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근육, 움직임과 감정이 덩어리져 굳은 채 공간 속에 침묵처럼 놓여 있던 조각들 사이를 빠져나와, 우리는 빛과 색의 떨림이 있는 회화를 만나기 위해 파리 16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철 9호선을 타고 라뮈에트(La Muette) 역에 내리자, 오래된 저택들 사이로 작은 카페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의 햇살 속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큰 나무들이 지붕처럼 드리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한 채의 단정한 건물이 말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9세기 말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이 전시 공간은 작품과의 거리가 가까워, 마치 낡은 살롱에 앉아 조용히 그림과 마주하는 분위기였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네의 유작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지베르니의 정원과 수련을 그린 말년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1966년, 아들 미셸 모네의 기증으로 미술관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마르모탕 미술관은 모네만의 공간이 아니다. 드가, 피사로, 르누아르, 특히 여성 인상주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의 기획전은 이 미술관이 ‘다른 시선’을 담아내는 특별한 장소임을 알려준다.
미술관의 다른 전시실에는 그 유명한 모네의 《해돋이》가 걸려 있었다. 한 폭의 회화가 새벽이라는 시간과 빛의 떨림을 그 시대에 담아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베르트 모리조의 자화상이었다. 모네가 빛을 그렸다면, 모리조는 현재 자신이 존재하는 삶의 순간을 그대로 우리 앞에 내놓고 있었다. 우리에게 마네가 그린 모리조의 초상화 <제비꽃을 든 베르트 모리조 초상,1872,오르세미술관>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 그린 자화상<자화상, 1885>은 더욱 특별했다. 한 인물을 다룬 두 그림은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화가의 시선과 주체의 자리에서 깊은 차이를 드러낸다.
나는 그녀의 자화상 앞에 멈춰 섰다. 붓을 든 채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은 단정하지만 단호하지 않았고, 당당하지만 도발적이지 않았다. 그 시선엔 ‘나를 보라’는 선언이 아니라, ‘나는 여기 있다’라는 조용한 존재감이 힘차게 느껴졌다. 이 자화상은 1885년에 그려졌고, 놀라울 정도로 회화적이다. 세밀한 묘사보다는 해체된 듯 사라지는 배경, 빠르게 지나간 듯한 붓의 흔적, 그녀의 옷에는 붓 자국 같은 자국들이 무심하게 얹혀 있다. 이 그림은 완성된 상태보다는 미완의 여운 속에 남겨져 있다. 중심에는 한 존재, 화가이자 여성, 어머니이며 아내였던 예술가가 조용히 앉아 있다. 그녀는 팔레트를 들고 있다. 그것은 여성에게 가정의 책임만을 요구하던 시대에 대한 침묵 속의 저항처럼 보였다.
베르트 모리조, 자화상, 1885, 마르모탕 미술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그녀는 붓을 놓지 않았고, 인상주의 전시회에 계속 참여했다. 실제로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녀의 결혼 조건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였다. 남편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싫어해, 그녀가 야외 스케치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웠다. 그녀가 화가로 살아가는 일상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거의 집 안이나 정원에서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린 것이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를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은 시선을 피하지 않지만, 전부를 내어주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라고 그림은 현재진행형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자화상은 완결된 한 점의 그림이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한 줄의 문장 같았다. 이 작품은 여성 화가가 자기 자신을 ‘재현’이 아닌 ‘실존’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진정한 자화상이었다.
며칠 뒤, 나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또 한 번 베르트 모리조와 마주했다. 이번엔 마네의 붓끝으로 그려진 그녀였다. 1872년에 그려진 초상화 속 그녀는 검은 베일과 검은 리본, 검은 드레스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유독 밝게 빛나는 눈동자에는 단지 아름다움만이 아닌, 침묵과 자의식, 결정적인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그림 속에서 ‘화가’가 아닌 ‘화가의 모델’로 서 있다.
에두아르 마네,제비꽃을 든 베르트 모리조 초상,1872,오르세 미술관
응시하는 주체가 아니라, 응시당하는 객체로 존재한다. 마네는 모리조를 시대가 기대하는 여성상으로 우아하고 조용한 여인으로 그려냈다. 한편으로 마네는 이 그림 안에서 느껴지는 모리조의 정적을 억눌림이 아닌, 존엄으로 표현한듯하다. 그는 모리조를 그리며 그녀의 외형뿐 아니라, 내면의 고요한 힘을 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녀는 그의 모델이었지만, 동시에 동료였고, 시대를 함께한 화가였기 때문이다. 정지된 이미지 안에서 여전히 감정과 기품이 살아있다.
파리의 미술관을 다니는 동안, 나는 한 여성의 얼굴을 두 번 마주쳤다. 한 번은 그녀 자신의 붓으로, 또 한 번은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했던 화가 마네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다. 두 초상은 나란히 걸려 있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모리조가 그린 자화상은 흐릿하고 유동적이었다. 반면 마네의 초상은 고요하고 단단했다. 그러나 두 그림은 공통으로 마음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억압이 아닌 선언처럼 보였다. 하나는 내면의 떨림을, 다른 하나는 외면의 위엄을 담았다. 그리고 그 둘은 결국, 예술가이자 여성으로서 한 인물을 완성하고 있었다.
나는 모리조의 자화상과 마네의 초상화 앞에서 잠시 불안한 숨을 쉬었다. 내가 마주하는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마네가 그린 이름답고 세련된 모리조의 얼굴일까, 아니면 “나는 화가입니다”라고 외치며 물감 묻은 옷을 입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던 모리조의 얼굴일까. 모리조는 그 대답을 위한 여백을 남겼고, 마네는 그 여백을 채워 넣었다. 나는 마르모탕 미술관에서 그녀의 진짜 얼굴을 만났다. 그날 파리 16구의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미술관을 찾지 않았다면, 나는 화가 베르트 모리조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