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Lee Aug 31. 2022

독일알프스길 여정의 힐링: 바트 퇼츠와 슈타른베르크

온천과 호수와 함께하는 힐링은 독일 사람도 필요하다

칼바리안베르크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트 퇼츠와 이자르 강의 풍경


로젠하임을 출발하여 작지만 알프스의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라이트 임 빙클 (Reit im Winkl)과 오버라우도르프 (Oberaudorf)를 차례로 둘러보고 나서, 그다음 순서로 도착한 도시가 바트 퇼츠 (Bad Tölz)이다.  


마을 이름 자체가 말해주는 것처럼 인구 2만여 명이 사는 이 동네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피곤한 여정에 관광보다는 그저 몸과 마음을 푹 쉬고 갈만한 곳이다. 1년 내내 서늘하고 음습한 기후의 마을에서 뜨끈하고 요오드가 풍부한 온천을 즐기다 보면 세상 힐링이 따로 없다. 중세에는 ‘시장도시’ (Marktgemeinde)로 지정받을 만큼 물자 유통이 활발했던 곳이다. 이런 식으로 중세에는 영주들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각 도시에 명칭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정은 물론 돈과도 직결된 것이었다.

 

물자가 넉넉하면 사람이 모여드는 법이다. 특히 이 지역은 이자르강 (Isar)을 통한 해상 운송으로 소금과 목재의 매매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요충지였다. 그러나 30년전쟁과 이 전쟁에 이어진 흑사병으로 이 마을은 주변과 마찬가지로 초토화되었다.  

 

그러다가 스페인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 (1701~1714) 기간에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지역 경제가 되살아나게 되었다. 모든 전쟁이 다 나쁜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도시의 생존에는 말이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이 마을에 힐링 효과가 있는 온천이 발견되면서 동네의 모습을 일신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마을은 독일에서도 유명한 온천 휴양지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은 바이에른 지방의 여러 도시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의 깊은 상처가 남은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다카우 수용소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오스트리아로 끌려가던 죽음의 행진에서 독일 지역의 종착역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1945년 4월 말에 나치 정권은 다카우 주변의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던 유대인을 포함하여 약 15,000명의 수용인을 남부로 이동시켰다. 그것도 도보로 말이다. 계절로는 봄인 5월 중순이 되어 바트 퇼츠를 지날 무렵에는 그 가운데 6,00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 이들은 미군에 의해 발견되어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이다. 당시 5월임에도 이 지역에는 눈이 내렸고 길거리의 시체들은 흙이 아니라 눈으로 덮였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비극적인 역사이다. 그 슬픈 역사를 뒤로하고 바트 퇼츠는 이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는 힐링을 위한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하였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고 할 것이다.


이자르 강변에서 바라본 칼바리엔베르크와 이자르다리

 

한국에서 한때 이른바 ‘힐링’ 바람이 불다가 이제는 약간 주춤한 모양새이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힐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제도를 운영하는 독일조차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삶은 원래 고단한 법 아니던가? 그러니 한국에서도 힐링의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트 퇼츠에서 국도를 따라 동남쪽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테건제 (Tegernsee)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호수가 나온다. 이 호수 주변도 나름대로 유명한 관광지로 잘 개발되어 한 나절 정도는 쉴만한 곳이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인 바트 퇼츠에서 하루 정도 보내는 것이 알프스의 정취를 맛보는 데에는 더 나을 것이다.


테건제 호수가의 고등학교 건물로 사용되는 테건제 성

 

