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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Aug 24. 2023

프롤로그

독일 10대 철학자와 10대 음악가의 협연

 <독일인의 사랑> 시리즈 3편에서는 인류의 문화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독일 출신 철학자와 음악가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top ten을 선정할 때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독일에서 오래 살며 공부하고, 독일 철학자와 음악가를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기에 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독일 철학자 10명과 독일 음악가 10명을 선택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 소개되지 않은 철학자와 음악가 말고도 독일에는 정말로 인류의 문화사에 커다란 공적을 남긴 이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된 이들의 공적에 그 누구도 딴지 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비교적 안심하며 이 글을 시작해 본다. 일단 여기에서는 먼저 독일 출신의 ‘위대한’ 철학자 10명을 간단히 소개해본다.  


1.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 – 1900)   

  

흔히 니체를 철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그는 원래 뛰어난 언어학자였다. 게다가 작곡과 시에도 능했다. 천재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인물이다. 니체의 사상을 나치 정권과 연결해 해석하는 앵글로·색슨 계통의 호사가들은 그가 결국 나치의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데 어불성설이다. 그는 무엇보다 서양을 2천 년 가까이 통치해 온 기독교의 폐해와 부조리를 파헤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를 무신론자로 깎아내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그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 데서 나온 억측이다. 니체야말로 예수를 사랑했고, 그 예수를 망가뜨린 제도 교회를 통박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기독교는 니체를 악마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니체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독일어권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가장 으뜸은 인간을 기독교 교회가 조작한 도그마의 노예가 아니라 바로 자기의 주인임을 자각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2.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헤겔은 19세기 이후의 서양 사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철학자다. 그가 콜레라에 걸려 61세의 나이로 ‘요절’ 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철학적 성찰의 전망이 얼마나 더 확대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의 역작인 <정신현상학>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의 정신세계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 다른 짐승과 다른 이유가 바로 철학적 사유 능력이라는 사실을 헤겔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인간이 단순히 그저 먹고 싸고 노는 것에만 몰두하는 짐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그리고 짐승과 다를 수 있는 것은 바로 Vernunft 곧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헤겔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면 내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이니 말이다.  

   

3.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     


엥겔스는 철학자일 뿐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행동에 옮긴 혁명가다. 마르크스와 더불어 근대 공산주의를 선언한 정치 사상가이지 역사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흥분만 하는 혁명가가 아니라 천재 소리를 안 들으면 섭섭한 철학자다. ‘빨갱이’ 알레르기가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산주의를 실질적으로 수립한 인물이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다 보면 ‘가진 자’가 만들어 놓은 구조적인 사회적 불의에 대한 분노와 약자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때 금서였지만 이제는 누구나 읽고 감상할 수 있는 그의 주저인 <신성한 가족>,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선언>은 ‘빨갱이’ 알레르기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4.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 - 1976)    

 

하이데거는 해석학과 실존주의로 20세기 최고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그가 통찰한 존재와 시간의 관계는 여전히 인간의 지적 유희의 지평을 존재의 세계에서 무의 세계까지 확대했음을 의심할 수 없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하이데거도 나치와 연계되는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앵글로·색슨 그리고 유대계에서 나오는 편견이 겹친 부분이 많다. 그의 고유한 개념인 Dasein, Zeit, In-der-Welt-sein을 도구로 Gedankenspiel을 하다 보면 세상 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인간이 어차피 썩어버릴 육신만 지닌 존재가 아니라 영원을 지향하는 실존적이면서 초월적 존재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니 말이다.     


5.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 1804 - 1872)     


현대 철학을 이야기할 때 포이어바흐를 어찌 빼놓을 수 있을 것인가? 현대 사상에 획을 그은 인물인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포이어바흐가 없었다면 두 발로 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무신론자요 유물론자만이 아니다. 니체보다 앞서서 그리고 니체와 마찬가지로 서양을 문자 그대로 통치한 기독교의 폐해를 그만큼 갈파한 철학자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업적이 결국 오늘날 기독교가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예언했다고도 볼 수 있다. 19세기에 핍박을 받았지만, 진리를 말했다. 예언자는 언제나 핍박받기 마련이라는 예수의 말을 몸으로 실현한 철학자가 아닐 수 없다.      


