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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29. 2022

낭만가도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시작한 여행

독일 여행은 자아성찰로 이어진다


백조의 성으로 더 잘 알려진 노이슈반슈타인성


독일 중부의 뷔르츠부르크(Würzburg)에서 퓌쎈(Füssen)까지 470km에 이르는 이른바 ‘독일낭만가도’(Romantische Straße)는 정말로 아름답다. 그래서 특히 195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에서 유명해져서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 길은 문자 그대로 낭만이 넘치는 29개 정도의 도시와 마을들을 지나면서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로텐부르크(Rothenburg)의 공예점, 슈타인가덴(Steingaden)의 로코코 양식으로 유명한 비스교회(Wieskirche)를 보고 나서 계속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사이 퓌센(Füssen) 옆 동네인 슈방가우(Schwangau)의 이른바 백조의 성(Neuschwanstein)에 이르게 된다. 특히 이 길은 자전거 길로도 유명해서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타우버탈(Taubertal), 뇌르드링 유성구(Nördlinger Ries), 레흐라인 평야지대(Lechrain)를 지나가다 보면 그림 같은 경치를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물론 이 길은 산책로로도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독일의 깊은 맛을 제대로 보는 데에는 그 길 말고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도 탄복한 라인계곡(Rheintal)을 따라 독일 서부의 쾰른(Köln)에서 출발하여 마인츠(Maiz)까지 라인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이른바 라인 낭만길(Route der Rheinromantik)이다. 

 

라인낭만길의 출발점인 쾰른의 야경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기자기한 도시와 성 그리고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특히 코블렌츠(Koblenz)부터 빙엔(Bingen)으로 이어지는 길의 깊은 라인계곡의 절경은 숨을 멈추게 만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Loreley)도 이 길가에 있다. 또한 코블렌츠에 가면 모젤강과 라인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독일곶(Deutsches Eck, 獨逸串)을 볼 수 있다. 이 길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성으로는 마르크부르크(Markburg)가 있다. 안더나흐(Andernach)의 냉수 간헐천의 분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솟아오른다.



  

또한 독일 남부의 린다우(Lindau)에서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까지 이어지는 450km에 걸친 길도 아름답다. 숲 속 휴양지인 알고이(Allgäu), 파펜빙켈(Pfaffenwinkel), 축슈피츠란트(Zugspitzland)를 꿰고 지나가는 이 이른바 독일알프스길(Deutsche Alpenstraße)을 가다 보면 독일낭만가도의 종착점과 만나는 가미쉬-파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과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 근처의 에탈 수도원(Kloster Ettal), 그리고 퓌쎈(Füssen)에 있는 이른바 왕의 성들로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과 호헨슈방가우성(Schloss Hohenschwangau)에 이르게 된다. 


알고이 지역의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슈렉제 호수


그리고 여기에서 잘츠부르크(Salzburg)를 향해 더 가다 보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호수 킴제(Chiemsee)에 이르게 된다. 그보다 작은 호수 테건제(Tegernsee)도 꼭 보아야 한다. 또한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작은 마을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인 누쓰도르프(Nußdorf)는 2004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독일에는 많은 포도농장이 있기에 그 농장을 따라 난 길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슈바이겐-레흐텐바흐(Schweigen-Rechtenbach)에 있는 독일 포도의 문(Deutsches Weintor)은 여기에서 북쪽을 향해 85km에 이르는 독일 남부 지역의 이른바 독일포도농장길(Deutsche Weinstrasse)의 시작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뜻밖에도 프랑스만이 아니라 독일의 포도주, 특히 백포도주는 세계적인 수준의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슈바이겐-레흐텐바흐에 있는 포도의 문


길 서쪽에는 산지가 동쪽에는 평지가 이어지는 이 길은 보켄하임(Bockenheim)에 있는 ‘독일포도농장길의 집’(Haus der Deutschen Weinstrasse)에서 끝난다. 이 길의 중간중간에는 아름다운 성들이 포도송이처럼 이어져 있다. 그 가운데에는 독일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함바허성(Hambacher Schloss)이나 12세기에 지어진 바흐텐부르크성(Wachtenburg)과 같이 유서 깊은 성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숲을 사랑하는 독일인답게 ‘독일가로수길’(Allenstrasse)이 독일 전역에 약 2,900km 이어져 있다. 독일 북동쪽 발트해에 있는 독일에서 가장 큰 섬인 뤼겐섬(Rügen)에서 시작하여 스위스와 국경에 있는 독일에서 가장 큰 호수인 보덴제(Bodensee)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가로수길은 그냥 차로 무한히 달려도 좋을 것만 같다.  


