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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가톨릭교회의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나?

'아줌마 부대'의 한국의 교회만 석기시대에 놓여 있다.

by Francis Lee

독일 가톨릭주교회의(DBK)와 독일가톨릭중앙협회(ZDK)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노드협의회(Synodaler Ausschuss)가 드디어 그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23년 11월 16일 발표된 보도 자료에 따르면 시노드협의회는 주교 27명, 평신도 27명, 시노드협의회가 선출한 회원 20명으로 이루어진 협의체로 운영된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권력자로 군림해 온 주교가 독일 가톨릭교회 운영에서 평신도와 동등한 권리를 지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평신도가 주교와 맞먹는 권리를 행사할 기틀을 마련했다는 소리다. 권위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가톨릭의 특성에서 이는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이러한 변화의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폭행 사건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부 신부의 일탈로 처리하려던 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독립 수사 기관에 의뢰한 결과 거대한 추문으로 번졌다. 단순히 일부가 아닌 엄청난 숫자의 신부 심지어 주교가 성폭행과 성추행을 자행했고 가톨릭교회가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한 ‘범죄’가 드러난 것이다. 사회적 손가락질은 곧바로 신자 수 감소로 이어졌다. 해마다 수십만 명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도 별반 다름없다. 개신교 목사들도 성추행 성폭행을 자행했고, 교회가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였다. 한 마디로 기독교 교회가 심각하게 썩은 것이다. 이에 더해서 주교들의 방만한 삶도 문제가 되었다. 마치 과거 영주처럼 호화로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편히 살고 있는 모습이 ‘가난한’ 신자들의 눈에 참을 수 없는 짓이 된 것이다. 그래서 분노한 신자들의 원성이 바티칸에까지 이르렀고 교황이 관련 주교를 처벌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다시 말해서 시노드협의회가 발족한 것은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조치라기보다는 교회의 집단적 범죄 행위에 대한 사회적 분노와 제재, 그리고 무엇보다 급격한 신자 수 감소라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생존 전략에서 나온 위기 대처인 것이다. 이 협의체에서 논의하고 결정하는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동성애 신부의 활동에 대한 터부를 없애고 이들의 삶을 존중하기

- [교회 문제에 대한] 공동 논의와 결정

- 신자의 교회 안에서의 기본권 보장 논의

- 부부애 관련 교회 가르침에 대한 논의

- 교회 내 여성 학대 대책 논의

- [사제의] 직권 남용 방지 및 수사를 위한 옴부즈만 사무국 설치 운영

- 성직자 중심주의의 극복을 위한 다원적 교계 제도의 수립

- 여성의 교회와 신학계에서의 존재감과 리더십 [확대]

- [교회 운영의] 전문화

- 책임자[처벌]의 기본 원칙 [확립]

