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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31. 2022

독일알프스길의 스포츠 성지 가미쉬-파텐키르헨

알파인 스포츠를 즐기며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알프슈피체산과 축슈피체산을 배경으로 한 가미쉬-파텐키르헨 전경


가미쉬-파텐키르헨 (Garmisch-Partenkirchen)은 인구가 27,000명에 이르지만 행정적인 차원에서 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지역의 행정 중심지이다. 독일 전체에서 이런 경우는 여기밖에 없다. 이 마을의 역사는 알프스 지역의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5년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제국은 이 지역을 파르타눔 (Partanum)이라고 불렀다. 서기 200년 무렵에 로마제국은 로마에서 시작하여 이 마을을 지나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어지는 ‘비아 레티아’ (via Raetia)라는 이름의 길을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이 지역은 아우크스부르크와 베니스를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간역의 역할을 하였다.  


가미쉬-파텐키르헨 시청 건물

 

그러나 이 지역도 30년전쟁으로 초토화된 바가 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서 뮌헨과 철도로 연결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치 시절인 1936년과 1940년에 동계올림픽 경기를 연이어 개최하면서 이 지역이 세계적인 겨울 스포츠의 성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8년에는 세계 알파인 스키 경기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 마을은 로이사흐강 (Loisach)과 파르트나흐강 (Partnach) 사이의 평지에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북서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이어지는 암머산맥 (Ammergebirge), 동쪽으로는 에스터산맥 (Estergebirge), 남서쪽으로는 독일 영토 안에 있는 것으로는 제일 높은 산인 3,000m 높이의 축슈피체 (Zugspitze)를 정점으로 하는 산악지역인 베터슈타인산맥 (Wettersteingebierge)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지막 빙하기에 이 지역은 거의 2,000m의 빙하 아래 누워 있었다.  


아이브제 호수에서 바라본 축슈피체산의 설경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이끌려 많은 독일어권 예술가들이 여기에 정착하고 여생을 보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1949)는 이곳에서 활동하다가 생애를 마쳤다.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 (Emil Erich Kästner, 1899~1974)도 이곳에서 활동하였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미카엘 엔데 (Michael Ende, 1929~1995)도 이곳 출신이다.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넓은 평지를 이루는 지형 덕분에 멀리 눈 덮인 축슈피체와 더불어 알프슈피체 (Alpspitze)가 한눈에 보인다. 자연경관만이 아니라 시내 곳곳에도 볼만한 건축물들이 많다. 남쪽 산등성이에는 루드비히 2세 왕이 지은 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지형의 특성상 이 지역은 스키, 스노보드, 봅슬레이, 오토바이, 카누, 산악자전거 등의 스포츠 행사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역 경제는 전적으로 관광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워낙 독일은 겨울 스포츠가 매우 인기 있는 나라이다. 실내에서 하는 아이스하키만이 아니라 야외에서 하는 다양한 겨울 스포츠가 발달되어 있다.


알프스의 산자락에서 여러 스포츠, 특히 겨울 스포츠나 산악자전거의 ‘제맛’을 보기에 독일에서 이곳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격한 운동이 체질이 아닌 사람도 이곳에서 산 정상의 눈을 바라보며 아늑한 식장에서 따끈한 음료와 음식을 즐기는 맛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가미쉬 지역에 있는 프란초센하우스

특히 코가 떨어져 나갈 듯한 청명한 날씨에 따뜻한 실내에서 내다보는 알프스 산자락은 시간이 영원히 멈추어도 좋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물론 알프스 지역의 속살은 스위스에서 더 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접근하는 알프스도 그 나름 매우 독특한 매력을 준다. 특히 하늘이 청명한 날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의 만년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 그 경치의 아름다움과 덧없는 인생의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묘한 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때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 뜬금없이 록그룹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1946~1991)가 애절하게 부른 ‘Who wants to live forever?’가 흘러나온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가 남긴 많은 명곡들 가운데 특히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한 말년에 나온 이 노래는 그의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며 들을 때 더 애잔하게 들린다. 과연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원래 이 노래는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였던 브라이언 메이가 영화 <하이랜더>(Highlander)의 사운드트랙으로 만든 것으로 퀸의 앨범인 <A Kind of Magic>에 수록되었다. 발표 당시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다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말년을 보낸 스위스 몽트뢰에 있는 그의 동상


