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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08. 2021

윤석열과 최재형은 좀비인가?

단지 딥스의 음모론일 뿐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콤비로 매일 벌이는 기행들이 이른바 수구 세력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당 인사가 반사 이익을 그대로 누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들에게 큰 기대를 했던 일반 시민, 이른바 중도들의 실망이 매우 커지고 있고 그 정서가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특히 오세훈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MZ세대의 실망이 심각한 수준이다. 중도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선언을 했던 윤석열은 수구 세력 안으로 함몰되고 있고 처음부터 수구세력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는 최재형은 태극기 부대를 연상시키는 언행을 거리낌 없이 일삼고 있다. 한국 최고의 대학과 학부를 나와서 최고의 엘리트의 길만 걸어온 이들이 보여주는 이들의 말과 행동은 저절로 질문을 하게 만든다.


도대체 왜들 저러는 것일까?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들의 기행에 가까운 언행을 보면서 당황한 이들은 ‘음모론’에 자연스럽게 경도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원래 야당을 초토화시키고자 야당에 스며든 ‘X맨’이라는 주장부터 결국 ‘딥스’의 끄나풀이 아니겠냐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딥스가 무엇인가?


음모론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딥스는 deep state의 약자이다. 사전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


organizations such as military, police, or political groups that are said to work secretly in order to protect particular interests and to rule a country without being elected:

Cambridge DIctionary에서 인용


한마디로 딥스는 ‘어둠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시험과 같은 공식 루트나 사적인 인맥을 통하여 권력의 핵심에 자리를 잡고서는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조직을 말한다. 한국에도 정부, 검찰, 경찰, 군부, 정당 안에 이들이 자리를 잡아 서로 밀고 땅겨주며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는 소문이 늘 있어왔다. 특히 정부 기구 가운데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자본주의의 최대 도구인 finance를 좌지우지하고 있어 흔히 ‘모피아’라고 불리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재무무 출신 인사들이나 군 장성들이 사기업의 고위 임원으로 들어가 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한국에도 같은 관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영남권 모피아가 한국 금융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어둠의 세력’의 힘이 언론에도 미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돈이 생기는 곳에 세력이 모이고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이러한 딥스들이 경제와 기업 분야만이 아니라 교육, 언론, 문화의 정점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 수립 일성이 이러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 똬리를 틀고 있는 딥스들을 적페로 지칭하며 개혁을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검찰과 언론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집단이기주의에 충실하고 있는지를 목격할 수 있다. 사실 척폐 세력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마치 인간의 몸에 난 만성적인 종기처럼 그 뿌리가 매우 깊어서 간단한 수술로는 결코 제거될 수 없다. 대충 치료를 하면 깊은 곳에 남은 균이 다시 번성해 올라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딥스의 뿌리는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길게는 신라시대까지이다. 그러니 직접적으로는 조선시대이다. 과거제도로 국가 관리를 선출하였으나 처음부터 모순이 있었고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는 아예 온갖 비리로 이 제도는 실질적 권위를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식 과거는 물론 음서와 천거로 관리가 되는 길이 늘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고종은 1894년 갑오경장 때 이 유명무실한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한국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는 도지사였다. 그런데 초기에 이들을 포함한 군수, 판사, 검사는 조선, 정확히는 대한제국의 관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등용된 것은 아니다 일제에 대한 충성과 능력이 인정되어야 했다. 여기서 능력이란 당연히 일제의 수탈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시하는 능력이다. 통계에 따르면 1909년 당시 대한제국 관료들 중 67.6%가 그대로 임용되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부터는 총독부가 직접 뽑은 자들이 고위 관료에 임명되었다. 판사와 검사도 총독부의 입맛에 맞는 자들만이 선발되었다. 그럼에도 최고 관료인 도지사는 대한제국 출신이 다수였다. 이들의 생존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마치 좀비와같이 절대 죽지 않는다. 그런데 일제가 이들을 그대로 ‘사용한’ 이유는 식민지를 다스리는 노하우를 이들만큼 더 잘 알고 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대부분이 대한민국의 관료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정말 질긴 생명력이다.