6.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 – 1814)     


과연 피히테를 빼놓고 독일 관념론을 알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 위대한 칸트의 사상도 피히테라는 걸출한 천재가 없었다면 온고지신의 과정을 거쳐 좀 더 세련된 전통을 만드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히테는 흔히 헤겔이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변증법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 피히테는 단순히 철학자만이 아니라 분열된 독일을 독일 민족주의로 통일시킨 ‘애국자’이기도 하다. 분열을 화합으로 이끈 그의 사상은 모래알처럼 산산이 부서진 21세기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릴 뿐 아니라 잣대가 되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7.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 – 1969)     


야스퍼스는 20세기 지성사를 지배하다시피 한 실존주의의 대표자이다. 물론 그 스스로는 자신이 실존주의자라고 내세운 적은 없지만 말이다. 사실 실존주의는 인간을 고전적 도그마, 곧 신앙과 이성으로만 파악할 수 없는 지금 여기에서 문자 그대로 실존하는 존재로 갈파한 사상이었다.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는 사고의 도구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야스퍼스는 20세기 독일의 지성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로 여겨질 만하다. 그가 만들어 낸 개념 Philosophieren, 곧 ‘철학함’은 철학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사는 길을 안내하는 차원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8.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한국에서는 마르크스가 ‘빨갱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최초로 뿌린 사람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빨갱이’ 욕을 하는데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욕을 하는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어이없게도 그의 주저인 <자본론>, 곧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의 표지조차 못 본 자들이 대부분인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주장하는 바를 이해하고, 그의 주장의 논리적 약점이나 단점을 지적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논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자기 기분에 안 들면 무조건 이른바 ‘빨갱이 딱지’를 붙여 버린다. 그러면 그 패거리가 들고일어나 매도해 버린다. 그 집단 광기에 휩싸이다 보면 자기가 왜 흥분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지성이 사라진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국 사회에 지성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마르크스는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철학자다.     


9.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철학자 가운데 칸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세 권의 비판서를 쓴 것도 어렴풋이 아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 ‘과연 칸트가 무슨 말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그의 사상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한번 칸트의 늪에 빠지면 누구도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의 Gedankenspiel, 곧 ‘지적 유희’는 인간이 그저 그런 ‘먹고 싸고 노는’ 짐승이 아니라 사유의 기쁨을 아는 고상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 Gedankenspiel의 장단에 한 번 놀아나기 시작하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독일어로 ‘kantig’라는 단어는 ‘뾰족한’, ‘날카로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날카로운 사유의 길로 들어서면 비로소 내가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런 자부심을 안겨준 칸트가 얼마나 고마운가?     


10.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독일에 내로라하는 사상가들이 넘쳐나는 데 아직 살아있는 학자를 best ten의 반열에 올린다고 섭섭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 된 인물이다. 그리고 내 취향에도 맞는 인물이다. 곧 인간의 지성을 탈이데올로기적인 차원에서 끌어올리는 길을 찾은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하버마스를 읽으면 독일 지성사를 요약한 이른바 ‘족보’를 얻는 기분이 든다. 그런 면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철학자다.      


이들 이외에도 비록 ‘순수’ 독일 학자로 보기 어렵지만 독일의 사상적 계보에 서 있는 프로이트, 융, 아렌트, 그리고 피히테와 버금가는 쉘링, 또한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쇼펜하우어도 어찌 버리는 카드이겠는가? 그러나 일단 너무 넘친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1차로 명단을 마무리하고 시작해 보련다. 중간에 맘이 바꾸면 명단도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음악가는 명단만 일단 제출해 본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하이든(Franz Joseph Haydn),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브람스(Johannes Brahms),  슈만(Robert Schumann), 바그너(Richard Wagner), 슈베르트(Franz Schubert), 베버(Carl Maria von Weber), 멘델손(Felix Mendelssohn). 물론  파헬벨(Johann Pachelbel),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말러(Gustav Mahler)도 넣고 싶다. 그러나 일단 1차 명단이니 나중에 맘대로 바꾸기로 한다.


독일의 문화사를 살펴보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 철학자, 음악가, 과학자, 정치가가 차고도 넘친다. 그저 부럽다. 그들 가운데 누구를 골라서 best ten을 말하는 것 차제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욕심부리다 탈 난다. 일단 시작을 해보는 것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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