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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15. 2021

한국에도 독일 녹색당이 가능한가?

한국 정치 지형에서의 의원내각제의 이상과 현실

지난 3월 14일의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라인란트-팔츠 주의 독일 지방선거는 9월에 있을 총선의 시금석이었다. 이 두 주는 전통적으로 보수의 아성인 곳이었기에 기민당의 패배가 주는 충격은 매우 크다. 특히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득표율 변화는 독일 정치에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전통적으로 녹색당과 기민당의 지지 계층은 연령별로 뚜렷했다. 곧 진보적인 녹색당은 젊은 층이 그리고 보수적인 기민당은 60대 이상이 지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이런 공식이 깨졌다. 종래에 기민당을 지지던 이들 가운데 7만 명이나 녹색당으로 지지를 바꾸었다. 그리고 녹색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18세 이상의 모든 연령에서 기민당을 압도했다. 그리고 설문에 답한 사람들 가운데 50% 이상이 녹색당이 연방 정부에서도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기민당의 인기가 전후 최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인기만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이 되고 있다.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코로나 사태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와 최근에 벌어진 마스크 스캔들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50% 정도의 국민이 사전 투표를 했기에 마스크 스캔들은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기민당은 이미 2017년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등장을 막지 못한 것부터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왔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의 의석수는 709개이다. 그 가운데 기민당이 200석, 사민당이 152석, 독일을위한대안당이 88석, 자민당이 80석, 좌파당이 69석 녹색당이 67석 기사당이 45석, 그리고 나머지 군소정당이 8석이다. 이 가운데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245석으로 최대 의석을 차지하여 사민당과 이른바 대연정(GroKO)를 형성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9월 총선에서 이러한 구도가 깨질 공산이 매우 커졌다. 현재 여당이 397석 야당이 312석인데 기민당이 10% 정도 의석을 잃고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이 현재의 추세대로 현재의 절반 정도의 의석을 잃고 이 의석이 그대로 녹색당, 사민당, 자민당으로 간다면 정권이 다시 바뀌게 된다. 이것은 불가능한 경우의 수가 아니다. 이미 독일의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9월 총선에서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기민당/기사당 연합에서 사민당으로 권력의 추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보수 정치가 진보 정치에 자리를 내놓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1998년 녹색당은 슈뢰더의 사민당과 연정을 이루어 역사상 처음으로 적녹 정권을 만들어냈다. 당시 사민당은 298석 녹색당은 47석으로 과반수에서 21석이 넘는 345석의 의석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2002년 총선에서도 사민당 251석 녹색당 55석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2005년 조기에 치러진 총선에서 사민당이 4석 차이로 기민당/기사당 연합에 패하면서 대연정이 이루어졌고 이후 녹색당은 정권에서 멀여졌다. 그러나 오히려 이때부터 녹색당은 지방선거에서 연승을 거두면서 바닥 민심의 입지를 다져왔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9월 총선에서 녹색당이 단순히 연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장악하게 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이다.     


이러한 독일 녹색당의 성장이 가능했던 근본적 이유는 독일의 정치제도가 의원내각제였던 것이 가장 크다. 아무리 녹색당이 좋은 어젠다를 선점했다고 하여도 우리나라와 같은 거대 정당 중심의 대통령제에서는 그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수의 횡포가 합법화된 한국의 정치계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늘 억눌려 왔다. 물론 이승만의 독재 정권을 타도한 이후 수립된 제2공화국에서 한 때 의원내각제가 실현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쿠데타로 그 꽃이 채 피어 보기도 전에 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 1992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군사 독재가 이어졌다. 민주적인 대통령 중심제가 실시된 것은 이제 겨우 29년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서 다시 의원내각제를 논의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한국의 현재 정치계의 답보 상태와 부패를 척결하는데 의원내각제가 효과가 있을 것인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이지만 내각책임제가 일부 가미되어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한 대 이원집정제가 논의되어 개헌안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명박과 박근혜에 이어진 혼란으로 결국 정치 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촛불민심의 커다란 기대를 안고 등장한 문재인 정권은 이제 부동산 문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혼란의 근본에는 한국 사회의 최대 병폐 가운데 하나인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이른바 적폐 청산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의 지지 세력인 중산층과 서민층에서도 낭패감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가 여당의 핵심에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있지 않다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당이 붕괴하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의 혼란스러웠던 1961년부터 1962년의 시대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처럼 득표율이 5% 미만인 정당의 의회 진출을 차단하면 이른바 어중이떠중이 정당의 난립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인들의 성향과 여론이다. 개헌과 관련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들은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하기에 의원내각제는 인기가 없다. 박정희의 망령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킨 변명으로 의원내각제에 따른 정국의 혼란을 내세웠고 이 것이 오랫동안 먹혀왔다. 그러나 역사가 밝혀준 대로 사실 제2공화국은 이승만 독재 정권 타도 이후에 도래한 백가쟁명의 시대가 들어선 것이지 박정희가 말한 대로의 극도의 혼란은 결코 있지 않았다.     


2021년 대한민국의 정치적 성숙도는 60여 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군사 독재를 몰아내고 확실한 문민정부를 이끌어온 지 30년 가까이 되고 있다. 비록 이명박과 박근혜와 같은 수구 세력의 폐해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양당제도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민의, 특히 소수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가 없다. 다원주의와 소수자 인권 보호가 시대정신이 21세기에 맞는 정치 제도의 변화가 필요할 때가 되었다. 더구나 차기 대선의 강력한 주자인 윤석열과 이재명이 마침 여당이나 야당의 핵심 세력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기에 제3정당의 출현이 용이한 의원내각제의 도입을 심각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양당제에서는 기득권에 안주한 정치가들의 구태의연한 자세가 정치 개혁을 철저히 막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득권층의 타파에 대통령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가 충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의원내각제가 만병통치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부패한 기득권층에 있는 정치가들을 몰아내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지금 독일 정계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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