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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Lee Mar 07. 2024

트럼프의 교훈을 누가 배울까?

한국에 맞는 한국형  트럼프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트럼프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미국 언론도 이제는 체념하고 트럼프 2기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America has never had a presumptive nominee like Donald Trump” 오늘 CNN 메인 뉴스의 제목이다. 한마디로 게임 끝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가 트럼프 2.0에 대비해 부지런히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런데 한국만 너무 조용하다. 바이든 앞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젖히던 윤 대통령은 지방 순시를 핑계로 실질적인 선거 운동에만 골몰하는 사이에 세계정세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데도 과연 이렇게 대책 없이 버텨도 될까? 혹시 트럼프가 좋아하는 노래를 윤 대통령이 몰래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는 생각까지 든다. 누군가 옆에서 탬버린까지 흔들어 대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이번 주 초에 트럼프가 슈퍼 화요일 예비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올해 열리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면 미국의 제22대(1884)와 24대(1892) 대통령을 역임한 클리브랜드에 뒤를 이어 연임을 하지 않고도 두 번 대통령에 당선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도대체 미국 국민은 왜 트럼프에 이처럼 열광하는 것인가? 한국에서는 그저 트럼프가 괴짜로만 알려져 있다. 게다가 엄청난 부자여서 자기 멋대로 살면서 결혼도 여러 번 하고 그것도 화려한 모델들하고 말이다. 워싱턴 정계의 이단아로 좌충우돌하면서 백인 노동자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까지 오른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트럼프는 매우 뛰어난 지략가이고 정치적 술수를 아는 동물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그가 인기를 얻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물론 미국 국민의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이다. 많은 미국인은 이른바 Washington establishment, 곧 워싱턴의 기득권층에 대한 극도의 환멸을 느끼고 있다. (참조, Morris P. Fiorina, Congress: Keystone of the Washington Establishment, Yale University Press, 1989) 워싱턴 기득권층은 일반적으로 미국의 정치 중심 도시인 워싱턴에서 강력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정치·경제적 의사 결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 정부, 관료 엘리트를 의미한다. 이 기득권층에는 다선의원, 고위 정부 관료, 로비스트, 특별 이익 단체, 영향력 있는 언론인은 물론 워싱턴 D.C.에서 인맥을 형성하고 권력 측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이 포함된다. 미국 국민은 이 기득권층이 일반 국민의 이익은 전혀 무시하고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의 이익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곧 이런 기득권층이 밀실 정치, 엘리트주의, 정실주의 문화를 조장하여 국민 다수가 아니라 선택된 극소수의 이익을 위한 정책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세력이 다름 아닌 민주당 안에 똬리를 틀고 앉은 지 오래다. 


한국에서는 흔히 미국 민주당이 한국 민주당처럼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는 당이고 공화당이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는 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힐러리 클린턴처럼 무늬만 서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워싱턴 기득권층의 핵심에 자리하고 많은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의 집합소가 바로 미국의 민주당이다. 노예해방을 추구한 링컨 대통령은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 소속이었다. 민주당은 원래 노예해방을 강력히 반대하던 당이다. 1828년 세워진 미국 민주당은 원래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농본주의, 노예제도, 팽창주의를 옹호한 극보수 정당이었다. 그러다가 1932년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부터 진보 성향으로 색깔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이른바 ‘제3의 길’로 위장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선회하였다. 민주당이 서민을 떠난 결정적인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더 이상 1960년대의 사회적 소수를 대표하던 진보 정당이 아니다. 원래대로 보수색을 되찾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미국 국민은 워싱턴의 기득권층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모두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안주하며 사익만 추구하는 세력이 되어버렸다고 여기게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바로 트럼프는 이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하였기에 이른바 anti-establishment, 곧 반 기득권층의 아이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트럼프는 미국에서 부동산 투기로 대성공을 거둔 재벌 집안 출신으로 그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기득권층에 속하고 있음에도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워싱턴 기득권층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지난 2016년 대선 때 미국의 거의 모든 거대 언론은 전통적인 워싱턴 기득권층에 속하는 힐러리 트럼프를 무조건 지지하면서 트럼프 죽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거대 언론의 이익이 침해받을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CNN과 같은 언론은 그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워싱턴 기득권층이 트럼프를 공격할수록 일반 미국 시민의 트럼프에 대한 애정은 더욱 강화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트럼프가 인기를 얻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민주당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다. 바이든이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미국 국민은 경제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심리적 불안을 파고든 트럼프는 일자리 창출,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무역 협정 재협상 카드를 내세우면서 미국이 세계화와 경제 변화로 인해 뒤처졌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고 있어도 그 수익은 모조리 기득권층이 가져가 버리는 현실을 보고 미국 국민은 바이든 정부에 대한 분노만 키우게 되었다.     


