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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Sep 01. 2022

독일알프스길의 종점 린다우

라인강도 보덴제 호수에서는 잠시 쉬고 간다

린다우 섬 남쪽의 항구에 있는 등대와 사자상


보덴제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국경이 만나는 호수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국경을 타고 흐르던 라인강이 이 호수로 들어와 다시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 사이로 흘러 나가 결국 북해에 이르게 된다.  

 

보덴제는 독일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유럽 대륙에서도 표면적으로 3위, 수량으로는 2위인 규모의 호수이다. 크기는 동서로 최대 63km, 남북으로는 최대 14km에 달한다. 호수 둘레를 다 돌면 273km에 달한다. 호수의 최대 깊이는 252m이지만 알프스에서 흘러 들어오는 토사로 그 깊이가 점점 얕아지고 있다.  

 

이 호수는 1만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형성되었다. 보덴제(Bodensee)라는 명칭은 주변의 보드만 (Bodman)이라는 지명에서 온 것이다. 고중세 독일어로 보드만은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15세기 이후 호숫가에 있는 주요 도시인 콘스탄츠 (Konstanz)에서 가톨릭 교회의 공의회가 개최된 이후 콘스탄츠제 (Konstanzsee)로 불리기도 한다.


린다우 선착장의 망겐투름 탑

   

호수 안에 있는 섬 중에 가장 큰 라이헤나우 (Reichenau)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로 지정된 라이헤나우 수도원의 건물이 남아 있다. 세 번째로 큰 섬인 마이나우 (Mainau)는 소유주인 베르나도테 가문이 공원으로 가꾸어 관광지가 되어 있다. 알프스산을 넘어오는 바람이 푄 현상을 일으켜 이 호수에서는 자주 큰 파도가 인다. 때로는 파도의 높이가 3~4m에 이르기도 한다. 호수가 워낙 커서 450종의 새가 살며 물고기도 45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부들이 이 호수에서 1년에 약 150만kg의 어획량도 올리고 있다. 그래서 관광만이 아니라 어업도 상당한 수익을 내는 산업이 된다. 물론 이 물고기들은 주로 주변 식당에서 소비된다.

 

라이헤나우 섬의 수도원 정경


그러나 호수 주변의 경관이 워낙 수려하여 관광업이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이 되었다. 특히 보트 산업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유럽 3대 폭포인 라인폭포도 있다.   독일알프스길의 종착점은 원래 린다우 (Lindau)이다. 여기서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면 오스트리아의 도시인 브레겐츠 (Bregenz)가 보인다. 인구 25,000명의 중소 도시인 린다우는 1496년 신성로마제국의 제국회의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신성로마제국이 거의 와해될 무렵인 1803년까지 린다우는 특별한 권한을 지닌 이른바 ‘자유제국도시’ (freie Reichstadt)였다. 신성로마제국에서 ‘제국도시’ (Reichstadt)는 황제가 직접 통치하는 도시였다. 그리고 ‘자유도시’ (freie Stadt)는 명목상의 통치자로 주교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유명무실하고 자치적으로 운영되면서 제국회의에서 제국도시와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 그래서 사실 자유제국도시는 법적으로 틀린 표현이지만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다. 제국도시도 행정과 사법에서 어느 정도 자유와 특권을 누렸다. 다만 황제에게 직접 세금을 바치고 군사 동원에 협조할 의무가 있었다.

 

962년 오토 1세 (Otto I)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시작되어 1806년까지 존속한 신성로마제국은 외부적으로는 단일 제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민족의 왕과 제후들의 연합체로 결코 진정한 의미의 하나의 통일 국가가 되어 본 적이 없다. 그 안에서 여러 정치세력이 이합집산을 끊임없이 지속하면서 제국회의 (Reichstag)에서 이해 조정을 하며 존속해온 것이다.  

 

유럽의 의회민주주의가 근대 사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미 유럽의 중세 때 그 민주주의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오랫동안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화해와 타협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를 충분히 훈련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린다우 구도심의 알테스 랏하우스 건물


린다우의 구도심은 섬 안에 있다. 육지의 린다우와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기차와 자동차로 접근하기가 쉽다. 시내 중심에는 구시청사가 있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지만, 관광지의 느낌이 강하여 ‘독일다운’ 정취를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현대적인 행사장 (Insellhalle Lindau)과 카지노가 있어서 고전적인 분위기를 많이 흐리고 있다.  

 

그러나 섬 남쪽으로는 항구와 요트 선착장이 있어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좋을 것이다. 말이 호수이지 그 크기가 상당하고 자주 파도도 높게 일어 요트로 마치 바다를 제대로 항해하는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시내 한가운데에 과거 수도원이 있던 지역부터 항구까지 이어지는 긴 도로인 ‘린다우 시 막시밀리안가’ (Maximilianstraße in Lindau)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여느 독일의 중세도시와 마찬가지의 향취를 맛볼 수 있다.  


보덴제 동쪽의 린다우 섬 

 

린다우라는 지명은 중세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인데 보리수(Lindenbaum)가 자라는 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문장도 보리수이다. 10~11세기에는 교회와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들어섰다. 이 도시도 예외 없이 30년전쟁과 흑사병으로 초토화되었다가 나중에 겨우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 30년전쟁은 단순한 종교전쟁이 아니라 유럽, 특히 독일의 역사를 바꿀 만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경치가 좋은 관광지답게 공연과 행사도 자주 열린다. 그리고 원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있던 책들을 바탕으로 세워진 <제국도서관>은 고서들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시박물관에는 15세기 이후에 제작된 그림과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피카소, 샤갈, 마티스의 작품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린다우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골동품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독일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린다우 또한 아기자기한 재미를 누리며 천천히 둘러보기에 좋다.