시내에 있는 바트 퇼츠 온천장 (Kurhaus Bad Tölz)에서는 지방색이 가득한 작은 공연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는 단체 손님을 주로 받는 곳이니 조용히 온천을 즐기고 싶다면 시내에 있는 적당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된다. 식사도 호텔에서 해결해도 무난하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것이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미리 일정을 문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곳은 휴양지이지만 시내도 매우 예뻐서 시내를 돌아보고 나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고도 시간이 더 난다면 북서쪽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나오는 인구 2만여 명의 도시 슈타른베르크 (Starnberg)를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슈타른베르크 호수 가에 있는 수영장이 가볼 만하다. 실내 수영장과 실외 수영장, 그리고 사우나 등 물놀이를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독일 여행을 하면서 호텔에만 머물다 보면 독일 사람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다녀오고도 남는 것은 결국 사진뿐이라는 자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억지로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현지인과 접촉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필자의 경우는 일부러 유스호스텔을 이용하였다. 한 방에 4명 많은 경우 8명이 자게 되면 저절로 통성명을 하게 된다. 특히 멀리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반드시 1~2명은 호기심을 보이며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물론 영어와 독일어를 잘하면 좋지만 서툴러도 전혀 문제가 없다. 몇 마디 단어만 나열해도 대체로 알아듣는다. 당연히 깊은 대화를 나누려면 언어 능력은 필수다. 언어가 어느 정도 된다면 해외여행의 질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비싼 돈 내고 먼 나라 가서 먹고 마시고 구경만 하고 오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유스호스텔을 이용하고 그곳에서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외국인들과 함께 참여하여 문자 그대로 친교를 나누면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아는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멀리 축슈피체가 보이는 슈타른베르거제 호수

 

사실 슈타른베르크 호수는 백조의 성을 지은 루드비히 2세 왕(Ludwig II)이 의문의 익사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 반면에 유명한 독일 바리톤 성악가 피셔-디스카우 (Dietrich Fischer-Dieskau, 1925~2012),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거두 마르쿠제 (Herbert Marcuse, 1898~1979)도 말년을 여기서 조용히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현존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비판철학의 거두 하버마스 (Jürgen Habermas, 1929~)도 여기에 있는 ‘막스플랑크 과학기술세계 연구소’ (Max-Planck-Institut zur Erforschung der Lebensbedingungen der wissenschaftlich-technischen Welt)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인물들이 노년에도 찾을 만큼 경치가 좋고 조용히 깊은 생각에 잠기기에도 좋은 곳이 바로 여기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이에른의 수도에서 이곳까지 전철이 직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뮌헨의 중앙역에서 20유로 정도를 내고 전철로 한 20~30분 동안 달리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서 뮌헨이라는 대도시의 번잡함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전철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슈타른베르크 호수 박물관이 있다. 이 주변의 역사와 예술을 알고 싶으면 한 번 찾아볼 만한다. 게다가 여기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비슷한 크기의 호수인 암머제 (Ammersee)도 있다. 이 호수도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이 지역의 중심 도시는 역시 슈타른베르크이기에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호수 북쪽으로는 커다란 습지가 있으니 자연 관찰을 좋아하는 이들은 한 번 찾아볼 만하다.  시내에 볼만한 것으로는 슈타른베르크성과 상트요제프 성당 정도이기에 온천과 수영을 즐긴 다음에는 주변의 자연경관을 보러 산책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독일 알프스 길의 절반도 못 왔지만 알프스 지역의 빙하기 이후 형성된 지리적 특성을 관찰하며 독일 사람들이 휴식하는 것을 엿보는 재미도 나름 나쁘지 않다.


슈타른베르그 성의 정경

  

여담이지만 독일 사람들이 관광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여유가 있다. 물론 자기 나라에서 하는 여행이니 비행기 시간을 포함한 여행 일정에 쫓겨야 하는 이방인들과는 마음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말 그대로 그들의 여행은 힐링을 위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맛본다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편안한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동안 독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위는 뜻밖에 독서이다. 해변이든, 숙소이든, 심지어 이동 중인 차 안에서든 책을 읽는 이들이 뜻밖에 많이 보인다. 책은 집에서 읽으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일’을 한다. 그들의 일상생활을 10년 이상 관찰해 본 결과 참으로 열심히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직장 일이든 가사노동이든 학교 수업이든 부지런하다. 흔히 말하는 ‘독일 국민성’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바트 퇼츠의 자세한 안내를 받고 싶으면 공식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된다. (주소: https://www.bad-toelz.de/en) 영어로도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니 충분히 활용해 볼만 하다.  

 

슈타른베르크도 매우 작은 도시이지만 알찬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주소: https://www.starnberg.de/) 비록 코로나로 여러 행사에 제한이 있지만 독일의 여러 도시와 마을, 특히 관광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최선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니 독일의 모든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미리 확보하여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도록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전 10화 독일알프스길의 스포츠 성지 가미쉬-파텐키르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