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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13. 2022

윤석열은 모자가 아니라 구두를 미안해해야 했나?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다시 읽어본다.

<중앙일보>의 이른바 ‘국민의힘 반장’ 허진이라는 자가 “尹의 구두, 오세훈의 운동화… 대통령실 수준 딱 이 정도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석열이 침수로 사망한 발달장애 가족이 살던 신림동 반지하 주택 방문 때 윤석열의 ‘운동화’를 챙기지 못한 그의 측근을 탓했다. 허진은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윤석열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참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4074) 

    

“처참한 심정으로 현장으로 달려갔을 윤 대통령 대신 대통령실의 그 누군가는 ‘운동화를 신으시라’고 대통령에게 말해줬어야 했다. 지금 대통령실엔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없는지,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용기 있는 사람이 없는지, 결과는 이미 설명한 대로다. 윤 대통령을 만나본 사람들 중엔 참 ‘소탈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가 단 한마디만 해줬다면 윤 대통령은 버선발로, 맨발로라도 피해 주민들과 함께 했을 텐데, 현실은 달랐다.  

   

평생을 검찰에서 일한 윤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에 비해 현장을 대하는 감각이 둔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형식보다 진심을 중요시하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정치 초년생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하는데, 그들의 밑천이 신발 하나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택 지휘와 카드뉴스 논란을 키운 대통령실의 실력이 이런 장면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재난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 이상민 장관 역시 구두를 신었으니 내각의 감각도 대통령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 정도면 거의 이른바 ‘용산궁’에 불러달라는 읍소의 차원을 넘어서 아예 매달리는 수준 아닌가? 마침 이번에 대통령실의 인사 개편이 대대적으로 있다는데 누가 일하는지 정확히 모를 정도의 그 구중궁궐에 들어가 같이 ‘놀아볼’ 생각인가? 자기가 들어가면 윤석열이 구두를 신어야 하는지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지를 윤석열 코디를 전담하는 그 누구와 알뜰히 논의할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다고 고백하는 모양새다. 사실 중앙 찌라시에서 밥 빌어먹는 기레기에게 무엇을 기대하랴?      


그런데 정말로 윤석열은 김건희가 고백한 대로 일일이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인가? 그렇게 60을 훌쩍 넘은 ‘늙은이’가 구두를 신어야 하는지, 아니면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지 구분을 못한다면 주변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인지 능력 검사라도 먼저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닌가? 인지 부조화는 치매의 전조증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이미 구두에 관련된 소문으로 유명세를 치르지 않았는가? 다름 아닌 <월간조선>에서 일했던 이동욱은 <TV조선>의 ‘저격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조: http://m.newsfind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24)     


“룸살롱에 가서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그룹회장에게 술을 권하는데 그냥 권한 게 아니라 ... 구두를 벗어서 그 안에다 자기 양말을 구겨 집어넣고 거기다 양주를 따르고 이러고는 권하는 겁니다.”  

   

아마 윤석열의 구두에 대한 애착은 매우 강한가 보다. 그 점을 기레기들이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인가?  

   

사실 윤석열이 찾은 그 수해 현장에서 구두보다는 그의 언행이 훨씬 더 문제였는데 허진에게는 오로지 윤석열이 애틋하게 아끼는 구두에 더 눈이 간 모양이다. 과연 중앙 찌라시의 기레기다운 인지 부조화의 극을 이루는 정무 감각 아닌가? 이 정도의 정무 감각이면 용산궁에 불려 마땅해 보인다고 할까?    

  

이런 기사를 보면서 문득 20세기 최고의 단편소설가인 캐서린 맨스필드가 쓴 <가든파티>에 나온  다음과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Forgive my hat,” she said.     


한글로 직역한다면 다음 정도겠다.     


로라가 말했다. “이 모자를 쓰고 와서 미안해요.”    

 

<가든파티>는 빈부격차에도 무심한 당시 영국 부자들의 허영과 공감능력 부재를 신랄하게 파헤친 명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부잣집 딸인 로라는 자기 집에서 화려하게 열린 부자들의 가든파티가 끝나고 먹다 남은 음식을 그날 사고로 가장을 잃고 이제 5명의 자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과부에게 전해주려고 반지하방보다 못한 초상집을 찾은 자리에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그것도 진심을 다해서 말이다. 마음이 너무 아파 그 이상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 모자는 로라의 엄마라는 사람이 남의 집을 찾아갈 때 격식을 갖추고 더 고귀해 보이라고 씌어준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풍의 멋진 ‘명품’ 모자이니 말이다. 오늘 가장을 잃어 생계가 막막한 집에 가더라도 명품으로 온몸을 둘러싸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그때의 영국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Katherine Mansfield(1888~1923)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학업은 물론 작가 활동을 모두 영국에서 하다 삶을 마쳤으니 영국 작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35년의 짧은 삶 가운데 20세부터 14년 동안 80편의 작품을 썼으니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간 여성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20편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시간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성격 탓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그를 흔히 모더니즘의 대표자로 부르는 것이다. 모더니즘은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을 거부하고 여러 다양한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캐서린 맨스필드도 자신의 소설을 미완성으로 놔둔 것이다. 이 모더니즘은 알베르 카뮤의 이른바 ‘부조리 문학’으로 이어져 현대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데 이른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에서 묘사된 큰길을 두고 갈라진 빈자와 부자의 삶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인 그 모순 말이다.        


영어로 ‘hat’은 ‘모자’만이 아니라 ‘뇌물’이라는 뜻도 있다. 사실 모자가 미안해야 하는 사람이 한국에는 넘쳐나고 있을 것이다. 반지하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생각하면 구두가 아니라 허진이 말한 대로 “버선발로, 맨발로라도” 달려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어야 한다. 더구나 국가의 지도자라면 말이다. 그렇게 달려가는 근본적인 마음을 우리 조상들은 ‘애간장이 끊어진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이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위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일찍이 맹자는 일갈하였다.  

    

<孟子> ‘公孫丑’ 상 6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 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 可運之掌上     


간단히 번역해 보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가슴이 아파 견디지 못할 정도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도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不忍人之心’을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공감능력’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그동안 많은 언행을 통해서 공감능력의 부재를 지적당했다. 허진이 지적한 그 ‘구두’는 윤석열 자신의 공감능력의 부재를 보여주는 여러 표징의 하나에 불과하다. 윤석열 자신에게 지도자로서의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있다는 것을 그 구두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허진은 주변 사람만 탓한다. 윤석열이 조선시대의 왕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기레기가 이따위 헛소리를 천하의 <중앙일보>에 끄적거리고도 밥을 먹고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하늘도 분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가 다음 주에 더 큰 비가 내린단다. 그저 지도자를 잘못 만나고 참다운 언론이 죽은 나라에 사는 백성들이 각자도생을 하는 수밖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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