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들의 생애 ]
나에게는 두 분의 아버지가 있다. 한 분은 나를 낳아주신 생부, 다른 한 분은 나를 중학교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양육해주신 의부이다. 두 분은 한때 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90년대 후반부터 사채업을 하였고, 2000년대 초중반 사채업의 부흥으로 수백억 대의 자산가가 되었다. 평창동에 있는 저택에 살며 소위 상위 몇 퍼센트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피와 한이 서린 돈들은 아버지를 결국 멸하였고 불과 5년 만에 그 많은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오다 결국 빚더미에 올라 사기 혐의로 피소 되었다. 친부는 현재 수도권 변두리에서 자그마한 횟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의부께서는 30대 초중반부터 근래까지 어머니와 함께 요식업을 하셨다. 크게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부족한 것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살아오셨다. 하지만 사업과는 거리가 먼 한량같은 성격으로 인해 치열한 자영업 전선에서 패배하였고, 결국은 회복하기 힘든 실패로 주저앉아 매일을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취하여 계단에서 굴러 넘어져 척추 신경이 끊어지는 사고로 현재는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 이(利)와 해(害)의 대칭성 ]
장자가 밤나무밭 울타리 안을 거닐다가 문득 한 마리의 이상한 까치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까치는 장자의 이마에 닿았다가 밤나무 가지에 앉았다. 장자는 “저건 대체 무슨 새일까? 날개는 큰데 높이 날지 못하고 눈은 크나 보지 못하다니!” 하고 말한 뒤 아랫도리를 걷어 올리고 재빨리 다가가 활을 쥐고 그 새를 쏘려 했다. 그러다 문득 보니 매미 한 마리가 나무에 붙어 시원한 그늘에 제 몸을 잊은 듯 울고 있다. 그리고 바로 곁에는 사마귀 한 마리가 나뭇잎 그늘에 숨어서 이 매미를 잡으려고 정신이 팔려 자신의 몸을 잊고 있다. 장자는 이 꼴을 보고 깜짝 놀라서 “아, 모든 사물이란 본래 서로 해를 끼치고 이(利)와 해(害)는 서로를 불러들이고 있는 거구나!” 하고 말한 뒤 활을 내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 장자(산목 8절) -
그늘에서 쉬고 있던 매미는 사마귀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놓였고, 매미를 노리던 사마귀는 까치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놓였고, 사마귀를 노리던 까치는 사람에게 사냥당할 위기에 놓였다. 나를 생하는 이로운 것의 이면에는 나를 해하는 해로움 또한 숨어 있다는 장자의 철학이다.
행운과 불행은 서로를 불러들인다는 이야기에 문득 두 아버지의 인생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성공과 돈에 눈이 멀었던 친부는 탐욕과 욕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밟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행운은 결국 얼마 가지 않아 가정 파탄, 빚더미, 인간관계의 소실이라는 불행을 불러들였다. 아주 높이 오른 만큼 추락의 깊이 또한 컸다.
의부께서는 성격상 사업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과 한량 같은 성향은 사업가의 덕목과 자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업에 몸을 던진 이상 하루하루 치열하게 매진하며 공부하고 혁신해야 했지만, 별 대가 없이 얻은 평온한 삶이란 행운은 결국 50대 중반이라는 세월 동안 삶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술과 담배로 자신의 몸을 망가뜨린 불행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행운이 불러들인 불행으로 인해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두 분의 삶에서 불행은 어떻게 또다시 행운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일까?
친부는 현재 사정은 넉넉지 않지만, 공기 좋은 곳에서 당신을 잘 챙겨주는 동반자와 함께 오손도손 건강하게 살고 있다. 한참 때 독기를 품은 얼굴에 비해 현재는 그 모습이 아주 편안해 보인다. 만약 아버지의 사업이 계속되었다면 어땠을까? 그 엄청난 돈의 기운들은 결국 언제 어떤 형식으로든 아버지와 주위 사람들까지 철저하게 파괴하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아버지의 드라이브를 멈추게 하였던 불행이 결국은 아버지는 살리는 행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의부께서는 술과 담배로 이미 몸이 많이 상한 상태여서 이번 사고가 아니었다면 계속되는 폐인 생활로 인해 더 큰 병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사고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재활을 잘하여 술과 담배를 끊고 남은 일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에 매진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이것 또한 불행이 행운을 불러들이는 격이 될 것이다.
[ 스스로 구원하라! ]
행운과 불행이 쉼 없이 교차하는 것은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 내가 발현한 언과 행은 수많은 타자들과 접속하여 다양한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인과 관계가 전혀 없는 우연적 사건들이 느닷없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렇듯 나의 안과 밖의 끊임없는 교섭의 과정에서 행운과 불행은 서로를 내포하고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왔을 땐
뱀을 만난 것처럼 두려워하라!
행운과 불행은 공존한다.
그렇기에 행운이 찾아왔을 때는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자만하거나 우쭐하지 않으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불행이 찾아왔을 때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낙심하지 않으며 삶의 성찰과 함께 낮은 자세로 묵묵히 때를 기다린다. 행운을 불행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흔하지만, 불행을 행운의 실마리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한 사람은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닌 어떠한 시공간에 처해 있어도 항상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이다. 삶의 모든 여정을 배움의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자신을 타자화하며 현실을 직시할 수가 있기에 자신의 나아감과 물러감을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 항상 안주하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려 하기에 지옥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힘을 가질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담담한 마음가짐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움의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불행을 행운의 실마리로 만들어 자신을 구원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