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의 진실

중세 교회의 대표적 탐욕 구조

by Francis Lee

중세 교회의 역사에서 탐욕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은, 거룩함이 더 이상 영혼의 상태가 아니라 재정의 척도로 환산되던 때였다. 신의 은총이 거래의 대상으로, 성직이 권력의 매매품으로 전락했을 때, 교회는 이미 복음의 정신에서 돌이킬 수 없는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고백하던 사도들의 언어는 “면죄와 축복은 금전으로 가능하다”는 사제들의 주문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이 바로 성직매매와 면죄부(Indulgentia) 판매의 구조였다. 전자는 신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돈으로 사고파는 제도였고, 후자는 신의 용서를 일정 금액에 환산해 파는 영적 시장이었다. 둘 다 “거룩한 것의 세속화”라는 공통된 죄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도덕적 타락이나 일부 사제의 부패가 아니었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교회 제도 그 자체가 탐욕의 구조로 재편된 결과였다. 교황권이 신적 권위를 자처하고 세속권을 통제하던 시기, 교회의 재정은 하나의 제국적 시스템이 되었다. 신의 이름으로 세금을 걷고, 구원을 명목으로 금전을 징수하며, 성직의 자리를 “거룩한 투자 상품”으로 만들었다. 신의 은총은 거저 주는 사랑이 아니라, “하늘의 시장경제” 속에서 거래되던 상품이었다.


원래 예수의 복음은 본질적으로 가난의 영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말씀은 탐욕의 신학적 경고였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사유 재산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다. 사도행전 4장에 따르면, 그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으며,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바로 이 정신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기독교 에클레시아, 곧 교회의 원형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그 순수한 공동체적 영성은 제국의 행정조직 속에 편입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교회는 더 이상 순례자의 집단이 아니라, 토지를 보유하고 조세를 면제받는 귀족적 기관이 되었다. 주교좌성당은 행정 중심지로 변했고, 성직은 영적 소명보다 정치적 출세의 통로가 되었다. 이미 이때부터 “성직의 세습”과 “주교직의 매매”가 서서히 제도화되었다. 이 변화의 신학적 정당화는 놀랍도록 교묘했다. 교회는 “신의 나라가 땅에서도 확장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토지와 재산의 축적을 신적 사명으로 포장했다. 봉헌과 기부는 구원의 조건이 되었고, 성직은 “신의 사업을 경영하는 직업”으로 변모했다. 신은 점차 마치 “신성한 회계사”처럼 계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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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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