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성경 봉쇄와 종교개혁기의 박해는 예수 정신에 어긋난다
기독교의 시작은 한마디로 진리인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육화 된 사건이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요 1,1)라고 선언하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 1,14)고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의 그리스어인 로고스(λόγος)가 원래 ‘말’이라는 뜻을 가진 일반 명사로, 하늘의 언어가 지상에서 소통이 가능한 형태인 인간의 언어로 드러난 신적 계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의 신비한 뜻을 인간이 알아듣게 하도록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지상에 내려온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이러한 소통 가능한 개방된 ‘말씀’을 점차 폐쇄적인 자기들만의 언어로 만드는 죄를 저질렀다. 이렇게 신의 말씀이 교회 제도의 언어 속에 봉인되면서, 언어는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 소수 성직자들이 독점한 권력의 장치로 변질되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과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은 본래 저술 당시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교차점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예로니모(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가 4세기말에 번역한 Vulgata Latina, 곧 라틴어 성경을 유일한 공인본으로 채택하였다. 예로니모의 번역 자체는 원래 문자 그대로 ‘평민의 언어’(vulgaris lingua)로 성경을 읽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 ‘대중을 위한 성경’이 오히려 교회의 독점적 권위의 근거로 변한 데 있었다. 예로니모가 살던 시대의 라틴어는 이미 지배계급의 언어였고, 시간이 흐르며 교회 행정과 신학의 언어로 제도화되었다. 결국 Vulgata는 그 이름과는 달리 ‘평민의 성경’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층인 성직자의 성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중세 교회는 라틴어를 단순한 의례 언어가 아니라 신적 언어로 신성화했다. 신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로 말씀하셨지만, 교회는 라틴어로만 그분의 뜻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이런 언어의 신성화는 곧 해석의 독점으로 이어졌다. 곧 신학적 논의, 교리 형성과 교회의 전례가 모두 라틴어로 진행되었고, 평신도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른바 ‘비의적 신비’ 앞에 그저 침묵해야 했다.
13세기에 들어서면서 개최된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는 교회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이른바 비공식적인 성경 번역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공의회 문헌은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거나, 사제의 인가 없이 읽는 자는 교회법적 처벌을 받는다.”라고 규정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교회의 논리는 단순했다. 성경이 ‘무식한 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논리는 본질적으로 교회의 독단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장치였다. 그래서 교회의 판단만이 ‘정통’이 될 수 있었고, 다른 모든 해석은 ‘이단’으로 낙인찍혔다.
이 시기 라틴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신앙적 경계선이었다. 평신도는 라틴어 미사를 ‘듣기만’ 했다. 성경은 낭독되었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일반 신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그것도 신부가 신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진행되는 미사가 어찌 신앙 공동체의 화합의 장이 될 수 있겠는가? 초대 교회의 예수 공동체는 식탁을 가운데 두고 모든 산자들이 둘러앉아 예수의 어록을 낭독하고 함께 찬양하고 노래하며 예수를 기억하는 ‘기념식’을 거행했다. 그 자리에서 예수가 당부한 대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시고 이 예식이 끝난 다음에는 각자 싸 온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그야말로 ecclesia, 곧 신앙의 공동체가 나누는 ‘잔치’였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잔치를 망쳐버렸다. 특히 모두가 알아듣는 언어로 진행된 신의 말씀 자체인 예수의 언행에 대한 회고는 사라지면서 신의 말씀은 신비의 장막 속에 가려졌고, 그 장막의 열쇠는 오직 성직자만이 쥐고 있었다. 교회의 교만은 바로 이 언어의 봉인 속에서 완성되었다. 언어를 통제하는 자가 진리를 통제했고, 진리를 통제하는 자가 구원을 통제했다. 예수를 사랑하고 믿는 신자는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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