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휴식과 음식
흔히 해외여행은 문자 그대로 ‘큰맘 먹고’ 가기 때문에 대부분 유명한 관광지를 택하기 마련이다. 유럽이라면 파리, 로마, 잘츠부르크, 바르셀로나, 베네치아, 알프스 정도다. 그것도 버스를 타고 단체로 주마간산으로 ‘달린다.’ 그래서 남는 것은 대부분 ‘인증샷’과 감기·몸살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몇 번 해보면 재미가 없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단체 관광’은 특히 유럽에서 법으로 금지하는 상황까지 오고 있다. 단체 관광이 지역 사회를 ‘짜증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암스테르담에서는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대형 페리선의 기항을 아예 금지시키는 법을 제정했다. 배에서 갑자기 수천 명이 내려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것을 시민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것은 여행이 아니라 ‘스트레스의 배설’이다. 여행의 참다운 의미는 휴식과 새로운 것, 미지의 세계의 탐색,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의 교감에 있다. 그래서 유럽 선진국은 ‘지속가능한 생태 여행’(sustainable eco-tourism)을 추구하고 있다. 관광객이 모여들도록 하여 돈을 버는 것만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의 단체 관광의 또 다른 문제는 한국인이 찾는 대부분의 유럽 유명 관광지는 ‘외국인’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정작 프랑스에 가도 프랑스 사람과 교류할 기회가 제로다. 독일도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단지 외국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파리, 로마, 베네치아, 융프라우 모조리 ‘외국인’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몰려다니기 때문에 비싼 돈 들여서 해외여행한다고 외국에 나왔지만 ‘외국 여행’을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인증샷만 찍다가 집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사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장소는 그런 ‘인증샷’ 여행이 처음부터 싫거나 그런 단계를 이미 지난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곳이다. 이른바 독일과 독일인의 ‘속살’을 알아보기에 그만인 곳이다. 기왕 외국에 나갔으면 그 나라 사람과 그 나라 문화에 푹 젖어보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여행안내다.
십 년 넘는 세월을 그것도 나의 황금기를 독일에서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독일과 독일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독일에 관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독일인이 사랑하는 것은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른바 ‘독일인의 사랑’ 시리즈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물론 막스 뮬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가 이 제목으로 쓴 소설 Deutsche Liebe가 있다. 막스 뮬러는 원래 언어학과 동양학을 연구한 학자였다. 또한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영국으로 건너가 평생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비교 언어학 교수로 살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이 소설 한 권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 나는 같은 제목이지만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독일인의 다양한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독일인은 무엇을 사랑할까? 개인적인 관찰의 결과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로 휴가다. 그래서 독일인은 여행도 휴가를 위해 간다. 결코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사진 찍고 ‘인스타’에 올리고 ‘플렉스’ 하려고 가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자연과 하나가 되거나 그냥 ‘멍 때리기’를 한다.
그런 독일인을 보고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멋진 휴가지에 가서 사진도 찍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여행 분위기도 맛보고 ‘화끈하게 놀다’ 와야 돈이 안 아까운 법인데 말이다. 비싼 돈 들여 여행을 와서는 기껏 하는 일이 산책과 독서와 멍 때리기다. 정말 한심한 돈 낭비 아닌가?
그러나 독일에 산지 십 년 가까이 되자 어느 순간부터 여행의 참다운 의미를 독일인에게 배웠다. 여행은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쉬러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를 돌아보려고 간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여행보다는 휴가를 좋아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는 휴식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휴식은 바닷가나 산을 찾아 삼겹살 굽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스트레스를 풀려다가 더 쌓는 방식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저 조용히 산책하고, 조용히 책 읽고, 조용히 자연을 관찰하고, 조용히 묵상한다. 물론 기운이 넘치는 젊은이들은 스포츠 활동을 한다. 스키, 카누, 세일링, 서핑을 즐긴다. 그래서 독일인이 사랑하는 휴가지는 그런 요구에 적합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휴가지도 바로 그런 독일인이 사랑하는 곳을 모아보았다. 아마도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을 것이다. 물론 독일인이 사랑하는 휴가지가 한국인의 입맛에 딱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이 사랑하는 휴가지를 탐색하다 보면 독일인의 사랑을 깨닫고 그들의 깊은 속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기에 소개된 휴가지는 독일 북부의 해안가 마을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독일의 지형을 보면 그 이유를 바로 알게 된다. 독일은 한국과 정반대로 3면이 다른 나라들과 대륙의 국경을 이루고 북부에만 해안이 있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유난히 크다. 인간은 원래 없는 것을 더 ‘밝히는’ 법 아닌가?
