계속 성장하여 2015년 통계로는 1천만 명에 육박하게 된 것이다. 개신교만으로도 한국 인구의 20%이다. 이는 종교개혁의 나라인 독일의 개신교 신자율인 24.9%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현대 한국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 대형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 시작은 이승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자신이 개신교 신자였던 이승만은 개신교의 확산에 최대한 기여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군정청은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 세력을 반공주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 세력을 중심으로 수립된 서북청년단은 이승만의 정권 획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해방 당시 겨우 1-2%에 머물던 신자가 급격히 늘게 된 것이다. 박정희가 권력을 장악하며 강력한 반공주의의 내세우게 되자 기독교는 더욱 부흥하게 된다. 그리고 1968년 박정희를 위한 국가조찬기도회를 시작하면서 기독교와 정권의 유착의 긴 역사가 열리게 되었다. 1975년에는 개신교 주요 목사들이 주동이 되어 ‘나라를 위한 기독교 연합 기도회’를 열어 박정희를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때도 주요 이슈는 반공이었다. 그래서 기독교는 반공이라는 등식이 고착화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77년에는 ‘77 민족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하여 반공과 친미를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이러한 행보는 전두환 시절에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이후에도 한국의 개신교는 반공의 선두 세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간단한 역사를 보아도 한국의 기독교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구조를 확립하게 된다. 서양처럼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권력 유지에 협조하고 반공을 내세우며 남북이 갈린 한반도의 독특한 정치 지형에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제 거의 구조화되어서 깨지지 않는 공고한 틀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사회에서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0년 1월에 NGO인 ‘기독교실천운동’이 지엔컴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30%만이 기독교를 신뢰하고 특히 종교가 없는 이들의 경우 6%만이 개신교를 신뢰한다고 답하였다. 불교와 가톨릭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이는 이미 2009년에 10%였던 것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신자는 늘고 있는데 신뢰는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신자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과 아프리카 정도만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의 경우 매년 수십만 명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2019년에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서 54만 명이 교회를 떠났다. 10년 전에 비해서는 500만 명이 줄어들었다. 이는 강력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년 간 미국의 기독교 신자는 12% 정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의 70% 가까이는 여전히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며 독일도 40%가 신앙을 소중이 여기며 기독교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신앙은 물론 기독교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기독교 신자가 전 국민의 30%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나쁘고 더 나빠지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 신앙이 있는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의 비율의 거의 50대 50이다. 기독교가 한국의 최대의 종교이지만 사실 종교가 없는 사람의 비율이 여전히 가장 많다. 그리고 그들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나쁘다. 서양처럼 긴 역사에서 기독교 교회와 성직자의 착취를 경험한 적이 전혀 없음에도 그러하다. 그래서 기독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X독교’라는 단어가 이제는 언론의 상용어가 될 정도이다.
이는 사회윤리를 이해하는 데에 대단히 안 좋은 상황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서양의 기독교는 종교로서 그 힘을 잃고 있지만 문화로서의 기독교는 여전히 강력한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윤리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 사회론에서 출발하는 데 시민들의 거부감이 없었던 것이다. 제도로서의 기독교와 1700년 역사를 통하여 사회 통합과 발전에 기여해온 기독교 문화를 분리해 보는 식별력을 키우지 않는 한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이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식별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종교로서의 기독교에서 현대적인 사회윤리가 탄생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일단 여기까지 사회윤리 이해의 서론을 마무리하고 제2부에 가서 본격적으로 기독교 사회론을 시작으로 하여 사회윤리의 이론적 구조를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