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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Sep 29. 2020

항구의 역사를 담은 대학도시 그라이프스발트

독일 10대 명문 대학도시 시리즈


그라이프스발트는 로스토크보다 더 동쪽에 있는 인구 59,000명의 작은 도시이다. 여기에 들어선 그라이프스발트대학교는 학생 10,000명 교직원 6,200명으로 문자 그대로 이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 그래서 이 도시에 대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 주변에 도시가 생겼다고 말할 정도이다. 1456년에 새워진 그라이스펠트대학교는 독일에서 4번째로 오래된 유서 깊은 대학교이다. 학생의 3분의 1은 타 지역에서 유학 온 이들일 만큼 이 대학교는 그 구성원이 다양하다. 이 학교의 중점 연구 분야는 의학과 물리학 그리고 생태환경이다. 이 분야에 대하여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대학교를 선택해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그라이프스발트는 1248년 시토회가 세운 엘데나 수도원(Kloster Eldena)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라이프스발트는 포머른 가문의 문장에 나오는 동물인 그라이펜(Greifen)과 숲을 의미하는 발트(Wald)가 합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라이펜 가문 출신으로 포머른을 통치했던 바르티슬라프 3세 공작(Wartislaw III, 1210-1264)이 그라이프스발트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1254년 그라이프스발트의 항구(Ryckmündung)를 자유항(Freihafen)으로 선언하였다. 자유항은 군주가 세금을 받지 않고 백성들이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그 당시 그 항구 부근 바다에는 해적이 난무하여 백성들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그런 조치를 내렸다.


126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시의 모습을 갖추면서 강 서안으로 오늘날의 구도심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루베노프광장(Rubenow-Platz)과 상트야코비성당(St.-Jacobi-Kirche)이 이때 세워졌다. 해상 무역이 활발한 도시인만큼 한자동맹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61년에는 여기에서 한자동맹회의도 개최될 정도였다. 중세의 흔한 권력다툼의 바람도 이 지역을 지나갔지만 큰 탈은 없었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바람도 잘 견디며 루터교를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1561년에는 과거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자리에 개신교 학교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30년전쟁은 이 지역도 초토화시켰다. 1627년 이 도시를 점령한 황제군은 주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였고 흑사병으로 주민의 절반이 죽어나갔다. 이어서 1631년 스웨덴의 아돌프 2세 왕(Gustav Adolf II, 1594-1632)이 그라이프스발트를  점령한 이루 거의 200년 가까이 스웨덴이 이 지역을 통치했다. 그리고 1807년에는 프랑스 나폴레옹 군에 점령당하고 이어서 1814년에는 덴마크에 점령당했다. 그러나 1년 후에는 다시 프러시아에 이 도시가 넘겨졌다.


     

그러한 신산스러운 역사를 뒤로하고 20세기에 들어선 그라이프스발트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다. 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25년 당시 학생이 1,500명에 불과하던 그라이프스발트대학교를 위하여 시정부가 많은 토지를 무상으로 증여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학 건물이 구도심 밖에도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구도심 건너편 동쪽에 마련한 부지에는 주로 의학부 건물과 병원들이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이 도시에 대규모 포로수용소와 독일군 막사가 들어섰지만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 갔다. 동서독 분단으로 소련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 그라이프스발트는 동독 정부의 조립식 주택 건설 위주의 도시 개발 계획으로 유서 깊은 문화유산의 50% 정도가 손실되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통독 이후에야 구도심의 역사적 유물들의 복원이 일부나마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동독 시절 건축되었던 획일적인 조립식 주택들이 철거되었다.     