이들의 후손들이 오늘날에서 정계와 관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내로라하는 정치가들의 조상 가운데 상당수가 친일 행적을 보였다. 홍영표나 신기남 같은 이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당직에서 물러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무성 같은 이는 오히려 친일을 한 부친 김용주를 극일에 앞장선 이로 역사를 왜곡하기도 하였다. 김무성이 예외는 아닌 것이 더 문제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제 강점기에 관료를 지내거나 정재계에서 힘깨나 쓰던 이들의 후예가 여전히 큰소리치고 역사를 왜곡까지 할 수 있는 근본 이유는 바로 그들만의 공고한 리그를 이루고 있는 이 딥스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의 병폐인 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쳐서 자기들끼리 사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성접대를 받고 그 증거물로 영상물이 나와도 김학의처럼 무죄방면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이 생태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리그 안에 있는 이들의 범법행위를 처벌하는 제도를 이들이 만들고 적용하고 있으니 그 빠져나가는 방법도 가장 잘 알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난공불락인가?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현재 윤석열과 최재형의 언행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마치 좀비가 어둠 속에서는 활개 치고 힘을 쓰지만 해가 뜨면 증발하는 것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반 대중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일삼아 대중의 웃음거리와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도 정작 본인은 이를 전혀 인식을 못한다. 곧 자신이 좀비였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기행을 계속한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누군가? 김학의처럼 서울대 법대 출신 아닌가? 더구나 김학의는 이회창과 마찬가지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이른바 KS라인 출신이다. 한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런데 각각 병역기피와 성추행이라는 X을 밟고도 매화타령을 했다. 그들은 세상의 빛 아래에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여전히 자신이 좀비 생태계 안에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윤석열, 최재형, 이회창, 김학의는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이라는 것만을 공통점으로 하지 않는다. 이들이 그들만의 생태계에 머물 때에는 기세 등등했지만 어둠 속을 벗어나 벌건 대낮이 되면 횡설수설, 우왕좌왕한다. 법대는 아니지만 안철수도 같은 생태계 출신의 모습을 보인다. 횡설수설, 우왕좌왕...


그래서 앞에서 한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도대체 왜들 저럴까?


머리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평준화 이전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안철수는 서울대 의대 아닌가? 한국 최고의 머리를 더 이상 어찌 증명할 것인가? 게다가 고시를 패스하고 조직 안에서 승승장구하고 안철수는 의사가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만들에 국내 최고의 컴퓨터 백신 회사까지 세운 사람이다. 이들이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란 말인가?


그렇다면 결국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이 몸담은 생태계가 문제일 수밖에 없다. 김학의와 윤석열은 검찰에만 수십 년 몸담았다. 최재형과 이회창은 평생 법관으로 일하다가 관직에 등용되고 정계까지 입문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생태계를 벗어나 다른 생태계로 이주하는 순간 극도의 취약성을 보이며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특히 임명직이 아니라 선출직을 노려 대중에 노출되는 순간 햇빛에 노출된 좀비처럼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유기체들은 생태계가 변하면 적응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이들을 옹호하는 세력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아직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서툰 이들이라서 적응 기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 내년 3월에 선거가 있는데 얼마나 기간을 주어야 하는가? 국민들은 이미 준비가 된 후보 가운데 대통령을 뽑을 권리가 있다. 그러니 준비 안 된 이들은 가차 없이 내칠 권리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준비 운동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그럼 시간이 모자라면 이번 선거는 연습으로 나올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결국 9수라도 할 작정이라는 말인가? 문자 그대로 안하무인의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안하무인의 태도는 윤석열에 앞서 이회창이 잘 보여준 적이 있다. 이들은 왜 이리 안하무인이 되었을까?