경제 못지않은 요소가 트럼프가 내세우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이다. 트럼프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America First’나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는 세계 경찰로 돈을 낭비하는 바이든 정부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하고 미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자 하는 미국 국민의 환심을 사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겨우 4살 어리지만 늙은 민주당 대통령보다 훨씬 젊고 강한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미국 국민은 그에게서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아버지의 이미지를 찾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힘들 때 자기를 잘 이끌어 줄 강한 아버지와 같은 인물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트럼프가 보여주는 자신감 있는 리더십 스타일을 존경하며 그가 세계에 널려 있는 ‘미국의 적들’에 맞서 강력하게 싸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가 보여주는 사회·문화적 보수주의가 미국 국민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이민, 총기 권리, 전통적 가치와 같은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견해는 많은 보수적인 미국인, 특히 앵글로·색슨 기독교 보수주의자의 신념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3명의 대법관을 포함한 보수적인 판사를 임명하여 낙태, 종교의 자유, 총기 권리와 같은 문제에서 보수적 유권자들의 지지를 완전히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주의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트럼프의 ‘거친’ 의사소통 스타일, 소셜 미디어의 빈번한 사용, 언론의 관심을 끄는 능력은 기득권층에 속하는 닳고 닳은 민주당 정치가와 대형 언론 매체에서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워싱턴 기득권층이 애용하는 political correctness, 곧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역겨움을 알아챈 트럼프가 이에 도전하고 민감한 주제에 대해 아무 데서나 직설적으로 발언하는 것에 미국 국민은 열광하고 있다. 특히 주류 언론 매체를 '가짜 뉴스' 생산공장으로 비난하는 트럼프의 공격은 전통적인 언론 매체를 불신하는 미국 국민의 지지도 끌어냈다. 이렇게 하여 트럼프는 보수층만이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의 지지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사실 워싱턴 기득권층이 말로는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지만, 밀실에서는 자기들끼리 이익만 추구하는 위선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기득권층에게 염증을 느끼는 미국 국민에게 트럼프는 최선의 대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미국 국민은 기득권층에 분노하여 단순히 감정 배설을 위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트럼프가 실천한 여러 가지 탁월한 전략이 먹혀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내달에 있을 총선에서 과연 누가 트럼프와 같은 역량을 발휘하게 될까? 사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기득권을 누리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였다. 윤석열의 대선 후보가 지녀야 할 자질 문제가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국민이 이른바 ‘묻지 마!’ 지지로 0.73%p라는 기적적인 표 차로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어마어마한 것이 되어버렸고 아직도 한국 사회가 그 질곡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위기, 사회적 분열, 국제정치적 위기와 같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윤 대통령은 오로지 ‘김건희 리스크’ 차단에만 올인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윤 대통령을 누구도 말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총선은 야당이 ‘정권 심판’, 더 나아가 ‘정권 타도’라는 구호로 승부를 걸 수 있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토착 왜구’와 ‘빨갱이’로 매도할 것이고, 결국 한국은 다시 한번 극단적인 분열 양상을 보일 것이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도 양 진영의 화합과 상대방의 인정은 힘들 것이다. 누가 이기든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행이 이어진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진영에서 트럼프와 같은 전략을 들고 나올 ‘영리한’ 후보가 과연 있을까? 정치 개혁보다는 해방 전후에 시작한 사회적 이데올로기 투쟁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현재 한국의 정치판을 볼 때 그런 기대는 과욕처럼 느껴질 뿐이다.  정치적 당리당략을 위한 보수주의가 아니라 국익을 위한 참다운 보수주의 정당과 정치가가 출현해야만 나라의 앞길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의힘이나 보수 언론이나 하나 같이 '여의도 establishment' 체제의 공고화에만 몰두할 뿐 국민이나 국익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현실을 타파할 방법을 알고 있는 '한국형 트럼프'가 나오기만 기대할 뿐이다. 그래서 한국에 맞는 한국적 보수주의가 지금 날뛰고 있는 가짜 보수주의를 척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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