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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23. 2021

윤석열이 만난 김형석

제가 정치해도 될까요?


윤석열이 퇴직한 지 2주일 만에 처음 만난 사람이 김형석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보수 언론의 대표 주자인 중앙일보가 그들의 만남에서 나눈 대화록을 기사로 올렸다. 제목이 “101세 철학자 찾아간 윤석열의 첫 질문 ‘정치해도 될까요’”이다.(https://news.v.daum.net/v/20210323050039807) 도발적인 제목이라 유혹에 넘어가 내용을 정독을 해보았다. 그런데 기사에 보니 대화를 기자가 지켜보며 녹취한 것이 아니라 김형석이 나중에 구술한 것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단다. 여기서부터 뭔가 냄새가 난다. 게다가 두 사람 면담 기사라는데 사진 한 장 없다. 더구나 이 기사 초반에 기자가 고백한 대로 기자가 그 자리에 없었고 다만 “22일 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지난 19일 오후 김 교수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찾아 2시간가량 동안 이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그럼 결국 이 기사는 기자의 소설이라는 소리인데... 그래도 일단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니 김형석의 답을 듣고 싶었다. 그 답은 다음과 같단다.

    

애국심이 있는 사람, 그릇이 큰 사람, 국민만을 위해 뭔가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를 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헌법에 충실하려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정치하라고 권하지도 않겠지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김형석의 통찰력이 대단하다. 처음 만난 사람이어도 상대방의 애국심, 그릇, 국민만을 위하는 마음을 꿰뚫어 보다니. 게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도 파악했단다. 100살 정도 살면 뭐든 다 보이나 보다.      


김형석은 누구인가?     


1920년 평안남도 평양 근처의 곡창지대인 대동군에서 태어난 김형석은 평양숭실중학교와 평양 제3공립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3년 동경에 있는 가톨릭 예수회가 세운 조치다이가쿠(上智大学) 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64년에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되어 1985년 정년퇴직을 하였고 그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있다. 그의 장남 김성진도 한림대 철학과 교수로 평생을 보낸 후 역시 명예교수로 있다.     


비록 가톨릭 재단의 대학을 다녔지만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 나이 대에 북한 지역에서 신앙 활동을 하다가 1945년 공산화된 이후 남한으로 내려온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특유의 이른바 친미 반공기독교 신앙을 지닌 무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김형석은 철학을 전공했지만 철학 연구 논문보다는 수필가로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스스로 자랑삼아 말하는 대로 철학과 교수 당시 월급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나 인세와 외부 강연비로 의대 교수보다 많이 벌 정도의 인기가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강의와 책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한국식기독교 신자인 김형석이 바라보는 현 정권은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김형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우리나라 정치는 법조계와 운동권 출신이 이끌고 있는데, 이 부류의 사람들은 국제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김형석이 말하는 국제 감각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보니 중앙일보 백성호의 현문우답이라 코너에 102세 철학자 김형석 ‘韓 진보, 민주주의서 자라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2021114일 자 기사가 눈에 뜨인다.(https://news.joins.com/article/23970088) 제목만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김형석의 눈에는 대한민국의 진보 세력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집단이구나! 참으로 놀라운 식견이다. 그 지혜를 얻고 싶어 이 기사도 정독을 해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빛의 삼원색 논리가 펼쳐진다. 빨강 녹색 파랑이 모여 위로 올라가면 정점을 이루어 백색이 되고 아래로 내려가면 흑색이 된단다. 그런데 사실 백색도 흑색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회색만이 있단다. ... 광학의 새로운 경지에 이른 모양이다. 나의 무지한 지식으로는 원래 빛에는 삼원색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눈 안에 있는 시각 세포가 적, , 청으로 인지하는 파장의 자극에만 반응하고 뇌에서 그 파장의 강약에 따라 조합하여 다양한 색으로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칸트의 시공간을 통한 직관의 형식이라는 도식으로도 이해되는 부분 아닌가? 아마 다른 차원이 있나 보다. 첫 문장부터 흔들렸지만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생물학에는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읽어나갔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대한 질문을 하니 예상 답안이 나온다.     