비록 역사적 건물들이 많이 소실되었지만 그라이프스발트에도 멋진 박물관과 극장들이 늘어서 있다. 박슈타인고딕 양식(Backsteingotik, 영어로는 브릭 고딕 양식)부터 근대적인 건축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자랑은 구도심의 시청사 앞의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이다. 시청사는 13세기에 지어진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건물이다. 그리고 마르크트 11(Markt 11)과 마르크트 13(Markt 13)으로 불리는 주택은 전형적인 중세 한자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바크슈타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그 옆으로 가면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미술관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구도심에서 돋보이는 것은 대학교 건물들이다. 물론 여느 독일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교회 건물도 있다. 대학교 건물들 옆에 있는 1263년에 지어진 성 니콜라이 대성전(Dom St. Nikolai)이 대표적이다. 지금 이 교회는 루터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도 1260년에 지어진 상트마리엔 성당(St. Marien)과 1280년에 지어진 상트야코비 성당(St. Jakobi)도 아직 건재하다. 시내에 있는 대학본부 건물은 1747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것이다. 그 주변으로 대학도서관, 강의실, 병원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베르톨드바이츠 광장(Berthold-Beitz-Platz)에 조성된 새 대학교 캠퍼스에는 주로 자연과학부와 의학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들도 근대 양식으로 지어져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학도서관 옆의 수목원(Arboretum)은 1763년에 세워진 것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에 속한다.   

  

항구도시임에도 불고하고 인구가 많지는 않다. 한때 독일 통일 무렵 이 도시의 인구는 68,000명에 이르렀으나 그 이후 이 도시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대학교 학생의 숫자는 반대로 늘었다. 그래서 다른 중소 대학도시와 마찬가지로 그라이프스발트 시의 평균 연령은 매우 낮다. 사실 대학교와 그 부속 병원이 이 도시의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대학도시인 것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대학교 연구소 센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산학협력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의약학 분야의 기업들이다. 항구도시답게 선박 건조 산업도 활발하다. 그러나 대형 선박이 아니라 요트가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 말고 그라이프스발트를 먹여 살리는 것은 관광이다. 우세돔섬(Usedom)과 뤼겐섬(Rügrn)에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 그리고 근처에는 국립공원도 3개나 있다. 시내에는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의 대가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작품이 늘어선 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1.5km에 걸쳐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이 도시의 중요한 볼거리이다.       



여기에서 독일 10대 명문 대학 도시의 순례를 마친다. 여기에 소개한 10개 대학교에 더하여 1402년에 세워진 뷔르츠부르크 대학교(Julius-Maximilians-Universität Würzburg)가 있다. 그러나 뷔르츠부르크는 이미 독일 낭만길에서 소개된 바가 있어서 여기에서는 생략한 것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는 28,00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고 교직원은 4,400명에 이른다. 그러나 뷔르츠부르크대학교는 1402년 설립 허가를 받았지만 개교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1582년에 율리우스 에흐터 폰 메스펠브룬(Julius Echter von Mespelbrunn, 1545-1617)에 의해 개교되었다. 그래서 대학교 이름에 율리우스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교명에 있는 막시밀리안은 바이에른 왕국의 초대 왕인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756-1825)에서 온 것이다. 뷔르츠부르크대학교는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낼 만큼 명망 있는 대학교이다. 현재 가톨릭신학부, 법학부, 의학부, 철학부, 인문학부, 생물학부, 화학-약학부, 수학-정보학부, 물리-천문학부, 경제학부의 10개 학부가 있다. 그러나 이 대학교의 강점은 심리학과, 생물학과, 화학과, 정보학과, 의학과, 약학과, 물리학과이다. 이 분야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 등록하면 된다.    

 

사실 독일의 대학교는 거의 다 국립대학교이기에 한국과 같은 극심한 대학교 서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독일 교육계에서도 경쟁을 통한 학교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대학교의 수준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수행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독일 대학교 가운데 영국의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대학교에 속하는 대학교는 뮌헨, 하이델베르크, 베를린, 튀빙엔 정도이다. 여기에는 소개가 안 된 뮌헨 공대(Technische Universität München) 아헨 공대(RWTH Aachen), 베를린의대(Charité-Universitätsmedizin Berlin)가 그 100대 대학교 목록에 들어있다. 여기에서 선정한 11대 독일 대학교는 학교 자체의 명성과 수준도 물론이지만 대학도시(Universitätsstadt)로서의 명성을 고려하여 정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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