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서남북 10대 요리
소시지와 맥주를 충분히 맛본 다음이니 다시 요리로 돌아가 보자. 린더롤라데(Rinderroulade)는 말 그대로 소고기를 말아서 속에 베이컨과 양파 그리고 새콤한 초절임 오이를 넣어 말아서 찐 다음에 먹는 요리이다. 특히 겨울에 따끈하게 먹기 좋은 음식이다. 이 음식은 주로 구동독과 동구 지역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굴라쉬와 더불어 독일 사람들이 좋아한다. 현재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 지역에 있는 실레지아(Silesia) 지방의 토속 음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이 이제는 독일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현재 폴란드와 체코로 나윈 이 실레지아 지역은 유럽 역사의 비극을 직접 체험한 곳이다. 폴란드 땅이었다가 보헤미아 왕국으로 넘어가고 다시 프러시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리고 1871년에는 독일 제국에 귀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과 폴란드에 분할되었다가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폴란드 땅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다문화적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음식도 폴란드, 체코, 독일의 고유 음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요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원래 이 지역은 게르만 민족 대이동기에 슬라브족이 오더(Oder) 강변에 정착해 살던 곳이다. 그러다가 9세기에 모라비아 제국이 여기를 점령하면서 긴 역사적 시련이 시작된다. 990년에는 폴란드 왕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여 오랫동안 통치하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13세기 초반부터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그러면서 많은 독일 주민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그 와중에 몽고의 침략을 받아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1327년에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보헤미아 왕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폴란드와 헝가리가 잠깐 점령한 다음 1526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가 된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16세기에는 개신교 세력이 득세하다가 1620년의 전투로 다시 가톨릭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땅이 된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1742년에는 프러시아 왕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1871년에 독일제국으로 다시 넘어가게 된다. 이 지역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철과 석탄이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민족주의가 근세 이후 난공불락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지만 어느 편이 되었든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니 음식 문화는 계속 발달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가면서 여기서 먹던 음식을 자기 고향에서도 찾게 되니 널리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이제는 거의 독일 토속 음식으로 굳어진 린더롤라데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 이름이 소고기를 의미하는 린더(Rinder)가 들어가는 린더롤라덴이기는 하여도 처음부터 소고기만을 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레지아와 같은 중부 유럽에 흔한 사슴 고기나 돼지고기를 원래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는 돼지고기로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부드러운 송아지 고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일단 고기를 쉽게 말 수 있도록 얇게 써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허벅지 살을 사용하는데 저렴한 부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요리는 원래 서민들이 즐기던 음식이었다. 그것도 특히 겨울 주일에 성당에 다녀온 후 저녁에 가족이 모두 식탁에 모여 앉아 먹곤 하였다. 가난하지만 정겨운 가족들의 저녁 식사 정경을 떠올려보면 된다. 더 힘든 가정에서는 주로 성탄절을 기념하여 먹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간절히 주님이 또 태어나시기만을 기다렸을지 상상이 간다.
독일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소고기 부위는 복잡한 요리 과정 없이 그냥 구워만 먹어도 맛이 난다. 귀족들은 소의 좋은 부위로 만든 고기 덩어리를 살짝 구워 먹어도 좋았으리라. 사실 조리 과정이 복잡한 것은 그 고기 자체만으로는 맛이 안 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불고기도 질긴 부위를 맛나게 먹으려고 하다 보니 발달한 음식 아니던가? 소고기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고급으로 치는 것은 일본 고베 지방에서 나오는 와규다. 독일에서 1kg에 거의 40만 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이런 고기는 별 조리가 필요 없이 그저 숯불에 구워 먹어도 그 육즙이 최고의 양념이 된다.
그래도 다시 린더롤라데로 돌아가자. 조리를 잘하면 1kg에 백만 원하는 것보다 더 맛이 난다. 그런 마음으로 조리를 시작해 보자. 일단 소고기를 얇게 써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안에 베이컨과 볶은 양파 그리고 무엇보다 초에 절인 오이를 썰어 넣는다. 이 오이는 한국에서 먹는 피클과는 다르다. 여기에 후추와 소금으로 간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콤한 것을 좋아한다면 고기 안쪽에 겨자를 바르면 된다. 그러고 나서 마치 한국에서 김밥을 말듯이 재료를 넣어 돌돌 말아서 마지막에는 이쑤시개 정도의 크기의 막대 같은 것으로 고정한다. 더 우아한 방법은 굵은 실로 칭칭 감는 것이다. 풀어지면 안 되니 말이다. 이제 정작 중요한 소스를 만들 차례이다. 버터, 토마토 페이스트, 붉은 포도주, 설탕, 녹말이 필요하다. 여기에 적당한 크기로 썬 당근을 사용한다.
실로 잘 묶은 고기 덩어리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강한 불에 10분 정도 굽는다. 익은 고기 덩어리를 꺼내고 나서 기름을 다시 넣고 깍두기 모양으로 썬 당근과 양파를 넣고 중불에 5분 정도 볶는다. 그런 다음 적포도주를 넣고 약간 졸인 다음 물을 적당량 넣고 끓인다. 이렇게 만든 소스에 다시 고기 덩어리를 넣고 2시간 정도 약한 불에 마냥 끓인다. 다시 고깃덩어리를 꺼내고 국물에 후추, 소금, 설탕으로 맛을 낸다. 그리고 녹말과 물을 붓고 녹말이 다 녹을 때까지 젓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소스를 끓인다. 그런 다음 고기를 다시 소스에 넣고 먹으면 된다. 바이라게로는 슈페츨레가 제격이다. 슈페츨레에 소스를 끼얹어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여기에 붉은 양배추 절인 것을 즐겨 같이 먹는다. 물론 감자 요리도 당연히 함께 먹는다.
소고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귀한 음식 재료였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소를 잡으면 뿔을 빼고 다 먹는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소를 기르는 것은 매우 심각한 에너지 낭비이다. 소 한 마리를 기르기 위하여 소비되는 곡물을 바로 식량으로 사용할 경우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소고기 1인분을 생산할 곡물로 24인분의 식사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가 환경 파괴에 끼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목축업자들의 편에선 학자들은 이를 일일이 반박한다. 풀은 어차피 인간이 먹지 못하고 곡물도 아주 적은 양만 소 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풀은 농사짓기 힘든 땅에서 나는 것이니 오히려 방목은 자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대기업이 소고기를 조직적으로 생산하는 남미에서는 풀밭을 만들기 위하여 삼림을 파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업자들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경을 생각해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소고기가 맛이 있는 것을 어쩌랴. 그렇다. 소고기는 생산 단가가 높은 식재료이기도 하지만 맛이 좋아서 비싼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소를 구울 때 나는 냄새는 신의 마음도 흔들 것이라는 확신으로 제사 때 신에게 소를 잡아 바친 것이다. 그리고 그 귀한 소고기를 이런저런 핑계로 사제들과 귀족들만 먹었다. 특히 인도에서. 그렇다, 지금은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 하지만 과거 인도에서는 사제와 귀족들이 제물로 바친 소를 먹었다. 그러나 농경문화가 정착하고 소가 중요한 농사 도구가 되면서 소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소 숭배 사상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제사 때 소기름을 태우면서 신이 그 냄새를 맡고 기뻐하리라고 확신했다. 그 정도로 마블링이 잘 된 소고기를 구워 먹을 때의 맛과 냄새는 인간을 기쁨으로 몰아가는 탁월한 특성이 있다. 그러니 뿔 말고는 다 먹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니 린더롤라데도 영원히 인간의 식탁에 올라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bon appe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