여당 사람들은 우리 편이 하는 건 선(善)이고, 야당이 하는 건 악(惡)이라고 본다. 똑같은 일도 우리가 하면 선이고, 상대방이 하면 악이다. 너희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가가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0과 100은 존재하지 않는다. 40과 60중에 더 나은 걸 택할 뿐이다. 흑백 논리에 빠지면 이걸 못 본다     


현재 여당에 심각한 문제가 있나 보다. 100세가 넘은 노 철학자가 이리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북한의 평양에서 살면서 몸소 터득한 공산주의의 흑백논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1962년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을 거쳐 가는 관광을 하면서 체험한 동독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런 흑백논리 사회를 느꼈단다. 그 이유가 미소 짓는 사람이 없었단다. 정말 이 정도의 통찰력이 있어야 석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1989년부터 2000년까지 11년 동안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그 이후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격변기에서 구서독 지역에서 공부하면서 구동독, 구소련, 폴란드, 구 유고슬라비아, 구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아직 개방이 덜 된 중국과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흑백논리를 체험한 적이 전혀 없으니 상당히 둔감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그곳에서 만난 많은 동구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의 얼굴에서 신자유주의라는 탈을 쓴 탐욕적인 천민 자본주의에 찌들지 않은 인간의 얼굴을 한 환한 미소를 넉넉히 보았다. 그들은 아마 극소수의 특권층이었나 보다. 그 허름한 독일 학생 기숙사에 살던 이들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김형석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흑백 논리의 사회는 분열은 있어도 화합은 없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갈등도 흑백 논리 때문이다.”     


그렇구나! 흑백논리는 좌파의 전유물이고 정부도 결국 그런 흑백논리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구나. 참으로 놀라운 식견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나라의 진보 세력은 주로 운동권 출신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주사파 혹은 사회주의 혁명론에 젖줄을 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진보가 아니다. 냉전 시대 이후, 그러니까 선진국가에서 자라난 진보가 아니다. 그들의 사고는 아직도 냉전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그렇구나! 진보도 서양의 선진국 진보와 한국의 후진국 진보가 있구나.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에 대한 답도 김형석은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그 열쇠가 영어 문화권의 앵글로 색슨 사회에 있다. 그들은 600년 전부터 경험주의 사상을 가지고 살아왔다. 거기에는 흑백 논리가 없다. 선해도 비교적 선하고, 악해도 비교적 악하다. 왜 그렇겠나. 경험주의는 실제 우리의 삶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백도 없고 흑도 없다. 회색만 있다. 서로 더 나은 회색이 되기 위해 경쟁할 따름이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그들의 해결법은 투쟁이 아니라 대화다. 의회민주주의는 대화를 기본으로 한다.”     


그렇구나! 역시 살길은 “친미 반공”이구나.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경험론이 영국에서 나온 것은 맞으나 600년 전?  2021년에서 600년을 빼면? 어디 보자... 1421년인데... 그 무렵 오늘날 말하는 영국은 존재하지도 않은 나라인데. 우리가 아는 영국(United Kingdom)은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트랜드 왕국이 합치면서 성립되었는데... 무슨 영국을 말하는가? 아 영국이 아니라 앵글로 색슨? 앵글로 색슨은 아예 1066년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윌리엄이 정복해버려 왕조가 몰락한 집단인데... 그리고 영국의 경험론은 통상 17세기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부터 시작한 사상을 말하는 것이고... 아 정말 내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는 심오한 말씀이다. 앵글로 색슨 사회에 600년 전부터 있어왔다는 그 경험주의 사상... 참으로 심오하도다.


그 명석함으로 김형석은 마지막 결론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제시한다.     


“권력만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수 의석을 가졌다고 뭐든지 힘으로 된다는 생각, 버려야 한다. 그건 권력 사회다. 군사 정권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 여당도 그렇지 않나. 본질적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것보다 정권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구나!     


이 마지막 글을 읽으니 평생 법을 공부하고 27년간 검찰이라는 하나의 조직에만 몸담고 사람보다는 조직에만 충성하는 윤석열이 왜 뜬금없이 김형석을 찾았나 궁금했는데 이제 알겠다.     


그래 그렇구나!     


이런 사람의 충고를 들은 윤석열의 행보가 이제 더욱 궁금해진다. 이제 대한민국은 권력보다 국민을 더 사랑하는 큰 그릇의 사람 윤석열. 민주주의를 조직보다 더 사랑하는 윤석열. 흑백논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윤석열을 보게 될 모양이다. 정말 기대가 크다.  

    


어디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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