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런저런 마음의 아픔을 겪으며 이전보다 성숙해진 자신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요? 물론 모든 아픔이 존재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픔의 강도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은 아픔을 일으킨 대상 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갖게 합니다. 아픔에 잠식당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보다 성숙하게 하는 아픔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언제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전과 관계를 열어 갑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게 하며, 자신을 행복하게 하며, 강한 욕망을 갖게 하는 것 일수록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여 가꾸어 나아갑니다. 노력, 정성, 성실, 간절함의 덕목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필연적이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투입된 에너지는 어느 순간 그만큼의 피드백을 요하는 때에 다다르거나, 투입한 에너지만큼의 피드백이 사라지는 때를 맞이합니다. 도전의 결과가 결정되거나, 관계의 변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결코 내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꼭 따라오는 것은 아니며, 굳건한 관계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순식간에 끝나 버립니다. 자신이 쏟아부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하고, 번민합니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한 아픔에 허덕입니다. 제제의 아픔 또한 이러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준 사람이기에 아버지로 여기고 싶어 했던 뽀르뚜까의 죽음으로 제제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제제에게 아픔만이 남겨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뽀르뚜까를 만나기 전 제제는 자기혐오로 자존감이 땅에 떨어진 아이였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신은 말썽만 일으키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지만, 뽀르뚜까를 만난 후 제제는 점점 바뀌어 갑니다. 제제는 뽀르뚜까 아저씨의 친절과 배려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족이 없는 뽀르뚜까는 제제를 통해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선물 받습니다. 제제는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갑니다. 자신을 병들게 했던 분노와 자기혐오는 어느새 사라지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이 꽃피웠습니다.
아픔 그 자체는 결코 존재의 성숙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관계 또는 일에 성의, 성심, 정성을 다했을 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거나 성숙해집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는 아픔은 우리에게 어떤 성숙함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노력 이상의 요행을 바라거나, 별다른 노력 없이 결과만 취하려거나, 목표와 엇나간 노력으로 발생한 아픔은 원한과 분노의 불씨입니다. 만일나의 아픔이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다면,그 과정을 되새기고 반추해야 합니다.그래야만 원망과 자책으로의 후퇴가 아닌, 미약한 일보의 전진이라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주체가 쏟은 노력과 정성으로 진일보하여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바라 왔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 자신을 보다 겸허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아픔을 통해 성숙해지는 성숙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