그것은 한국에 팽배한 집단의식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형성된 이른바 ‘명문가’ 출신의 ‘엘리트’는 만능 재주꾼이라는 허위의식 때문이다. 그리고 이 허위의식의 뿌리는 매우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또한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시대에 이르게 된다. 골품제도로 ‘명문가’ 출신의 배타적 권력 독점을 합리화하던 신라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고려 광조 때 도입된 과거제도는 음서 제도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지연과 혈연이 앞선 것이다. 이는 과제 제도를 완전히 정착시켰다는 조선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 응시 자격 자체가 매우 까다로워서 지연 혈연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이다. 홍경래의 난이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 때문이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왕이 주제 하는 전시의 경우 왕의 의지가 시험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일반 백성들 사이에는 관료들이 만능 재주꾼이라는 허위의식이 퍼졌고 문과 급제자임에도 무과 급제자를 지배하는 관행이 뿌리는 내리게 되었다. 사서삼경에 통달하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이 허위의식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이어진다. 서울대 법대 나와서 고시를 패스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모르는 것이 없는 인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을 지닌 21세기에 이런 허위의식이 어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한 신화가 먹혀든다. 신라 이후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이 ‘엘리트주의’의 허위의식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윤석열과 최재형의 기행을 보고 당황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엘리트’가 저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모론을 퍼뜨리고 믿게 된다. 윤석열과 최재형을 비난하는 모든 말을 다 음모요 모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아주 단순하다. 한 생태계에 최적화된 유기체는 다른 생태계 안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학연, 지연, 혈연주의와 더불은 엘리트주의가 그런 사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더구나 윤석열과 최재형, 이회창 등이 몸담고 최적화되었던 생태계가 부패했다면 더욱 문제인데 이른바 편을 갈라 사분오열된 사회에서는 그 사실을 직시하기가 힘든 법이다. 그래서 새삼 크리슈나무르티가 한 말이 진리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중병에 걸린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건강의 척도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학연, 지연, 혈연으로 근친혼적인 조직으로 변질된 생태계에서 엘리트로 살아가는 자들이 건강의 척도가 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출세하여 떵떵거리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최고라는 엘리트주의가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 재산의 유무를 막론하고 집단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윤석열과 최재형은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좀비다. 다만 모두가 그 진실을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그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공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폐를 척결해야 하지만 모든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엘리트주의’, 곧 출세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허위의식을 극복하지 않는 한 적폐 청산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적폐 언론이 그러한 엘리트를 가장한 ‘적폐 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오늘도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상황에서 전망은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실 이재명이 흑수저 출신으로 민중의 희망인 것처럼 이야기 되지만 그도 결국 고시라는 엘리트가 되는 관문을 통과하여 관료제도에 편입된 인물이니 그 생태계에 완전히 면역된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 그 검증이 진행 중이니 조금더 지켜볼 뿐이다.


그러나 희망은 남아 있다. 한민족 5,000년 역사에서 질곡이 없었던 적이 없다. 늘 적폐 엘리트 세력이 백성들을 잡아먹지 못해 가렴주구를 일삼았어도 결국 한민족의 민중은 살아남아 나라를 건사하였다. 선조가 엘리트 관료들을 끌고 의주로 쥐새끼처럼 도망갈 때 민중은 스스로 힘을 모아 왜구를 물리쳤다. 매국노들이 도지사만 되어도 감지덕지하며 친일행각을 일삼아도 민초들은 민족정신과 언어를 지켜냈다. 친일 매국노들을 그대로 관료로 쓰고 독재 정권을 도모한 이승만을 민중이 몰아냈다. 18년 군사독재의 철권을 휘두르던 박정희에 맞서 수많은 민초들이 순교했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진 모순을 극복하고 적폐 청산의 장을 민중의 촛불이 마련했다. 이런 역사를 돌아볼 때 앞으로도 결국 한민족은 역사의 질곡과 모순을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바울의 말을 떠올려 본다.


spe salvi


희망을 가진 민족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동안 수많은 엘리트들에게 속고 배신당했어도 한민족의 민초들은 잘 버텨내고 더 나아가 한 단계씩 도약햇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전 세계에서 식민지 경험을 한 후진국 가운데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 단 한 나라도 없다. 이것이 희망의 징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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