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올곧이 바라보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인 적이 있나요?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군가 이렇게 물어오면 쉽게 답하지 못한다. 물어볼 필요 없이 그냥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들여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그리움도 나오고, 사랑도 나오고, 감사도 나오고, 나의 미래도 내 안에서 나온다. 마치 실타래처럼. 그리고 명백해진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물어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그 기억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불행하게 하는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감독의 목소리가 크게 담긴 작품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프랑스의 영화감독으로 불문학 석사를 마친 후 프랑스 국립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말한다. 영화는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라고.
“난 모든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야말로 최악이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정치적 영화다.”
([Interview Magazine], 2015. 2. 2)
그녀는 역사에서 멸시받았던 여성 화가의 동성적 사랑을 통해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여자들의 연대의식을 은근하게 불러일으킨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결혼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바다를 건너 고립된 섬의 저택을 방문한다. 모델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하에넬). 엘로이즈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에게 초상화를 보내 결혼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를 견딜 수 없어 초상화 모델이 되기를 거부한다. 마리안느는 그녀 몰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엘로이즈를 비밀스럽게 관찰하며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든다.
두 여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화면에 나타나는 색채의 언어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마리안느는 주로 주홍색 드레스를 입는다. 주홍색은 그녀의 내면에 타오르는 열정과 사랑, 도전적인 예술가적 자존심을 상징한다. 엘로이즈는 주로 파란색 계통의 드레스를 입는다. 파란색은 우울과 권위, 자유와 귀족적 품격을 담고 있어 그녀의 복잡한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녹색의 드레스는 세 여성 모두가 한 번씩 입어본다. 이는 여성들의 연대와 평등,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로이즈가 입은 흰색의 이브닝드레스는 웨딩드레스일 수도, 희생이나 죽음 같은 운명을 암시할 수도 있다. 색채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한다.
감독이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 속에 평등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감독은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전통적 시선을 철저히 배제하고, 여성들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 감정을 공유하며 바라보는 방식을 선택했다. 바라보는 자와 바라봄을 당하는 자 사이에 오직 동등한 시선만 존재한다. 특히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하녀 소피가 식탁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장면에서 이 의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마리안느는 왜 어렵게 그린 첫 번째 초상화의 얼굴을 뭉개버렸을까? 그녀가 그린 첫 번째 초상화는 단지 외면만을 포착한, 남성적 시선에서 비롯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초상화는 엘로이즈와 사랑의 교감을 나누며 그녀의 내면까지 표현한 진실한 그림이다. 두 그림이 가진 생명력의 차이는 예술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속 그림은 편집이나 합성이 아닌 실제 화가의 몸짓으로 표현되었다. 감독은 19세기 유화 기법을 전통적으로 배운 헬렌 델 마르를 찾아냈고, 역사적 고증과 함께 그녀의 손을 통해 그림이 완성되는 모습을 담아냈다. 화가의 몸짓 하나하나가 화면에 기록될 때, 여성들의 역사가 진정으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오르페우스 신화는 또 다른 핵심이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자, 오르페우스는 저승까지 가서 그녀를 다시 데려오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결국 그녀를 잃는다. 영화 속 세 여인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이 신화를 해석한다. 소피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오르페우스를 비판하고, 마리안느는 오르페우스의 선택을 예술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엘로이즈는 오히려 에우리디케가 남겨지길 선택했으며, 오르페우스를 불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제 신화의 중심은 오르페우스에서 에우리디케로 바뀌며,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과 목소리를 강조한다.
이 작품의 세 여성은 1800년대, 19세기라는 억압된 사회적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스스로 삶을 선택한다. 마리안느는 독립적이며 자존감 높은 여성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며, 엘로이즈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받아들인다. 하녀 소피는 당당히 자신의 임신을 스스로 처리하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가? 감성의 세밀한 터치, 명곡과 명화를 보는 듯한 영화의 맛에 깊이 매료된다.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은 두 여인의 폭풍 같은 감정을 따라 푸가처럼 반복되며 영화적 완성도를 높인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전복시키는 문학적 센스와 색채의 절묘한 활용은 영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말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이 영화는 역사에서 지워졌던 여성 화가의 삶을 통해 여성들의 연대감을 일깨운다. 감독의 창의력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역시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제 질문은 관객에게 남겨진다.
여러분은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연습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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