그런데 독일은 북부 해안도 여러 나라와 공유하고 있다. 대서양 쪽으로는 네덜란드와 덴마크, 발트해 쪽으로는 덴마크와 폴란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더구나 그 바다도 상당히 긴 구간이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으로 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럽의 등뼈라고 할 수 있는 알프스산맥에 완전히 닿기도 전에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에 도달하게 된다. 독일은 유럽 최강의 국가로 가장 많은 이웃 국가와 국경을 마주한 나라다. 그런데 그만큼 외국으로 나가기가 쉽다. 다시 말해서 다른 나라를 ‘침범’ 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독일인은 휴양을 주로 국내에서 보낸다. 사실 휴가 물가가 비싸서 해외로 가나 국내에서 보내나 비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유난히 여행과 휴가를 좋아하는 독일인은 유럽에서도 가장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편에 속한다. 주로 유럽 대륙을 많이 찾는 편인데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스페인이다. 특히 이강인 선수가 선수 생활을 했던 마요르카는 독일인이 정복하다시피 해서 독일인은 이곳을 마치 자기 나라의 여느 휴가지인 것처럼 애용한다. 마요르카에서는 스페인어를 거의 들을 수가 없다. 대부분 사람이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물론 독일인이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로 독일화 된 상황도 있지만 뜨거운 태양과 바다이다. 둘 다 독일에서 매우 부족한 요소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단지 돈만이 아니라 독일 땅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 독일 내 여행을 매우 즐긴다. 사실 유럽 대륙의 50여 개 국가는 모두 육지로 연결되어 있기에 맘만 먹으면 차를 몰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리고 캠핑 시설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발달하여 있기에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다. 필자도 그런 혜택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도 독일 내에도 다른 나라 못지않은 아름다운 휴가지가 많기에 독일인들이 독일 안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독일인의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북쪽으로도 많이 가지만 알프스 지역의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남쪽으로도 많이 간다. 그러나 남북만이 아니라 서쪽에도 멋진 경치와 자연환경이 마련된 곳이 있다. 동부, 곧 구 동독 지역도 마찬가지다. 문자 그대로 독일의 동서남북에는 숨은 진주 같은 명소가 널려 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도 독일인이 즐겨 찾지만, 독일 남부만 가도 비슷한 분위기에서 쉬고 올 수 있는 곳이 많다.
여기에서는 그렇게 독일인이 특히 사랑하는 휴가지 19곳을 선정하여 제1부에 소개하였다. 이 지역은 독일 언론이나 관광업자가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가지로 뽑은 곳이다. 사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숨은 비경, 이른바 속살이다. 그곳에서 ‘외국인’이 아닌 독일인이 쉬는 모습을 관찰하고, 더 기회가 된다면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삶에 대한 지혜를 교환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또한 부록으로 독일인이 사랑하는 음식을 제2부에서 소개했다. 여행과 휴식에 맛난 음식이 빠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문화는 음식에 반드시 반영되기 마련이다. 흔히 속담대로 내가 먹는 대로 나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독일인이 사랑하는 음식이 오늘날 독일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인의 속내를 알고 싶다면 그들이 먹는 음식을 맛보고 음미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결국 독일을 아는 가장 빠른 길이 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며 노는 것 아닌가? 다만 그 노는 것이 ‘부어라 마셔라’는 아니다. 유럽의 캠핑장에 가보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일단 그들은 캠핑 장비를 미니멀리즘 수준으로 준비한다. 그리고 음식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준비하지 않는다. 자연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침범하고 옆에 온 캠핑족에 방해가 안 되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캠핑 장비 자랑도 없고, 요리 경연 대회 같은 분위기도 없다. 최소한의 장비로 최소한의 음식으로 캠핑을 하면서 자연을 탐구하고 자연과 하나 되는 체험을 한다.
원래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연과 하나 되며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정신을 간직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집을 지어도 자연과의 조화를 최대한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해방되고 나서 그런 자연보호 정신에서도 해방된 듯 여행을 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이 만든 쓰레기를 자연에 던져 버린다. 이것은 여행도 아니고 휴식도 아니다.
여기에서 소개한 여행지는 그런 ‘파괴적인 여행’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물론 베를린과 함부르크는 대도시라서 자연 친화의 느낌이 안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대도시조차 지속가능한 여행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독일이다. 여행이 단순히 내 돈을 마음대로 쓰고 기분 내고 오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유럽에서 특히 독일에서 잘 배울 수 있다. 여행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여정이다. 이 길이 최선 여행을 하는 길인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