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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Sep 28. 2020

가톨릭 성녀와 개신교 대학교가 조화를 이루는 마부르크

독일 10대 대학도시 시리즈


1140년 세워진 마부르크는 쾰른과 프라하의 무역로에 있는 도시로 성장했다. 1264년부터 1567년까지 헤센 방백국(Landgrafschaft Hessen)의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부르크는 1527년 설립된 마부르크대학교(Philipps-Universität Marburg)로 더 유명하였다. 30년전쟁 동안 마부르크는 문자 그대로 초토화되어 도시로서의 기능이 거의 마비될 정도였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재단 대학교인 마부르크대학교에서는 24,000여 명의 학생들이 16개 학부에서 공부하고 있다. 4,600명의 교직원이 여기에서 일하고 있다. 마부르크의 시민이 77,000명이니 문자 그대로 대학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부르크가 ‘별 볼일 없는’ 도시로 권력자들의 관심이 크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역사의 주변부에서 조용히 학문에만 몰두하는 데에는 이상적인 도시가 되었다. 란강(Lahn)이 남북으로 흐르며 도시를 동서로 갈라놓는다. 그 서안 쪽으로 대학 본부와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다. 마부르크라는 지명은 독일어로 경계라는 의미의 마르(Mar)에서 연유한 것이다. 중세에 튀링엔(Thüringen)의 방백이 통치하는 영토와 마인츠(Maiz)의 대주교가 통지하는 영토의 중간에 있는 도시라는 의미에서 마르(Mar)에 요새라는 의미의 부르크(burg)가 더해진 것이다. 마부르크는 역사적으로 큰 영고성쇠를 겪지 않았기에 시내의 모습도 수백 년의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명한 3대 건물로는 구대학건물(Alte Universität), 방백성(Landgrafenschloss), 엘리자베트성당(Elisabethkirche)이 있다. 모두 동네에서는  오버슈타트(Oberstadt)라고 부르는 구도심에 있다. 구대학건물 북쪽에 있는 구식물원(Alter Botanischer Garten)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엘리자베트성당이 나온다. 여기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가면 방백성이 나온다. 이 세 건축물은 삼각형을 이루며 구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교 건물도 구식물원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강 건너편에는 예술대학교가 있다.     



엘리자베트성당은 1235년에 순수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것을 그대로 간직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을 자랑하고 있다. 교회가 봉헌된 인물인 엘리자베트는 성경의 인물이 아니라  사망한 헝가리의 공주였던 엘리자베트 성녀(Elisabeth von Thüringen, 1207-1231)이다. 엘리자베트 성녀는 24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가난한 자들과 병든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그 자신도 병으로 사망하여 가톨릭만이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동시에 존경을 받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사실 마부르크대학교보다는 엘리자베트 성녀가 마부르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성녀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이니만큼 많은 이들이 이 교회를 찾아 순례한다. 중세의 전설이 그대로 건물의 형태로 남아 있는 이 도시에 온다면 이 성당은 반드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마부르크가 공식 문서에 언급된 것은 1139년이지만 엘리자베트 성녀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 명성이 제국 전체에 알려져 독일기사단(Deutscher Orden)이 직접 나서서 그를 기리를 성당을 짓기에 이른 것이다. 엘리자베트 성녀 덕분에 마부르크가 유명한 순례지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헤센 방백국의 중심지로서 번성한 것도 잠시 오토 1세가 분열되었던 이 지역을 통합한 이후 거주지로 마부르크보다는 카셀(Kassel)을 더 선호하게 되자 마부르크는 그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1509년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오른 필립 1세(Philipp I) 방백이 개신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데에 선봉에 서며 리그니츠대학교(1526)에 이어 1527년 7월 1일 두 번째 개신교 계열 대학교를 마부르크에 세운 것이 오늘날의 마부르크대학교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이 대학교의 정식 명칭이 Philipps-Universität Marburg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마부르크도 30년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1618년 시작된 30년전쟁은 처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결국은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 사이의 정치적 세력 다툼으로 변질되면서 30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의 대결이 벌어지는 가운데 오스트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도 참여하는 유럽판 세계대전이 되었다. 1629년과 1635년에 당사자들끼리 화해를 하고 전쟁을 종료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결렬되어 10여 년을 더 끈 다음에야 종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는 기근과 흑사병으로 초토화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 전쟁의 결과로 마부르크에 거점을 두었던 독일 기사단도 해체되었고 이는 마부르크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그러다가 1850년 카셀과 마부르크를 잇는 철도가 개설되고 1852년에는 프랑크푸르트까지 그 노선이 확장되면서 마부르크의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866년 헤센 선제후령이 프러시아에 통합되면서 마부르크는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도시 인구도 급격히 늘게 되었다. 학생수는 주민들보다 훨씬 더 많이 늘었다. 학교가 커지면서 주민들은 대학교 덕분에 먹고살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도시의 규모가 급팽창하면서 원래 란강 서쪽에 있던 구도심에 이어 강 동쪽으로도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강을 건너는 다리도 늘어났다. 13세기에 건설된 바이덴호이저다리(Weidenhäuser Brücke)에 더하여  1723년에는 엘리자베트다리(Elisabethbrücke), 1892년에는 슈첸풀다리(Schützenpfuhlbrücke)가 건설되었다. 



마부르크의 구도심(Oberstadt)이 오늘날의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었던 것은 1600년대 이후의 세간의 이 도시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 큰 역할을 했지만 22년간 마부르크의 시장을 지낸 드레흐슬러(Hanno Drechsler, 1931-2003)의 공이 크다. 그가 1970년부터 1992년까지 추진한 이른바 ‘구도시 재개발’(Altstadtsanierung)로 마부르크의 도심은 매력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도심의 마크트플라츠(marktplatz)의 중심에는 상트게오르크(St Georg)를 기념한 분수가 있다. 이 광장에 가보면 늘 젊은이들로 넘친다. 다른 중소 대학도시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젊음이 넘치는 거리는 희망을 준다. 여느 독일 도시와 마찬가지로 구시청사도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강을 따라 3번 아우토반을 타고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니더바이마르(Niederweimar)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호수 공원도 있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작은 마을 론하우젠(Ronhausen)에 주차하고 뒷산에 올라 프라우엔베르크 유적지(Frauenberg Ruine)까지 트랙킹을 하는 것도 자연을 즐기는 독일인들이 즐겨하는 여가 생활이다.   

  

다시 시내로 돌아오면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슐로쓰베르크(Schlossberg) 정상에 지어진 마부르크 방백성(Landgrafschloss Marburg)이다. 11세기에 지어진 이 성은 튜빙엔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건물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래된 건물도 최대한 활용하는 실용적인 독일 정신을 반영해서 말이다. 비록 마부르크 바이러스가 여기에서 처음 발견되어 좋지 않은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딕 양식의 건물에 어린 역사를 회상하며 독일의 중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이 도시는 반드시 머물러 볼만하다.      



나치 시절에 마부르크에서도 유대인 탄압이 있었지만 중요한 군사시설이 없었기에 연합군의 공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 덕분에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중앙역과 그 주변은 폭격을 받아 나중에 새로운 주택가가 들어서게 되었다. 오래전부터와 마찬가지로 마부르크는 여전히 대학교가 먹여 살리는 도시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매우 ‘친절한’ 도시가 되었다. 비록 작은 동네의 대학교이지만 이 대학교와 연관된 노벨상 수상자가 11명에 이른다. 마부르크의 경제를 살리는 대학교에서 시민들의 대우를 받는 학생으로 공부하는 맛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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