SF 영화인 <하이랜드>는 비록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TV 시리즈로 만들어지면서 컬트 영화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불멸의 전사 하이랜더 역할의 Connnor MacLeod는 사랑하는 아내 Heather가 자신과는 달리 늙어 죽어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중세 시대의 스코틀랜드 지역 하이랜드에서 죽은 아내를 묻으러 가던 코너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고 혼자서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퀸의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그렇게 사랑마저 스러져버려야 하는 부조리하고 슬픈 현실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여전히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프레디의 목소리로 듣는 노래가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TqFoiM0zxdY)


There's no time for us
There's no place for us
What is this thing that builds our dreams, yet slips away from us

Who wants to live forever
Who wants to live forever
Oh ooo oh
There's no chance for us
It's all decided for us
This world has only one sweet moment set aside for us

Who wants to live forever
Who wants to live forever
Ooh
Who dares to love forever
Oh oo woh, when love must die

But touch my tears with your lips
Touch my world with your fingertips
And we can have forever
And we can love forever
Forever is our today

Who wants to live forever
Who wants to live forever
Forever is our today
Who waits forever anyway?


가사는 매우 단순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애절하다. 그렇다. 우리는 비록 영원히 사랑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은 마치 영원인 것처럼 사랑하며 살 수 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면 말이다. 사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물리적 시간의 차원에서 영생을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영원히 젊게 살고 싶다는 인류의 오래된 소망은 늘 남을 것이다. 그래서 특히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이 화두가 되고 있는 21세기에 삶의 의미는 어찌 규정되어야 하는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마침 손에 헉슬리 (Aldous Huxley, 1894~1963)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멋진 신세계> (The Brave New World)가 놓여 있으면 산의 높이보다 훨씬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마치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싼 높은 산들이 시간의 흐름을 막아주고 두 강줄기가 하나로 모이는 이곳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자연에 도취되다보니 자아를 찾기보다 의식의 흐름의 실타래를 놓친 것 같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겠다.


파텐키르헨의 스키점프대

 

사실 겨울과 산악 스포츠의 성지인 파텐키르헨을 둘러보면 그런 의식의 흐름에서 바로 벗어나게 된다. 스키 장비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푸른 눈의 금발을 한 남녀노소의 유럽인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끼어든’ 사람의 고독을 느낄 새도 없이 그 흐름에 함께 흘러가다 보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은 한 번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살만한 세상이 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험준한 알프스 산맥 안에서의 산책이라는 힘든 운동을 하다 보면 당연히 배가 고파지는 법이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답게 훌륭한 식당이 많다. 그 가운데 파르트나흐 강가 언덕 위에 있는 ‘카이저슈마른-알름’ (Kaiserschmarrn-Alm)은 날이 좋을 때 야외 테이블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가격도 저렴한 이 지방 음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여기에서 다양한 토속 독일 맥주 맛을 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독일의 여러 지역에서 나오는 맥주도 제공되니 특정 브랜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중심가로 돌아오는 길에 이어지는 파트나흐클람 (Partnachklamm)으로 불리는 협곡도 빼어난 경치를 보여준다. 반드시 들러볼 만할 것이다.  


파트나흐클람 협곡

 

다음날 일어나 퓌센을 향하여 길을 나서기 전에 시내를 잠깐 돌아보아도 좋다. 올림픽 경기장이나 루드비히 2세가 머물 던 목조 가옥, 요한 슈트라우스 박물관 (Johann Strauss Institut)도 들러 보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더 자세한 관광 안내를 위한 홈페이지도 물론 있다. (주소: https://www.gapa-tourismus.de/en) 영어로도 나와 있으니 사용하는 데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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