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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19. 2021

Nomadland와 윤석열 장모의 에르메스 버킨백

우리는 어차피 모두 나그네다.

“My mom said that you’re homeless, is that true?”


“No,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영화 Nomadland에 나오는 대사이다. 우리는 모두 어차피 이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다. 최고의 재벌도, 최악의 독재자도, 노숙자도 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죽는다. 아무리 길어봐야 100년 남짓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실질적인 노숙자다. 다만 아닌척하고 이 세상에서 영생이라도 할 듯이 권력과 돈을 움켜쥐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그러다 어느 날 죽을 것을 잊은 채로 말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윤석열 장모 최모 씨가 흰색 벤츠 차에서 내려 의정부 지방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의 사진에서 수천만 원한다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두 손으로 꼭 쥔 모습이 보였다.(https://news.v.daum.net/v/20210319000122166) 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 가방이 중고차 한 대 값과 맞먹는단다. 그리고 여기서 인용된 한 명품 브랜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가방은 국내에서 사기 힘든 모델이고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에 명품 중에 명품이란다. 버킨백은 에르메스 사장이 영국 배우 버킨과 같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영감을 얻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가방이다. 최소 2,500만 원에서 최고 수억까지 하는 비싼 가방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어 luxury goods를 장사꾼들이 맘대로 오역에 가깝게 번역한 단어이다. 영한사전에서 보아도 명품이라는 뜻은 전혀 없으니 말이다.

      

⁑lux·u·ry [lʌ́kʃəri] n.


① 사치, 호사

┈┈• live in ~ 호사스럽게 지내다.

② � (종종 pl.) 사치품, 고급품.

③ 즐거움, 쾌락, 유쾌, 향락.

④ 《古》 색욕; 《美》 고급 대형 승용차.

◇ luxurious, luxuriant ɑ.


━ɑ.

사치〔호화〕스러운; 고급의

┈┈• ~ tax 사치세.     


그런데 법원에 들어서며 가방을 든 그 윤석열 장모의 자태를 보니 문득 어느 영화에서 김혜수가 한 대사가 귀에 환청으로 들린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그 형식대로 마치 “나 에르메스 든 여자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수천만 원짜리 가방, 중고차 한 대 값이 나가는 가방이니 좀 무겁겠는가? 그러니 두 손으로 고이 앞으로 들고 법정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최 씨는 현재 성남시 도촌동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은행에 347억 원을 예치한 것처럼 통장 잔고 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법원을 들락거리는 신세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에게 수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이야 껌 값도 안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최고급 버킨백은 수억 원에 이르니 몇 천만 원짜리는 겸손의 표시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의 딸 김건희도 재산이 넉넉한 사업가이니 더욱 그럴 만도 하다.      



다 아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이다. 그래서 이른바 “내 돈 내 맘대로 써도” 그만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이 자본주의의 전부인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개인이나 기업이 지닌 자본을 활용하여 잉여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것을 법으로 보장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이다. 말 그대로 이 제도에서는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써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대부분의 자본주의는 이런 극단적인 형태를 버리고 어느 정도의 정부의 통제를 가미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자유방임은 결국 인간의 탐욕 추구를 무한히 허용하여 타인에 대한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편적인 인권 존중이라는 현대의 시대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지나치면 그 대척점에 있는 사회주의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와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의 중간쯤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는 수정된 자본주의를 택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주의에 가깝고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이름의 자본주의는 국가 통제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은 모두 이 두 극단의 중간 어디쯤에서 각자에 맞는 자본주의를 택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확정된 제도가 아니라 여전히 계속 수정되고 있다. 최종적인 이상적 자본주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국가의 통제를 최소화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그래서 기업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재화를 증식하기 위해서는 기업 활동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수밖에 없기에 때로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업의 이익과 국익의 증진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의 극대화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비용을 최대한 절약한다. 비용 절약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임금 착취이다. 그래서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임금 인상도 최대한 억제한다. 그러면서 수익을 증대하기 위하여 상품의 생산과 시장에서의 판매와 더불어 자본의 투자, 더 나아가서 투기에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로 상품의 수요와 공급,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흐름에서 조화가 깨지면 공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 공황이 심해질 경우 IMF가 정한 기준에 따라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분류된다.     


앞에서 인용한 영화 Nomadland도 2007-2009년에 있었던 그런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야기된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Jessica Bruder가 쓴 수필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Jessica는 그가 Van Halen이라고 명명한 캠핑카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동안에서 서안 끝까지 15,000마일이나 돌아다니며 만난 떠돌이 인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집을 버리고 문자 그대로 길 위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2007년에 월가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파생상품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노숙자로 만들었다. 자본가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파국적인 상황에서 가장 커다란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위에 나온 대사처럼 노숙자(homeless)가 아니라 무주택자(houseless)였다. 사악한 자본가들이 저지른 악행의 파편을 담담하게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인생의 더 깊은 의미를 전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Jessica Bruder가 잘 담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Nomadland는 올해 거의 모든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고 이제 한국계인 Lee Isaac Chung 감독이 만든 미나리와 아카데미상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다.     



무주택자로 살든 강남에서 벤츠 몰며 버킨백을 들고 다니든 우리는 어차피 다 죽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유목민이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오늘도 그 여정을 따라 정처 없이 가는 나그네나 다름없다. 그 길에서 벤츠를 몰고 가며 버킨백을 들면 좀 더 편한 여정이 될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유교 전통의 사자성어에 유유상종, 근묵자흑이란 말이 있다. 윤석열과 장모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이런 사자성어가 쓰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차기 대선 후보인 분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문자 그대로 짝퉁 명품(luxury goods)이 아니라 진짜 명품(masterpiece)이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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