 

이곳의 전통행사로 유명한 것이 이른바 ‘파스넷’ (Fasnet)이다. 현재의 형태는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것이지만 이미 중세에 있었던 축제가 라인란트 지역의 사육제의 영향을 받아 이 지역 고유의 풍습이 사라지게 된 것을 반성하여 다시 되살린 것이다. 파스넷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정식 명칭은 ‘슈바벤-알레만 전통 사육제’ (Schwäbisch-alemannische Fastnacht)이다.  이 사육제에서 사람들은 한국의 하회탈과 비슷하게 나무로 만든 탈을 쓰고 행진한다. 그리나 이 축제는 사순절 시작할 무렵에나 볼 수 있으니 정말 보고 싶으면 스케줄을 잘 잡아야 한다. 


보덴제 근처 테트낭에서 거행된 파스넷 행렬의 궁정광대


사실 파스넷과 같은 축제는 유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사육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시작되는 기독교 절기와 맞물린 풍습이다. 그런데 예수의 고난을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하기 전에 미리 몸보신을 하는 풍습을 만들어 낸 것이 사육제이니 어찌 보면 인간의 간계가 느껴질 만도 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경건주의적 신앙을 가볍게 무시하며 먹고 즐기는 모습을 신이 보면서 과연 화를 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하고 사랑이 넘치는 신이라면 오히려 그런 인간을 귀엽게 볼 것이다. 수난 주일에 굶을 것에 대비하여 잔뜩 먹어두는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지 않은가?


기독교 전통에서 오랫동안 경건주의가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교회 안에서 절대 웃으면 안 되고 근엄한 얼굴로 신의 말씀을 신부나 목사의 목소리를 통해 경청하며 자기 죄를 반성해야만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성직자들은 주지육림도 모자라 쾌락에 빠지고 성적 타락도 서슴지 않을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내로남불'은 기독교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현상이었다. 그래서인가? 오늘날 유럽 기독교에서는 그 누구도 경건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의로운 신의 심판보다는 자비로운 신의 사랑을 더 앞세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정의에 앞서는 것이 사랑이라고 갈파한 바가 있다. 그래서 파스넷과 같은 사육제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오히려 신의 사랑과 자비를 증명하는 일이 된 것이다. 사실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안다. 인생 별거 없다는 사실 말이다. 80 전후해서 대부분 이 지구를 떠날 운명에 처한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내가 처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시야가 좁아지면 더욱 에고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강퍅한 사람이 되고 만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럴 때 후설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판단중지'의 기술을 응용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살던 자리를 잠시 떠나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그 방법에 독일 여행 만한 것이 또 있을까?

 

보덴제를 배경으로 한 린다우의 바이나흐트스마크트 정경


다시 린다우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관광지에 왔으니 먹어야겠다. 그러나 독일 알프스 길을 지나며 독일 음식을 충분히 먹어봤으니 조용한 책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지친 몸을 달래며 방랑자의 나른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린다우섬 안의 아름다운 ‘피셔가쎄’ (Fischergasse)에 있는 책 카페 <아우구스틴> (Augustin)에서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며 사람 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여기에서 실질적인 독일 라인강이 시작되는 곳이니 다음 여정도 느긋하게 살펴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특이한 체험을 하고 싶다면 린다우 인형극 오페라 극장(Lindauer Marionettenoper)을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입장료도 어른 성인 기준 30유로 내외 정도로 적당하다. 공연 작품도 세빌리아의 이발사, 마술피리, 카르멘, 라트라비아타, 백조의 호수, 헨젤과 그레텔 등으로 매우 수준이 높다. 정교하게 제작된 인형과 복장을 보는 것만으로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참조: https://www.marionettenoper.de/en/)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이 딸을 훈계하는 장면에 나오는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을  코롤라투라 기법으로 인형이 부르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린다우 인형극장 공연 모습 © Christian Flemming


보덴제는 그 위치 때문에 흔히 독일의 바닥에 있는 호수라는 의미를 지닌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만이 아니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호수이기에 독일만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호수를 건너면 세 나라를 번갈아 가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유럽연합이 수립되어 오스트리아와는 국경 문제가 사실상 없지만, 스위스는 아직도 유럽연합 가입을 국민이 거부하기에 엄연히 외교적으로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여행을 해보면 여느 유럽연합국가와 큰 차이가 없이 무난히 해상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예전같이 완전히 유명무실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체험한 국경의 개념이 유럽에 가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유럽은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된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을 통해 싸우기보다는 서로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체험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북한과 관계가 개선되어 여행이 좀 더 자유로워지면 좋겠지만 설사 남북관계가 개선된다고 해도 갈 곳이 중국과 소련 밖에 없으니 조금은 답답한 노릇이다. 게다가 북한을 지나 다다르는 곳이 소련과 중국의 변방 지역이니 더 그렇다.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다.

 

보덴제는 워낙 독일에서 유명한 관광지이기에 이에 관한 홈페이지에도 풍부한 정보가 들어 있다. (주소: https://www.bodensee.de/en) 영어로도 보덴제 주변 관광에 관한 매우 자세한 안내가 되고 있다. 그러니 최신 정보를 확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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