바르트부르크성

 

그 가운데에서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비텐베르크(Wittenberg)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르트부르크성(Wartburg)은 반드시 들려봐야 할 것이다. 이성은 아이제나흐(Eisenach)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것으로 헝가리의 성 엘리사베트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르틴 루터가 여기에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중에도 한 번 더 말하겠지만 이 성은 백조의 성(Neuschwanstein)을 건축한 루드비히 2세(Ludwig II)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더 유명해졌다.  이 성의 기초는 1067년에 놓인 것이지만 현재의 내부는 대부분 19세기에 증·개축된 것으로 중세의 모습을 온전히 보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기념비적인 건물인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그림 형제의 삶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이 600km에 이르게 되는 이른바 독일동화길(Deutsche Märchen Strasse)도 있다. 이 길은 그림 형제의 고향인 하나우(Hanau)에서 시작하여 브레머하펜(Bremerhaven)에서 마무리된다.  

 

마브르크성


이 길을 가다 보면 그림 형제가 공부한 마부르크(Marburg)와 그들의 많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카셀(Kassel)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그리고 리히테나우(Lichtenau)에서는 홀레 아주머니(Frau Holle)를 만나게 된다. 물론 하멜른(Hameln)에도 들러야 한다. 그래야만 그 유명한 쥐잡이를 여전히 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독일의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이렇게 작은 마을을 자동차로 돌아보는 것이 독일의 참맛을 느끼는 데에는 더없이 좋다.   

 

여기에서 안내하는 길들은 단순히 관광만이 아니라 독일의 사회와 그 문화의 역사를 깊이 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려는 뜻에서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을 가면서 독일의 의식주만이 아니라, 국민의식 특히 독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근간이 된 독일 정신도 알아보고자 한다. 이제 그 길을 함께 떠나보자. 




그동안 코로나로 닫혀있었지만 올해는  바이나흨스마크트(Weihnachtsmarkt), 곧 크리스마스장도 열릴 모양이다. 보통 11월 말에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전까지 한 달 정도 이어진다. 한국처럼 코가 찡한 추위는 없어도 습기 찬 음산한 저녁에 밝은 불빛이 가득한 시내에서 열리는 이 장을 찾아 여러 크리스마스 상품도 구경하고 한국에는 뱅쇼((vin chaud)로 더 잘 알려진 독일식 글뤼바인(Glühwein), 문자 그대로 따끈한 포도주를 한잔 마시면 이국에서 느끼는 나그네의 느낌이 더욱 강하게 다가올 것이다. 금발의 푸른 눈을 지닌 많은 백인들 사이에서 느끼는 홀로 이방인이 되었다는 느낌은 나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더욱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를 찾는 여행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일단 숙소를 잡고 그날 저녁에 바로 시내로 가서 크리스마스장에서 시작해도 좋을 법도 하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장


여행을 떠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 삶의 자리(Sitz im Leben)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내가 있던 자리를 벗어나 전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나그네로 의도적인 '방황'을 하다 보면 결국 잊고 있던, 그리고  잃어버린 나의 자아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 저 깊이 숨겨졌던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특히 나와는 전혀 다른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이방인들로 넘치는 낯선 시공간 안에서 그동안 숨겨졌던, 아니 애써 잊으려 했던 나의 참 자아가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여행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과학은 물론 철학과 문학, 음악만이 아니라 신화와 전설이 가득한 자연을 품은 나라인 독일에서 펼치는 그런 여정은  문자 그대로 자아성찰의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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