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리와 정의

사회윤리란 무엇인가 시리즈

by Francis Lee

사실 윤리라는 것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적용되는 것이기에 윤리가 곧 사회윤리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두 윤리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먼저 개인윤리와 사회윤리 모두 인간이 존중해야 하는 가치와 의무를 다룬다. 여기서 다시 도덕(moral)과 윤리(ethics)가 구분된다. 도덕은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의 목록이라면 윤리는 그 목록의 의미와 가치를 분석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윤리학을 굳이 철학적 윤리(philosophische Ethik)이라고 부른다. 반성이 전제된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도덕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이를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윤리는 ‘착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


그런데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는 다루는 분야가 다르다. 개인윤리에서는 사회 구조 안에서의 개인의 의무를 다룬다. 이 의무는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이에 비하여 사회윤리는 한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 한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규범과 사회 질서 나아가 법질서가 과연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인권의 차원에서 과연 정당한 것인지를 묻는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윤리에서 정의(正義, Gerechtigkeit)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suum cuique’를 근간으로 한다. 곧 각자의 인간이 받아 마땅한 것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이 정의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는 인권의 개념과 직결된다. 인간이기에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 곧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다. 이러한 정의가 한 사회 내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 법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법은 반드시 정의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법은 사회 안의 인간 사이의 질서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윤리는 바로 이 사회질서를 그 연구 대상으로 다룬다. 롤스(John Rawls)가 말한 대로 사회윤리적 정의(sozialethische Gerechtigkeit)는 ‘사회적 제도의 덕목들’에만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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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정의의 개념이다.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각자가 받아 마땅한 것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각자가 받아 누려야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Walter Kerber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구분하여 설명해보고 있다. 곧 소유·지위정의(Besitzsustandgerechtigkeit), 업적정의(Leistungsgerechtigkeit), 사회정의(soziale Gerechtigkeit)로 정의를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정의는 다시 기회정의(Chanacengerechtigkeit)와 욕구정의(Bedürfnisgerechtigkeit)로 나누어 본다.


소유·지위정의는 한 개인이 한 사회에 태어나면서 이미 획득된 지위의 의미에서 ‘각자의 것’(das Seine)을 보장한다. 다시 말해서 부자나 권력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들이 누리는 것을 강제로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의 사회적 특권을 강제로 빼앗아 기계적 평등을 강요하는 것은 불의이다. 이 소유·지위정의는 기존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 부자가 가진 것을 질투하여 불법적으로 빼앗는 것은 불의이기에 그들의 정당한 기득권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업적정의는 자신의 공로 없이 그저 물려받은 권리보다 더 존중받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으로 획득한 것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이기적 욕망에 정당성을 보장하는 이 업적정의는 그러나 능력의 차이에서 나오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공부를 잘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된 사람들이 성취한 것이 기득권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업적을 고스란히 자기의 후손에게 쉽게 넘기려는, 곧 자신의 업적정의를 소유·지위정의로 변환하여 고착화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성취지향적 사회에서 이러한 업적 정의는 흔히 과대 포장되기도 한다. 능력 있으니 권력을 누리는 것이고 능력이 없으면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능력 위주의 사회는 무한 경쟁을 조장하고 개인의 이기주의적 성취동기만 장려하여 결국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 버리게 된다. 이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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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회정의가 강조되는 것이다. 부모가 무능하고 자신도 무능한 사람이라도 인간적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도 인간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본질적으로 동등한 모든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한 사회의 모든 인간의 삶의 조건은 일정 수준까지는 반드시 평등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사회정의 가운데 하나인 기회정의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말 것을 요구한다.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 제2조에서 정의한 인종, 피부색, 성차, 언어, 종교, 정치, 기타 신념, 민족적, 사회적 출신, 재산, 가문 등을 근거로 한 모든 차별의 금지가 이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의 ‘차이’(Unterscheidung)가 ‘차별’(Diskriminierung)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지상명령이다.


욕구정의는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적 생존에 필요한 욕구가 무조건 충족되어야 할 것을 요청한다. 그래서 사회적 재화가 개인의 능력과 처지에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도록 분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선진국은 복지 제도를 통하여 무능력한 사람들에게도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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