- [성직자 범죄 피해에 대한] 법적 구제 보장

- 교회 교육 기관과 사목 기관에서의 성교육 지원 및 성교육 개념 홍보


이 협의회에서 다룰 문제는 한 마디로 교회의 전횡을 막고 교회의 도덕적, 법적 타락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소리다. 이러한 독일 가톨릭교회의 다소 과격해 보이는 조치는 가톨릭의 본부인 바티칸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래서 이러한 입장을 밝히는 공식 서한을 교황청 명의로 독일 가톨릭교회에 전달하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독일 가톨릭교회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남성중심주의라는 근본적인 틀을 깨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사제의 아동 성폭행과 성추행은 대부분 어린 남자아이를 상대로 이루어졌다. 물론 여자아이와 성인 여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과 성관계 사례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남자아이에 대한 성폭행이었다. 그만큼 가톨릭교회 안에 동성애자가 넘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동성애자 신부를 교회에서 쫓아낸다면 교회를 운영한 사람이 더욱 줄어든다. 2022년 기준으로 독일의 가톨릭 신자 숫자는 20,937,590명이다. 이 가운데 미사에 참석하는 비율은 5.7%에 불과하다. 100명 가운데 6명도 안 되는 사람이 일요일에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린다는 말이다. 게다가 2022년 교회를 나간 신자 숫자가 522,821명이다. 현재 독일에 본당은 9,624개이고 성당 건물은 24,000개 있다. 말하자면 일요일 하루 종일 해봐야 1개 성당 평균으로 50명이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 큰 성당 건물에 일요일 미사가 3번 있다고 한다면 한번 미사에 20명도 안 되는 신자가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장사가 안된다. 그래서 독일 가톨릭교회는 망해가고 있다. 더구나 신부는 11,987명에 불과하다. 1997년 17,931명에 비해 33%나 줄어들었다. 게다가 2022/2023년 새로 신부가 될 사람의 숫자는 48명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없다. 독일의 교구가 27개인데 한 교구에 2명도 안 되는 신부가 나온다는 것이다. 2016년만 해도 103명이었다. 그러나 6년 만에 반토막이 난 것이다. 독일의 출산율에 비해 이루 말 할 수 없이 열악한 수준이다. 기독교 교회의 도덕적, 법적 타락과 사회적 가치의 하락이 부러온 참사다. 독일 개신교라고 나을 것도 없다. 독일 개신교도 해마다 40만 명 가까이 되는 신자가 떠나간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가톨릭교회는 신부들이 노령으로 은퇴하고 나면 교회를 운영할 성직자가 남아나지 않게 된다. 실제로 현재 독일의 성당은 신부가 없어서 신자들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곳에 부지기수다. 주로 그 성당에 오래 다닌 할머니 신자가 주도한다. 이런 상황이니 독일 가톨릭교회는 동성애자 신부고 아니고를 가릴 처지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교황청이 명령한 대로 여자라고 강론하지 못하게 할 처지도 아닌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 바로 독일 가톨릭교회다. 착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독일 가톨릭교회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아직은 배부르다. 신부도 넉넉하여 서울이나 수원 같은 ‘부자’ 교구는 보좌 신부가 넘쳐난다. 그리고 교회 운영에 신자가 신부와 맞먹으면서 관여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까? 그리고 한국 가톨릭교회에는 사제의 아동 성추행과 성폭행이 없을까? 그리고 가톨릭 성직자의 부정부패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다만 가려져 있고 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패한 집단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 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 독일 가톨릭교회처럼 비리가 드러나고 신자들의 탈출 러시가 이루어지고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줄어들면 저절로 반성하고 저절로 신자들의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과연 언제가 될까?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이미 한국의 신자들도 미사 참석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고 신부가 되겠다는 남자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여 변하지 않는 조직은 반드시 무너진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집단은 반드시 소멸한다. 아니 이미 소멸하고 있는데 눈에 잘 뜨이지 않을 뿐이다. 독일 가톨릭교회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기회를 이미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조직과 마찬가지로 개인도 자신의 구석에 몰리기 전에 ‘회개’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흔히 ‘바닥을 쳐야만’ 새 새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기독교가 변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릴 때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사실 유럽의 기독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약 5,500만 명이 죽었다. 이는 직접적 피해자이고 굶주림과 병으로 죽은 사람 약 3,000만 명과 확인이 불가능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약 1억 명이 죽었다. 난민과 부상자를 추가하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신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인간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거나 다쳤는데 교회는 무엇을 했나?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전쟁을 부추겼지, 말린 일이 없었다. 독일의 교회는 독일 이기라고 기도했고 프랑스 교회는 프랑스가 이기라고 기도했다. 탱크와 무기에 축복했다. ‘적’을 많이 죽이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총을 쏘는 자도 총알에 맞는 자도 다 기독교인이었다. 그래도 기독교는 이 전쟁을 말리지 않았다.


심지어 독일 가톨릭교회는 히틀러에게 동조하였다. 그리고 전쟁의 희생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가톨릭교회의 재산과 신부를 비롯한 식구만 감싸기에 바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아무 교회도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면서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다가 20세기말에 들어와서야 반성하는 빛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위선적인 기독교 교회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절망했다. 그런 와중에 신부의 아동 성폭행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미 신부가 내연의 처와 자식을 두고 살면서도 성직 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회도 신부가 혼인 신고만 안 하면 그냥 눈감아 주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썩은 교회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면서 사법 당국이 교회를 조사하고 ‘범인’을 감옥에 보내는 일이 시작되자 비로소 교회가 ‘참회’와 ‘반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예수가 다시 와서 이런 교회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했을까?

유럽은 사실상 기독교의 발상지다. 예수가 비록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태어나 활동하고 그곳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실질적으로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의 직제자가 아닌 로마 시민 바울이 유럽 땅에 세운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톨릭교회의 본부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였고 개신교도 유럽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유럽은 기독교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종주국의 기독교가 이제 소멸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 소멸을 막기 위해 독일 기독교, 특히 가톨릭교회가 진화를 이제 막 시작했다. 과연 얼마나 변할지, 그리고 과연 독일 교회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바람을 일으킬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로마 교황청의 방해 공작은 더욱 치열해지겠지만 이미 대세는 교회의 몰락이니 독일 가톨릭교회가 시작한 제2의 종교개혁은 역사의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한국 교회는 아직도 석기시대에 머물고 있으니 현재 유럽, 특히 독일에서 벌어지는 일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일단 한국 교회는 목사나 신부가 하나님 하느님이라고 굳세게 믿는 ‘아줌마 부대’가 든든히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아줌마들이 늙어서 교회에 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다가 죽어도 또 새로운 '아줌마 부대'가 충원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더 갈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정신에 무지한 종교가 살아남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는 역사적 진실을 알 날이 곧 올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인간 사회가 바뀌고 종교도 바뀐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종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기독교라고 별수가 없다. 그 진리를 깨우친 교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교회는 폐허가 되어 유적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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