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외모, 명성… 결국 우리는 환대받고 싶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2009) 리뷰

by 다솜

“그게 인간이야.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그때는 또 방바닥에 거울을 깔아놓고 내 항문의 주름은 왜 정확한 쌍방 대칭 데칼코마니가 아닐까, 머릴 쥐어뜯는 게 인간이라구.”


평소 호감을 갖고있던 한 배우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2009)를 인생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소설을 ‘열등감과 사랑’이라고 축약했다.


열등감과 사랑 모두 내겐 낯설지 않은, 매일을 채우는 감정이기에 망설임없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스토리는 누구라도 흠칫 놀랄만큼 못생긴 ‘그녀’와 그녀를 사랑하게된 ‘나’의 이야기라고 거칠게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을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축약하고 싶다.


못생김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는 ‘그녀’와 대비되는 인물로 ‘군만두’라는 미녀가 나오는 대목이 이를 잘 나타낸다.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나 역시 무작정 그들에게 관대했던 인간이었고, 그로인해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갖추어야 할 인간이었다. 불쾌했다기 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쓸쓸한 마음이었다.”


소설에서는 (특히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외모를 가졌거나 가지지 못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돈, 학벌, 사회적 지위, 직업, 재산 등 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외모가 멀끔하거나, 이름을 알아듣는 직장에 다니거나,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돈이 많다고 알려진 사람에겐 더 관대한 마음이 든다. 나아가 그들을 환대한다. 웃으며 그들은 맞는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경계의 마음을 갖거나, 아예 무관심해 진다. 그리고 나 역시 관대하거나 가혹함을 주고, 그로인해 가혹한 삶의 조건을 요구 받는다.


이러한 세상이기에 많은 사람이 돈, 학벌, 지위, 직업, 재산 등을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는 이유는 결국 ‘환대 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멸시,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가급적 웃으며 환대 받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갖추고 싶어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환대-환대의 눈금계에서 어느 위치쯤 있는 지 가늠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현재 내가 갖춘 ‘환대의 조건’을 비교한다.


다만, ‘환대 받기위한 노력’은 사랑 앞에서 무의미해 진다. (물론 조건을 아예 안 볼 순 없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가 가진 조건보다 그 존재 자체에서 이유를 찾는다. 그 사람의 돈, 학벌, 지위 등등이 아닌 ‘그 사람이라서’ 그를 사랑하며, 그래서 그가 나에게 보내는 말과 몸짓을 반가이 여기며 맞이하고, 따스하게 응대해 준다.


소설에서도 사랑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사랑은 존재에 대해 불안해 하는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당신이라서, 반갑습니다’와 같은 웃음을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순간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주어진 사랑의 시간은 왜 그토록 짧기만 한 것인가. 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 왜 인간은 지금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어느덧 40대에 가까워지는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20대 청춘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20대에는 사랑이 밥먹여줄만큼 중요했지만, 지금은 밥을 먹고, 밥벌이를 고민하고, 주식을 사고, 잠을 자는데 더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랑의 시간은 더 짧아져만 간다.


이 소설의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17세기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과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모티브로 한다. 그림 <시녀들>은 소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가 시녀, 난쟁이, 개와 함께 있는 일상적인 순간을 그렸는데, 그녀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960px-Las_Meninas,_by_Diego_Velázquez,_from_Prado_in_Google_Earth.jpg Las Meninas, by Diego Velázquez, from Prado in Google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예술계는 작곡가 라벨이 루브르 박물관을 자주 방문해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았고,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닌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을 담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했다고 유추한다.


어떻게 돈을 더 모으고, 외모적으로 덜 늙고, 더 사회적 지위를 갖출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삶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정리하는 잠시나마 인생에 주어진 짧은 짧은 사랑의 시간을 회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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